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가 먼저 감동하는 나라, 이름하여 대한민국

(편리함이라는 이름의 집착)

by 류정uk


요즘 한국을 말할 때 사람들은 한류를 먼저 떠올린다. 대중문화와 산업의 성취는 분명 눈에 띄는 변화다. 그러나 그보다 덜 주목받는 층위에서, 이 사회를 지탱하는 또 다른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나는 해마다 봄과 가을, 일정한 기간을 한국에서 보낸다. 밀양의 작은 아파트를 여행자들에게 열어두고, Servas International과 Couchsurfing이라는 무료 숙박 연결망을 통해 낯선 이들의 체류를 맞이한다. 여행자는 현지인의 집에 머물며 시간을 나누고, 느슨하지만 따뜻한 연결이 만들어진다.


그들은 대개 비슷한 질문을 남긴다.

“왜 버스가 이렇게 정확합니까.”

“기차는 어떻게 항상 정시에 오나요.”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이건 기사님이 초능력자인 게 아니라, 시스템이 집요한 것이다.


전쟁 이후에 태어나 자란 내가 느끼는 오늘날 한국의 진짜 매력은 화려한 콘텐츠가 아니다. 나는 그것을 ‘편리함’이라 부르고 싶다. 어쩌면, 과할 정도로 정밀한 편리함.


겨울이면 버스 정류장의 의자가 따뜻해진다.

따끈따끈한 엉덩이가 먼저 감동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여름이면 횡단보도 위로 파라솔이 펼쳐지고, 어떤 거리에서는 더위를 식히는 물이 분사된다. 처음 이를 본 외국인 친구는 비가 오는 줄 알고 우산을 펼친다. 한국에서는 가끔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비가 내린다.


공원에는 몇 걸음마다 화장실이 있다. ‘설마 또 필요하겠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김없이 나타난다. 거의 순간이동에 가깝다. 문을 열면 불이 자동으로 켜지고,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이쯤 되면 자연이라기보다 설계에 가깝다. 세계를 몇 바퀴 돌며 겪어본 나에게, 한국은 거의 유토피아 다.


이런 편의시설이 이 정도로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곳은 한국뿐이다. 게다가 많은 것이 무료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공중화장실 앞에 서서 동전을 찾느라 가방을 뒤지던 순간, 나는 조용히 한국을 그리워했다. 애국심은 뜻밖의 장소에서 생겨난다.


런던에서는 버스를 놓치면 조용히 기다려야 한다. 도착 시간은 어디까지나 ‘예상’ 일뿐이다. 비는 오고, 전광판은 멈춰 있고,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휴대전화를 내려다본다.


한국은 다르다.

도시는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2분 후 도착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2분이다.

가끔은 1분 30초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괜히 내가 늦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쌓인 작은 편리함 들은 어느 순간 하나의 성격이 된다.

나는 그것을 ‘집착’이라고 부른다.


이 나라는 믿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빨리빨리’ 문화는 효율을 낳았고, 효율은 촘촘한 시스템이 되었다. 지하철은 정시에 도착하고, 길거리는 비교적 안전하다. 한국에서는 새벽 두 시에도 치킨이 오고, 와이파이는 거리 곳곳에 깔려 있다.


아직 휴대전화도 제대로 터지지 않던 영국 시골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놀랍고도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신호가 자주 끊기던 그곳의 느린 공기와 넓은 하늘, 기다림이 당연했던 시간들을 나는 문득 그리워한다. 어쩌면 편리함과 여유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자라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설계에는 대가가 따른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불빛, 멈추지 않는 노동, 언제든 응답해야 하는 사람들. 내가 밤늦게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 그 시간에 깨어 있다는 뜻이다. 편리함은 공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시간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나라의 세심함을 좋아한다.


밀양의 한 버스 정류장이 떠오른다. 네모난 작은 방처럼 생긴 그 공간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어느새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그곳은 더 이상 버스를 기다리는 장소가 아니다. 잠시 세상을 바라보는 자리다. 효율이 정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나는 생각한다.

한국의 힘은 화려한 콘텐츠가 아니라, 일상을 정밀하게 조직하는 능력에 있다고.


그래서 내게 한국은 조금 과하고, 많이 편리하며, 결국 사랑스러운 나라다.


그리고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렇게 빠른 세상에서 우리는,

와이파이보다 느린 마음을 끝내 지켜낼 수 있을까.


… 물론 와이파이는 빨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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