1989년 6월 4일 천안문 학살 당시 중국공산당 당서기였던 자오즈양을 쫓아내고 그 대신 덩샤오핑이 차기 지도자로 낙점한 인물이 장쩌민이었다. 1992년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국가주석과 공산당군사위원회총서기 등 3대 권력을 거머쥐었고 2002년 후진타오에게 승계한 뒤에도 2004년까지 군사위원회총서기 직은 유지했을 만큼 권력에 집착했다. 시진핑 이전에 시진핑 비슷하게 본인의 권력에 집착했던 인물. 총리로서 개방적이고 개혁에 적극적이었던 주롱지와 발맞추어 중국의 WTO 가입을 추진해서 수출제조대국으로서 중국경제를 올려놓았다. 언론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중국에서 토지는 국유, 건물은 개인소유로 주거용부동산 시장이 만들어진 계기도 장쩌민--주롱지 팀이 만들어 정착시켰다. 중국공산당 정치국에 자기를 따르는 샹하이 방 사람들을 심어놓고 막후에서 후진타오를 제치고 권력을 누린 인물. 샹하이 근처 장쑤 성 양저우 출생으로 샹하이자오통대학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소련 모스크바에 가서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연수했다. 중국으로 돌아와서 자동차공장 현장에서 일하다가 공산당 간부로 들어가 1985년 샹하이 시장, 뒤이어 중국공산당 샹하이 총서기로 당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적극 앞장섰다. 그 때 샹하이에서 경제정책을 다루었던 주롱지와 인연을 맺었다. 늙어서 혈액암으로 고생하다가 간과 콩팥과 대장과 폐까지 망가져서 죽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