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로라의 무녀 (4)

오래된 집, 낯선 위로

by 이샤라

창은의 강을 끼고 이어진 물결의 속삭임과 소박한 마을들의 잔잔한 불빛을 뒤로한 지 열흘이 흘렀을 무렵, 두 사람은 마침내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시즈의 작은 집에 도착했다.


인적이 드문 자락에 고즈넉이 내려앉아 있던 그곳은 언뜻 보기엔 아담하고 단출한 나무집일 뿐이었지만 어둠 속에서도 그 독특한 자태는 또렷했다. 외벽을 감싸는 나뭇결 사이로 희미한 푸른빛이 맴돌았고, 그것은 마치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생명처럼 무언가 이곳에 깃들어 있음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다. 바위틈과 계곡의 흐름 속에서 아른거리는 마력의 잔향은 이 집이 단순한 은신처는 아님을 조용히 암시했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시즈는 낡은 나무 문 앞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그녀는 문고리를 잡은 채, 뒤따라온 아로스를 향해 미안한 듯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무 오래 비워둬서... 먼지가 좀 쌓여 있을지도 몰라요. 안이 춥지는 않을지 걱정이네요."


시즈가 조심스레 문고리를 밀자, 대문은 예상외로 큰 소음 없이 조용하고도 매끄럽게 열렸다.


"안으로 드시죠."


시즈는 먼저 안으로 들어서며 아로스를 이끌었다. 망설임 없는 초대였으나 그 이면에는 무녀로서 지켜온 규율과 낯선 이를 들이는 조심스러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 기척을 읽은 아로스 또한 잠시 문지방 앞에서 멈칫한 뒤,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것은 기사가 주군을 대하듯, 혹은 이방인으로서 지키는 정중한 거리 두기였다.


아로스가 뒤따라 들어서자, 오랫동안 비워둔 공간 특유의 묵은내 대신 의외로 상쾌하고 정갈한 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어...?"


시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서둘러 탁자 위를 손끝으로 훑자 하얗게 묻어나야 할 먼지 대신 매끄러운 나무의 감촉만이 손끝에 닿았다. 바닥은 말끔했고, 가구들은 방금 닦아놓은 듯 은은한 광택을 머금고 있었다.


"...누군가 다녀가신 모양이네요."


멍하니 중얼거리던 시즈는 이내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린 듯 따스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이 없는 동안에도 이곳을 잊지 않고 보살펴준 배려가 공간 곳곳에 묻어 있었다. 아로스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단출한 가구들과 정돈된 실내는 집주인의 성정을 닮은 듯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생각보다 훨씬 정갈하군요. 무녀님께서 걱정하실 필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시즈는 안도한 표정으로 집 안쪽의 문 하나를 가리켰다.


"저쪽이 손님방이에요. 침구도 깨끗할 테니 짐은 그쪽에 푸시면 돼요."


그녀가 굳이 '손님방'을 강조한 것은 혹여나 느낄지 모를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였다. 아로스 역시 그 뜻을 알기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우선 불부터 피워야겠네요. 아무래도 밤공기가 차니까요."


시즈가 불을 피우려 도구를 찾자, 아로스는 말없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부싯돌을 꺼내 들어 벽난로에 다가갔다. 타오르는 불씨가 벽난로 안쪽에서 천천히 숨을 틔우자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실내가 주황빛으로 물들며 더욱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금방 온기가 도네요."


시즈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감사의 인사를 끝으로, 그녀는 안쪽의 낡은 궤짝을 열어 옷가지와 몇 가지 소지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사이, 불을 피운 아로스의 시선은 자연스레 벽난로 옆에 마주 보듯 서 있는 오래된 책장으로 향했다. 책장에는 빛바랜 표지의 고서들이 꽂혀 있었고, 그중 일부는 여명의 신앙과 관련된 교리서들이었다.


"귀공."


교리서를 들여다보는 찰나, 등 뒤에서 들려온 부름에 아로스는 집어 들던 책을 내려놓고 돌아보았다.


"저는 계곡에서 잠시 씻고 오겠습니다. 금방 다녀올 테니 그동안 편히 쉬고 계세요."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시즈는 고요한 밤공기 속에 짧고 단정한 인사를 남기며 문밖으로 나섰다. 그녀의 뒷모습이 어둠에 스며들자, 물살을 스치는 소리와 잎새를 스치는 바람이 그 빈자리를 가만히 채웠다. 홀로 남겨진 아로스는 다시금 책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책장에 정갈하게 꽂혀있는 책들의 모서리는 손때와 시간이 새긴 흔적으로 닳아 있었다. 아로스는 자연스럽게 한 권의 교리서를 꺼내 들었다. 빛바랜 표지 너머 펼쳐진 페이지 한 귀퉁이에는 조심스레 접힌 모서리와 함께 선명한 밑줄이 그어져 있었고, 그는 발걸음을 멈춘 채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글귀는 누군가의 손끝을 지나온 숨결 같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것처럼, 조용히 아로스의 안쪽으로 말을 걸어왔다.


모든 것을 잃고 홀로 떠도는 시간이 길지라도 두려워 말고 고개를 들라. 강한 자는 고독 속에서 그 빛을 더욱 밝혀낼 것이며 그 마음의 굳건함이 곧 너의 등불이 되리라. 그 등불을 따라 마지막까지 나아간다면 새로운 시작은 네 손안에 있으리라.


밑줄이 그어진 글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아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손끝을 움켜쥐었다. 문장의 호흡 하나하나가 어딘가 익숙했다. 기억 저편, 안식 교회에서 시즈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이야기. 그날 그녀가 조용히 전해주던 말들과 지금 이 글귀는 너무도 닮아 있었다.


책을 덮자, 방 안의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고요한 계곡 안쪽에 숨은 이 집은 마치 누군가의 고통을 감싸 안고, 조용한 생을 위해 지어진 은신처 같았다. 단출한 침상, 작은 탁자, 오래된 의자. 방 안에는 손때 하나 없이 정갈한 적막이 감돌았고, 그 가운데 시즈의 존재가 겹쳐졌다. 외딴곳을 거처로 삼은 그녀가 감내한 시간은 결코 평탄치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누군가를 여윈 채 살아온 시간. 그 모든 잔향이 말없이 놓인 가구들의 침묵 안에서 조금씩 배어 나왔다.


그 정적의 틈, 창가에는 작은 화분에 심긴 하얀 수선화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듯, 고요히 고개를 숙인 꽃이었다. 홀로 피어 있으면서도 결코 시들지 않으려는 듯한 하얀 잎사귀. 그것은 위태로우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은, 이 집의 주인을 꼭 닮아 있었다.


그렇게 머릿속에 뒤엉킨 생각이 가라앉기도 전에 문이 조용히 열렸다. 목욕을 마친 시즈는 상아빛의 단정한 일상복을 입고 있었다. 늘 무녀의 검은 정복만을 보아온 아로스의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어딘가 낯설었다.


"많이 어색해 보이나요?"


시즈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저도 이런 옷은... 글쎄요. 언제 마지막으로 입었는지도 기억나질 않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로스는 눈길을 떼지 못한 채 답했다.


"항상 음영이 짙은 옷차림만 보다가 그런 색을 보니 조금 낯설긴 하군요. 그렇다고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색하다고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시즈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벽난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길게 입을 옷은 아니지만, 너무 오래 묻어둔 옷이라서... 저도 익숙하진 않네요."


그녀의 말끝이 묘한 쑥스러움으로 흐려질 때, 아로스의 시선이 자연스레 창가의 하얀 꽃으로 향했다. 시즈의 눈길이 그곳을 따라갔다.


"수선화예요."


나직한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꽃말은... '내면의 외로움', 그리고 '자기애'라고 하죠."


"외로움과 자기애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군요."


"그럴까요. 어쩌면 외롭기에, 스스로를 더 끌어안아야 하는 걸지도 모르죠."


문득 의구심이 든 아로스가 나직하게 물었다.


"이곳을 꽤 오랫동안 비우셨다고 하셨는데, 꽃이 시들지 않고 여태 살아있군요."


"평범한 씨앗에서 피어난 꽃이 아니에요. 지고 신의 힘이 깃든 선물이라... 주인의 보살핌 없이도 지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킨답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요."


시즈는 쓸쓸하게 웃으며 꽃을 바라보다, 이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아로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혹시 읽고 싶은 책이라도 있으실까요?"


"아닙니다. 저도 씻고 나서 오랜만에 눈이나 붙여볼까 합니다."


"귀공."


시즈가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저는 바보가 아니에요. 그간 한 번도... 귀공께서 주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날카로운 지적을 들은 아로스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알고 계셨군요."


"당연하죠. 같이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요. 매번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으시고, 피곤한 기색조차 드러내지 않으시니까요."


시즈의 눈길은 따스했지만 슬픔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아로스의 고뇌를 이해하고자 하는 듯 잠시 말을 아꼈고, 조금 뒤에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 생활을 견디는 것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신가요?"


"...솔직히 말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요즘은... 제 자신이 인간인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시즈는 시선을 피하며 대답하는 아로스의 말을 단호히 끊었다.


"제가 같은 처지가 아니기에 감히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귀공의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잖아요. 심장은... 살아 있지 않나요?"


"...마음이라."


아로스는 시즈의 말을 듣고 한동안 침묵했다. 단호하지만 부드러운 말투는 의외로 위로가 되었으나, 여전히 내면 어딘가는 허공에 떠 있는 듯했다.


"심장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가끔은 그 심장이 정말 뛰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제 안에 남아 있는 것이 단순히 과거의 잔재일 뿐이라면... 저는 왜 여기에 머무르고 있는 겁니까?"


시즈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인 뒤, 곧 아로스를 향해 따스한 시선으로 말했다.


"그건... 귀공께서 아직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정말 과거의 잔재라면... 그런 사소한 행동조차 하지 않으셨을지도 몰라요. 그것이 버릇처럼 반복된 충동일지 언정... 여기에 머물 이유가, 누군가에게 다가갈 이유가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이겠죠. 그러니... 그렇게 단정하지 마세요."


시즈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확고했다.


"귀공께서 느끼는 고통은 과거의 잔재가 아니에요. 고통은... 그 자체로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잊으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그 무게는, 마음이 아직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 말에 아로스는 다시금 침묵 속에 잠겼다. 벽난로 속 불길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그림자를 일렁였고, 그는 가죽 장갑을 낀 손을 내려다보았다. 언제부터인가 그 손은 체온을 잃은 채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귀공."


시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또한 과거에 많은 것을 잃었어요. 기억도, 감정도, 때로는 제가 누구였는지도 모를 만큼 말이죠. 하지만... 그것이 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할 이유는 되지 않아요."


그녀는 말을 고르듯 숨을 가다듬고, 이어 조용히 덧붙였다.


"귀공께서 이 먼 곳까지 오신 것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걸어오신 건 아니잖아요. 그 여정 속에서 누군가를 지키려 했던 마음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저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귀공이 충분히 살아 있다고 믿어요."


아로스는 시즈의 말을 한 음절 한 음절 곱씹었다. 입술을 다물고 한동안 침묵을 지킨 그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무녀님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군요."


"그럼 시간을 가지세요. 우리 모두가 그 정도의 자격은 있잖아요."


시즈의 미소는 조용히 퍼져 있었다.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무게와 따스함이 공존했고, 그것은 말보다 더 깊이 울리는 진심이었다.


벽난로의 불빛이 잔잔히 흔들렸다. 그 불꽃은 아로스의 눈동자에 닿았다가, 이내 그의 속을 들여다보듯 부서졌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밤이 늦었군요. 무녀님도 이제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말은 담담했지만 눈길에는 무언가 풀리지 않은 여운이 남아 있었다. 아로스가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자, 닫히는 문의 소리가 방 안을 천천히 감쌌다.


혼자 남겨진 시즈는 문 쪽을 향해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로스가 남긴 침묵은 마치 여운처럼 방 안에 머물러 있었고, 그 말 없는 기척은 그녀의 안쪽에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방금 나눈 대화가 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이 전한 말들이 아로스의 혼란 속에서 작은 등불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시즈는 천천히 의자에 앉은 뒤 손을 무릎 위에 얹었다. 벽난로의 불길이 가볍게 흔들리는 소리가 고요 속에 스며들었고, 눈을 감으며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당신의 고통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어.'


방 안의 따뜻한 공기 속에서 불빛은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고, 시즈는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렸다.


"이 말들이 당신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시즈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벽난로의 불길을 조심스레 덮었다. 금빛이 가늘게 꺼져가면서 방 안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지만 창문 너머로는 여전히 달빛이 흐르고 있었고, 그 빛은 마치 누군가의 감정이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듯 묵묵히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고요한 밤공기 속에서 아로스는 시즈의 작은 집을 등지고 검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무심하고, 변함없이. 그저 머무를 뿐, 어떤 대답도 내놓지 않았다. 그 침묵은 오히려 아로스에게 수없이 되뇌었던 질문들을 되돌려주는 듯했다.


'나는 왜 아직 이곳에 있는가.'


그는 언젠가 이 땅을 떠났고, 한 차례 부활을 겪었으며, 다시 이 밤에 서 있었다. 이질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내내 그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았고, 그 고요한 허공에서 무언가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매번 돌아온 것은 차가운 침묵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다. 달빛은 여전히 닿지 않는 거리였고, 별빛은 말이 없었지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틈새는 시즈가 남긴 말들 속에서 서서히 퍼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고통은... 그 자체로 살아 있다는 증거예요. 잊으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그 무게는, 마음이 아직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 여정 속에서 누군가를 지키려 했던 마음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저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귀공이 충분히 살아 있다고 믿습니다.


그녀는 단지 위로만을 말하지 않았다. 부정도, 확신도 아닌, 그저 그의 고통을 감싼 이해를 건넸다. 어쩌면... 그것이 수많은 질문보다 더 선명한 대답이었는지도.


"그 말은... 진실일까."


작은 혼잣말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새어 나왔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자잘한 자갈들이 발아래서 부서지듯 흔들렸고, 그 소리는 밤공기를 가만히 울렸다.


아로스는 여느 때처럼 하늘의 별빛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온기를 머금고 있는 듯했다.


마음 어딘가에서는 오래 닫혀 있던 무언가가 조용히,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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