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과 늑대 (10)

심연의 지배자

by 이샤라

심연의 중심, 거미줄처럼 얽힌 나무뿌리 아래의 눅눅한 공기와 어둠이 짙게 엉겨 붙은 공간. 그곳에서 모르티아는 여전히 광기에 가까운 몰두 속에 손끝을 움직이고 있었다.


검게 일그러진 액체가 그녀의 손끝에서 천천히 흘러내렸다. 차갑고 끈적이는 그것은 바닥에 닿는 순간, 젖은 막을 찢는 듯한 기괴한 소리를 내며 퍼져 나갔다. 흘러든 액체는 나무의 뿌리 속을 타고 깊숙이 스며들면서 생명의 기운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액체가 지나간 자리는 검게 썩은 흔적으로 남았고, 그 아래 어딘가에서는 심장을 닮은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고동쳤다. 마치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의 심장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깨어나는 것처럼.


모르티아는 집요하게, 그러나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녀의 권능은 대상을 잠식하고, 본래의 성질을 뒤집어 본인의 의지대로 바꾸는 것이었다. 모르티아는 이곳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공간의 결이 일그러졌다. 공기는 묵직하게 가라앉았고, 바닥과 천장이 방향을 잃은 듯 뒤틀렸다. 형체 없는 압력이 거대한 파도처럼 그녀를 짓누르는 동시에, 바로 그 틈으로 한 음성이 들려왔다.


메마르고도 차가운 목소리. 예고도 없이 영혼을 짓누르는 이 불쾌한 시선. 울림은 없었지만, 그 말은 곧바로 모르티아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나.」


모르티아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이곳 심연의 주인이자, 대지와 상반된 존재.


그의 목소리는 바닥 없는 공허에서 길어 올린 것처럼 메마르고 날카로웠다. 공간을 잡아먹는 듯한 울림이 퍼지자, 뿌리 사이를 타고 흐르던 검은 액체가 일제히 멎었다. 심연의 주인이 들이쉰 숨결처럼 그것들은 순식간에 움직임을 멈춘 채 어둠 속에 잠겼다.


모르티아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얼굴에 드리운 차가운 미소는 변하지 않았다.


"더할 나위 없지. 그저 '두 개의 심장'이 하나로 합쳐지기를 기다릴 뿐이야."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겠군. 하지만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그토록 기다리고 있는 그 불완전함들이 네 발목을 붙들고 있음을 말이야.」


모르티아는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가면 아래의 표정에는 뚜렷한 불쾌함이 어려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짧고 얇은 비웃음이 스며들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


심연의 주인은 여전히 흥미를 잃지 않은 채, 느릿한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묻겠다. 네가 그토록 집착하는 세계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이지?」


"당신은 이미 가졌기 때문에 모를 뿐이야. 아니지. 애초에 당신은 숭배라기보다는 공포로 각인된 존재였군."


모르티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의식 속에서 낮은 웃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공간 깊숙이 흘러들며 불쾌한 떨림을 만들었고, 마치 공기가 뒤집히는 듯한 잔향을 남겼다.


「크크큭... 그럴지도. 하지만 내게는 아무 의미 없는 일이야.」


모르티아는 그 반응을 겨냥하듯, 조롱 섞인 말투로 말을 이었다.


"감정 따위는 없다더니, 쾌락을 찾아다니는 건 감정 아닌가? 모든 존재로부터 숭배와 존경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 아니,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 손에 쥐어진 결과가 무엇이든, 내겐 아무것도 아니다. 내 앞에 닿지 못하는 운명은, 그저 유흥거리일 뿐이니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야?"


심연의 주인은 천천히 웃음을 거두며 대답했다.


「그저 호기심으로 잠시 찾아왔을 뿐이다. 내게 있어 너는 흥미로운 존재니까 말이지. 내가 다 죽어가는 너에게 힘을 나눠준 것도, 그저 단순히 새로운 즐거움에 대한 기대를 위한 것...」


그 음성은 점차 잦아들며 사라져 갔다. 거대한 의식이 완전히 가라앉는 순간, 심연의 기운이 거칠게 소용돌이쳤다. 짙고도 날카로운 어둠의 기세가 몰아쳐, 모르티아의 어깨를 깊숙이 짓눌렀다.


압박은 피부 아래로 스며들어 내면을 집어삼켰다. 그 감각은 곧 차가운 공포로 형태를 바꾸었으며, 질식에 가까운 중력이 그녀의 의식을 물속처럼 가라앉혔다. 심연 저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부짖는 그 존재의 잔향은 사슬 없는 족쇄가 되어 모르티아의 심장을 옥죄었다.


"큭......!"


가슴 깊숙이 터질 듯한 고통이 번졌고, 억눌린 폐는 공기를 찾아 허공을 헐떡이며 애타게 몸부림쳤다.


"커흑... 이... 비열한...!"


잠시 후, 그 기운은 모르티아를 조롱하듯 조용히 물러갔다. 하지만 그 여운은 더욱 음산하게 남았다. 마치 잔혹한 손길이 마지막까지 그녀의 뒷덜미를 붙잡고 심연의 나락으로 끌어당긴 듯, 그 흔적조차 모르티아의 존재를 깊숙이 흔들었다. 무릎이 꺾일 듯 휘청이던 그녀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으나, 입가로 쏟아지던 거친 숨결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하아... 하... 즐거움... 이라..."


모르티아는 이를 악물었다. 심연의 주인이 남긴 마지막 잔향을 가슴속으로 씹어 삼키며, 손끝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네가 원하는 것은... 그저 대지의 마지막 비명이겠지."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아직도 이 공간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했지만, 모르티아는 스스로를 붙잡듯 낮고 깊게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분노와 오기로 가득 차 있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섬뜩한 웃음이 심연을 가르며 터져 나왔다. 그 웃음소리는 단순한 조롱이 아니었다. 나락의 밑바닥, 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어둠에서 끌려 올라온 듯한 웃음. 오래된 뿌리들을 타고 벼락처럼 퍼져나간 음성은 공간을 찢으며 사방을 울렸다.


모르티아의 귀를 통과한 소리는 감각의 경계를 넘어 의식 그 자체를 진동시켰다. 현실의 틈을 비집고 새어 나온 웃음소리는 마치 세상의 끝자락에서 던져진 모욕처럼 서서히 그녀를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심연 깊은 곳에서 올라온 음산한 기류가 공간 전체를 울리며 나무의 뿌리와 뼈대를 흔들었다.


그러나 단 하나, 그 존재가 가진 힘은 틀림없이 진실이었다. 조금 전, 그의 기척이 스쳐간 순간 모르티아는 뼛속 깊이 깨달았다. 직접적으로 손길이 닿지도 않았건만, 심장이 그에 의해 쥐어졌음을 느꼈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그저 죽음을 유예받았을 뿐. 그것은 마치 독을 품은 뱀이 몸을 감아 오르다 급소를 휘감으며 천천히 조여드는 순간과도 같았다. 심장은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고, 그 박동은 놈의 흥미에 따라 조절되는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가볍게 쥐었다가 다시 놓아주는 무정한 리듬 속에는 말보다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의 흥미가 사라지는 순간, 자신은 아무 예고 없이 끝날 수 있다는 확신.


하지만 그런 불쾌한 감정조차 모르티아의 결심을 흔들 수는 없었다. 이 계약이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받아들였던 이유는 단 하나, 목표를 위해서였다.


심연의 권능은 그저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필요한 것은 힘이었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지금은 놈의 조롱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지만... 계획이 완성되는 그날, 오늘의 수모를 갚는 데서 멈추지 않고 놈의 존재를 철저히 짓밟아버릴 것이다. 그 생각이 닿는 순간, 떨리던 손끝이 멎는 동시에 입가에는 알 수 없는 엷은 미소가 스며들었다.


웃어라. 마음껏 비웃어라. 하지만 나의 장대한 계획이 완성되는 날이 오면... 그 웃음은 비명이 될 터이니.


그것은 마치 억지로 억눌러도 자꾸 떠오르는 환영처럼 떠올랐다. 원대한 꿈이 현실의 틈을 타고 피어오른 순간, 자신을 억눌렀던 무리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는 그날.


너무도 선명한 그 상상에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르티아는 곧 고개를 들고 현실로 돌아왔다.


이제 반역자들을 철저히 이용할 시간이었다. 가슴속의 다짐은 불씨처럼 타올랐고, 두 개의 복수는 조용히, 그러나 착실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타리안은 나흘간 이어진 이주 준비로 오랜만에 사람들로 붐볐다. 광장 한복판에서는 짐을 나르는 주민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오가고 있었다. 거리 끝자락에서 낡은 마차에 짐을 실어 나르던 이들은 말없이 손짓을 주고받으며 마지막 준비를 이어갔다. 그저 일상적인 움직임처럼 보였음에도 짐을 들어 올리는 동작 하나하나에는 억눌린 감정과 헤어짐의 무게, 그리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담담한 결심이 서려 있었다.


라그나르가 광장에서 마지막 연설을 마친 이후, 누구도 쉽게 발을 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타리안은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땅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래도록 품어온 기억을 뒤로한 채 조용히 떠날 준비를 마치는 일뿐이었다.


요새 밖으로 발을 내디딘 한 여성 수인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무릎 위로 몸을 웅크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에는 이 땅에 대한 사랑과 참아온 고통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었다. 조상들의 원죄를 감싸준 전쟁의 여신 은혜 아래에서, 자신들을 박해와 멸시로부터 구원해 준 유일한 터전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는 오랜 터전을 등질 수밖에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철옹성에 아무도 남지 않을 거라니... 상상이 가지 않네요."


시즈는 요새의 성문 바깥에서 타리안을 빠져나오는 주민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무언가를 잃는 상실감과 이해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누구도 이곳을 떠나고 싶진 않았겠지. 하지만 타리안은 이미 오래전에 한계에 닿아 있었어. 자원은 말라가고, 식량은 바닥났으며, 결계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지. 그렇다고 우리가 쉽게 이 땅을 버릴 사람들인가? 아마 끝까지 남아서 같이 무너질 각오였을 거다. 그것이 우리가 타리안이란 땅에서 살아온 이유였으니까."


담담하게 대꾸하는 자이론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쓰라린 체념이 감돌았다. 그는 짧은 숨을 내쉬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그것이 여신의 뜻이라면 따를 수밖에 없지. 그분께서는 우리가 버틸 수 있는 끝을 이미 알고 계셨을 거다. 지금 이 순간의 선택도, 무너지기 직전의 우리를 위한 마지막 배려일지 몰라. 생각해 보면... 그날 쓰러지신 순간부터 이렇게 될 줄 예견하셨던 걸지도 모르지."


자이론의 말이 끝나면서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시즈는 그 조용한 여운 속에서 라그나르가 했던 마지막 인사와 그가 품은 눈빛을 떠올렸다. 그건 단순한 이별의 눈빛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신념과 믿음을 전하는 마지막 언어였다.


"...세상에는 여러 신앙이 있지만, 타리안 주민들처럼 신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은 본 적이 없어요. 제게도 믿는 신앙과 지고의 존재가 계시지만... 타리안 주민들의 여신에 대한 믿음은 단지 신앙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깊고, 삶의 뼈대를 이루는 정체성처럼 느껴져요."


"그럴 수밖에 없지. 여신께서 우리 조상들이 저지른 대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품어주셨기에 지금 우리가 이 땅에 설 수 있는 것이다. 그 은혜는 말로는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지. 너는 그저 고서에 적힌 기록으로만 알고 있겠지만 불의 심판이 가져온 비극은 단순한 역사의 문장이 아니야. 결코 씻을 수 없는 대죄이자 우리의 피 속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각인이다."


말을 잇는 자이론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어딘가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우린 지금도 그 죄의 그림자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세상은 우리를 보며 그 과거를 끄집어내지. 그래서 더더욱 여신께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 안 되는 것이다. 너희 아우로라의 비교적 개방적인 문화가 사실이라면 방금까지 내가 했던 이야기는 네게 있어서 크게 피부로 와닿지는 않겠지.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수많은 신들과 종족들이 우리를 멸시했다. 우리의 조상들이 저지른 죄로 온 세상이 불타버렸고, 그들이 일궈낸 문명들은 역사 속에서 강제로 지워져 버려 기억조차 되지 않고 있지. 누가 용서하겠나."


"그러고 보니... 남쪽에서는 수인들을 본 기억이 전혀 없네요."


"대부분의 수인들은 타리안에서만 살아가니까. 그 외에는 속죄를 하기 위해 이그니카로 향한 소수의 동족들, 멸시를 견디지 못하고 속세로부터 사라져 버린 자들이 있다. 하지만 떠난 이들 대부분은... 결국 이성을 잃은 짐승으로 변했지."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그니카로 가는 건가요? 그곳에서 사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유폐된 사자의 신전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 그곳은 불의 심판 이후에도 유일하게 지상에 남아있는 신의 분노다. 가장 신뢰했던 사자의 배신은 뼈아팠겠지만... 바트라께서는 그를 지상에 남기셨다. 죽이지도, 용서하지도 않은 채 말이지."


담담하게 말하는 그 목소리 끝자락에는 어딘가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시즈는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살아 있는 증언처럼 들은 건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를 거둬주신 여신께 더욱 감사드려야 하는 것이지. 주민들도 물론 힘들겠지만, 장로님께서는 더 힘드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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