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길고양이와 K-뷰티

(Mumbai에서 피 묻은 다리로 맞닥뜨린 뜻밖의 한류)

by 류정uk


살아있는 시장


Mumbai 시장은 마치 숨 쉬는 유기체 같았다.

먼지와 햇살, 향신료 향, 사람들의 외침과 오토릭샤 경적 소리가 뒤엉켜 도시의 맥박처럼 뛰고 있었다.

나는 그 거대한 몸 안을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공포의 듀엣


왼쪽 종아리에 날카로운 압력이.


짝.


작은 길 고양이가 온 힘을 다해 내 다리를 물었다.


순간, 피가 솟구쳤다.


내 비명과 고양이 울음이 겹쳐 기묘한 화음을 만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누가 우는지 구분조차 못 했다.


고양이는 끝까지 내 발목을 물고 버티더니

갑자기 배터리가 다 된 장난감처럼 툭,

튕겨나가 바닥에 몸을 붙였다.


만화 속 악당처럼 요란하게 패배한 놈.

방금 전까지 맹렬하던 작은 몸이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


“네 이 녀석!”


피와 공포, 그리고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이 상황 속에서, 웃음이 먼저 나왔지만,

머릿속 어딘가에서 ‘광견병’이라는 단어가 차갑게 떠올랐다.


이 나라에서, 이 도시에서, 이 작은 이빨 하나가 내 여행 전체를 바꿀 수도 있었다



천사 호스트 Meenal


Couchsurfing 호스트 미날 덕분에

나는 빠르게 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10분 만에 의사를 만나고,

30분 만에 광견병 1차 접종을 마쳤다.


치료비는 무료, 약값만 20루피, 400원.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고 정확했다.


그 순간,

내 머릿속 ‘후진국 인도’라는 고정관념이 조용히 무너졌다.


혼란도, 지연도 없었다.

눈앞에는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의료진과

외국인인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건네지는 친절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가 믿고 있던 세계의 순서가 바뀌는 걸 느꼈다


편견은 늘 안전한 나라에서 만들어지고,

현실은 늘 현장에서 깨진다.



K-뷰티 난장판


그리고, 진짜 사건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내 상처보다 내 가방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You know, we love Korean drama…

Do you have any Korean beauty products with you?”


순간, 응급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나는 얼떨결에 가방을 열었고,

여행용 화장품들을 하나씩 꺼냈다.


그들의 눈이 반짝였다.


사진을 찍고, 성분을 묻고,

주름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감탄했다.

내 단골용 innisfree 화장품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내 상처는 뒷전이 되었고,

나는 응급실 한복판에서

K-뷰티 홍보대사가 되어 있었다.


길 고양이에게 다리 물리고 내가 인도에서 한국을 대표하게 될 줄이야!


“한국 화장품은 정말 세계적이야.”


피 묻은 거즈 옆에서

한국 마스크팩이 조심스레 펼쳐졌다.

그들은 내 상처보다 성분표를 더 오래 들여다보았다.


한류는 화면 속에서만 흐르는 줄 알았는데, 인도의 응급실 형광등 아래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길고양이와 K-뷰티의 운명적 교차


한순간의 사고가

이렇게 기묘한 장면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길고양이 - 내 다리 - 피 튀기는 공포

응급실 - 내 화장품 - K-뷰티 찬사


여행은 늘 이런 식이다.


혼돈 속에서

웃음과 공포, 경이와 아이러니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에필로그: 절룩이는 해적


여행은 계속됐다.


인도양 위 선상에서

나는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배 안을 헤맨다.


마치 전투에서 돌아온 해적처럼.


내일은 두바이에서 2차 광견병 주사를 맞아야 한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길고양이가 남긴 이빨 자국,

호스트의 빠른 손길,

응급실에서 펼쳐진 뜻밖의 K-뷰티 설명회까지.


하루 사이에

공포와 웃음, 편견과 자부심이

한꺼번에 지나갔다.


여행은 나를 바꾸지 않는다.

대신 내가 믿고 있던 세계를

조용히 부순다.


그리고 나는

조금 절뚝이면서도

다시 앞으로 간다.


이상하게도,

꽤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작가의 이전글엉덩이가 먼저 감동하는 나라, 이름하여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