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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혁진 Oct 19. 2022

씨젠 분식회계 사건 [4부]

꽤 길지만 읽어두면 무척 도움되는 이야기 - 전환사채 유동성

<전환사채 유동성 분류>

증권선물위원회는 씨젠이 “1년 이내 조기상환청구 가능 조건이 부여된 전환사채를 유동부채로 분류하여야 함에도 비유동부채로 분류”했음을 지적했다. 1년 이내 상환청구가 가능한 전환사채는 유동부채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주요사항보고서(전환사채권발행결정)>

전환사채는 대표적인 주식 연계 증권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더 낮은 이율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동시에 채권자는 주가가 오를 경우 이를 정해진 가격에 매수할 수 있는 콜옵션을 부여 받는다. 씨젠의 경우처럼 풋 옵션을 부여 받는 경우도 있다. 채권자가 채무자의 지급 불능 리스크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 규정된 가격에 채권을 되팔 권리를 말한다. 비즈니스 모델상 변동성이 높은 바이오 기업의 경우 이런 형태의 메자닌 채권 발행 비율이 높다. 전환사채도 엄밀한 사채이기 때문에 잔존 만기가 1년 미만인 시점부터 이를 유동부채로 분류해야 한다. 국내 공시 규정상 채권 발행이나 증자 등 기업 재무 구조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사안은 일정 시일 내에 공시하게끔 되어 있다. 위 주요사항보고서는 2012년 씨젠이 전환사채를 발행하면서 공시한 자료 중 일부다. 사채의 종류는 물론 자금조달의 목적, 사채의 이율과 만기 등이 자세히 기재되어 있다. 조기상환청구권 여부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위 자료는 2013년 전환사채 발행 당시 씨젠이 공시한 자료 중 일부다. 조기상환청구권에 대한 내용이 매우 자세하게 제시되어 있다. 조기상환 시점에서의 채권 가치는 발행 시점에서의 채권 가치와 상이하기 때문에 발행 시점에 조기상환수익률을 정의한 후 만기 전 상환 시 해당 수익률을 통해 채권 판매가를 산정하는 것이다. 또한 조기상환청구권이 언제부터 유효한지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있다. “본 사채의 발행일로부터 2년이 되는 2015년 10월 02일 및 그 이후 매 3개월에 해당되는 날”이라는 명시적인 설명을 볼 수 있다. 청구장소와 지급장소, 청구기간 모두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따라서 유동부채 미분류 문제는 씨젠이 고의적으로 유동성 위험을 숨겼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사항이다. 유동부채 회계 부정으로 재무제표에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전기 재무제표의 재작성이 보고기간말 재무상태표에 미치는 영향>

(단위: 천 원)

수정 전과 후를 비교하면 유동부채가 대거 비유동부채로 들어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2016년 유동부채로 분류되었어야 할 490억 원이 비유동부채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앞서 개발비 회계 부정을 다룰 때 언급했던 것처럼 자본과 부채 비율이 워낙 훌륭하고 재무구조가 탄탄하기 때문에 회사의 재무건전성을 가를 만한 이슈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회사가 얻는 이익 대비 리스크를 고려할 경우 이 또한 고의성을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유동성 재분류라는 아주 기초적인 회계원칙을 회사와 회계법인 모두가 놓쳤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만기가 아니라 조기상환청구권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변명도 가능하겠지만 상술한 것처럼 채권 발행 시 유동부채로 분류해야 하는 날짜가 매우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어 고의가 아니라면 회사와 회계법인 자질에 의심이 갈 만한 사안이다.


<증권선물위원회의 조치 내용>

 지금까지 언급한 3가지 회계 부정에 대해 금융선물위원회는 2019년 2월 다음과 같은 징계를 내렸다. 씨젠은 징계에 대해 “이미 2019년 3분기에 상기 2항의 감리 지적사항과 관련된 과거의 모든 회계 관련 사항을 반영하여 재무제표를 수정하였으며, 이를 2019년 3분기에 공시(2019.11.14)하였으므로 금번 조치로 인한 추가적인 수정이나 정정할 내용은 없다.”고 밝혔으나 이미 2012년부터 일정 기간 회계 부정을 숨겨왔으므로 이를 처벌한 것이다.

 

    1) 씨젠에 대한 제재

 이번 분식 회계로 씨젠에게 25억 원, 대표이사와 담당인원도 1억 2천여 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되었다. 더불어 이후 3년 동안 금융당국이 지정한 감사인에게 회계감사를 받게 되었다. 감사인이 지정될 경우 감사 비용도 늘고 감사의 강도도 강해진다. 건실한 회사라면 회사의 투명성이 제고될수록 더 많은 투자자의 신뢰를 얻어 기업가치 증대를 노릴 수 있을 것인데, 평소에는 최소 비용으로 감사 강도를 낮추려고 하고 이런 제재는 질색하는 기업들의 태도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더불어 담당임원은 해임권고를 받아들여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내부통제 개선을 권고했다.

 

    2) 감사인에 대한 제재

 씨젠의 회계 부정과 얽힌 회계법인은 두 곳이다. 우선 2014년 해산한 다인회계법인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씨젠 회계감사를 담당했다. 이 시기는 회계 분식이 막 시작된 시점이다. 다인회계법인 공인회계사 2명에 대해 씨젠에 대한 감사업무제한, 주권상장 및 지정회사에 대한 감사업무제한, 그리고 직무연수를 받는 등의 제재 조치가 취해졌다. 회계 분식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명확히 감사해야 할 것을 감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처벌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덕회계법인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의 회계감사를 맡았는데, 과징금 1억 3500만원, 손해배상 공동기금 추가 적립 50%의 제재를 받았다. 더불어 씨젠에 대한 3년 간의 감사업무제한, 해당 감사를 담당한 공인회계사 4명에 대한 처벌도 가해졌다. 물론 직급이나 세부적인 책임 소재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다르다. 구체적으로는 직무정지, 씨젠에 대한 감사업무제한, 주권상장 및 지정회사에 대한 감사업무제한 등의 기간이 다르다.

 


<감리 지적에 따른 영향>

 씨젠은 2019년 회계 부정을 자체적으로 수정하면서 재발방지에 나섰다고 공시했다. “과거 관리 부분 전문 인력 및 시스템 부족으로 발생한 회계 관련 미비점을 근본적으로 보완하기 위하여 지난해부터 전문 인력 충원, 내부회계 관리제도 운영 등 관리 역량과 활동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리 지적 이후에는 이런 움직임이 좀 더 강화되었다. 실제로 씨젠은 CP(윤리경영) 및 위험관리 조직을 신설했고 글로벌 ERP를 도입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ERP의 경우 공급망, 소매유통 등 대리점과의 자금 흐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매출에서 회계 부정이 일어날 가능성을 확연히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회계 부정 이슈로 2021년 진행된 바이오 기업 대상 ESG 평가에서 씨젠은 코스닥 상장사 중 유일하게 최하 등급으로 분류되는 D등급을 기록했다. 직전해에는 C등급이었으나 한 단계 하락한 것이다. 환경과 사회 부문에서는 작년과 동일하게 각각 D, C등급을 받았으나 지배구조의 경우 D 등급으로 강등되었다. 팬데믹으로 인한 역대급 진단키트 수요에 힘입어 역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으나 비재무적 측면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대개 기업윤리와 관련된 사항은 지배구조와 연관된 것으로 판단한다. 2021년부터 중간배당에 나서는 등 주주의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회계 부정이라는 이슈가 매우 크게 다가온 듯하다.


 2020년 초 13000원 부근이던 씨젠의 주가는 2020년 3분기 15만원까지 상승한 이후 조정을 받고 2021년 초 8만원 대로 하락했다(4월 단행한 100% 무상증자를 반영한 수치임). 하지만 회계부정 이슈가 터지면서 주가는 6만원 대로 하락했고 투자자들의 저점 매수 심리로10만원 대로 상승했으나 현재 5만원 수준의 주가를 기록하고 있다. 무상증자 당시 씨젠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함이라 했지만, 실상은 회계 부정 이슈에 따른 주주 붙잡기에 가까운 조치였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씨젠은 회계부정을 통해 수익성이 급변하거나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본래 펀더멘탈이 우수한 기업인데다 코로나19로 자사 제품의 수요가 급증해 2020년 한 해 바이오 기업 중 몇 안 되는 ‘합리적인 PER’을 기록한 곳이다.


신약 개발 업체들의 경우 투기에 가까운 기대심리로 주가가 천정부지로 솟았지만 씨젠은 주가에 걸맞은 성과를 기록했다. 즉 회계 부정으로 얻은 이익은 두드러질 만한 것이 없다. 반면 이로 인해 올라간 차입비용은 명확하다. 차입비용의 증가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첫째는 주가의 하락이다. 주가의 하락은 향후 증자 시 조달금액 산정에 악영향을 주는데, R&D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바이오 기업의 경우 더욱 치명적이다. 분식 회계 기업이라는 오명도 주가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또 다른 하나는 4월 단행된 무상증자에 대한 것이다. 회계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주가 관리’에 나설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회사의 자기주식 가치가 희석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무상증자는 회사의 자기주식 외 일반 주주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바이오 업계 주가에 대한 영향은 미미했다. 과거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회계 감리 이후 바이오 업체들에 대한 회계 리스크가 증시에 선반영된 상태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신약 개발에 주력하는 대부분의 상장 바이오 기업과 달리 씨젠은 헬스케어 제품을 생산하는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가져 투자자의 불안 심리가 그리 크지 않았다. 더불어 공시에서 밝혔듯이 씨젠은 감리에 앞서 회계처리를 개선했고 과징금의 수준도 크지 않아 주주가치의 훼손이 제한적이었다는 평가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까지 매출 밀어내기, 개발비 임의 자산화, 유동부채 미분류 등으로 논란이 된 씨젠의 회계분식 사건에 대해 알아보았다. 사실 회계분식 이슈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대우∙현대그룹의 분식회계 사건, 2010년대 초반 상장폐지된 기업 중 가장 시가총액이 컸던 네오세미테크의 분식회계 사건, 2011년 국내 증시에 상장된 중국고섬의 거래정지,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사건, 기업의 규모가 크지 않아 뉴스화 되지 않았을 뿐 이외에도 씨젠과 같은 크고 작은 회계 부정 사건이 자주 발생해왔다.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증선위에서 사안의 경중에 따라 기업에게는 과징금이나 상장폐지 조치를, 회계법인 및 공인회계사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나 업무 제한 조치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위와 같은 조치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기업에 대한 처벌에 매우 약소하다는 것이다. 앞서 씨젠이 회계 부정에 고의성이 품지 않았을 가능성에 힘을 싣는 근거로 얻을 수 있는 이익 대비 리스크가 크지 않다고 했는데, 사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전체 경영성과나 재무구조 대비 회계 부정으로 인한 손익 및 부채의 변동률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회계 부정으로 얻는 리스크도 매우 적다. 미국의 경우 SEC에서 엄청난 과징금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 상장폐지에 대한 판단도 매우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더군다나 주주소송제도도 매우 활발해 주가 하락에 대해 책임지지 않기 위해 사소한 것 하나 빠짐없이 공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미완의 회계가 불러올 리스크가 매우 크기 때문에 섣불리 회계 부정을 저지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금융 당국도 기업 당기순이익에 비해 매우 적은 과징금을 부여하고 패널티 부여에 조심스러운 자세만 취할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기업의 고의성이 드러나는 사안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징계를 내리는 것이 요구된다.


 또 다른 하나는 회계 여건에 대한 것이다. 공인회계사는 해당 회사의 모든 제품과 자료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표본을 임의로 추출해서 조사를 진행한다. 더군다나 이들은 ‘감사’를 하는 것이지 ‘감시’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가 의도적으로 숨기려고 하는 사안을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또 감사시장은 일종의 입찰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회계법인은 일감을 따기 위해 낮은 감사료를 부른다. 이에 따라 감사보수가 낮아져 적정 감사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시간 안에 감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공인회계사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은 시험을 치르는 아이에게 백점을 받아야 한다며 소리치는 격이다. 지금과 같은 정액제에서 시간당 보수제로 회계법인의 보수가 수정된다면 회계 투명성이 개선될 것으로 믿는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 기업과 회계법인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큰 것은 합리적인 현상이지만, 주주 또한 본인의 책임은 없는지 돌이켜보아야 한다. 기업의 성장과 함께 하는 주인이라면 재무제표상 이상한 지점이 포착될 경우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일테지만, 실상은 재무제표 한번 들여다보지 않은 채 묻지마 매수에 나서는 이들이 태반이다. 기업에 회계 부정이 일어난 다음에야 뒤늦게 기업과 회계법인을 비판하기 보다, 평소에 본인이 투자한 기업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 투자 성과에 건설적인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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