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여기야."
벨라미가 긴장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도 이곳을 통해서 감옥을 빠져나왔지."
아로스가 시선을 굽히자, 갈라진 바위틈 허리께에 작은 천 조각이 찢겨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바람에 간신히 흔들리는 그 천은, 얼마 전 비탈길 아래에서 만난 소년이 걸치고 있던 옷의 조각과 다르지 않았다.
"오호라, 그 꼬맹이도 이곳을 통해서 나온 거였구만? 짜식, 운도 좋았네."
벨라미가 어깨를 으쓱이며 먼저 몸을 구겨 넣듯 틈새로 들어가자, 아로스도 묵묵히 목발을 바짝 움켜쥔 채 그의 뒤를 따랐다.
틈새 안쪽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다. 몸을 겨우 숙여야 빠져나올 수 있을 만큼 좁은 길이 이어지더니, 곧 성인 남성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좁은 동굴 입구가 드러났다. 바람결이 안쪽에서 흘러나오며 퀴퀴한 냄새와 먼지의 잔향을 묻혀왔다.
"근데 말이야..."
앞장서던 벨라미가 고개를 돌리며 아로스를 힐끗 바라보았다.
"지금 보니까... 형씨 키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은데. 이 좁은 데로 들어가면 움직이기 쉽지 않을 텐데 말이야."
벨라미의 걱정에 아로스는 대꾸 없이 허리춤에서 그에게로부터 받은 망가진 등불을 꺼내 건넸다.
"...다시 돌려줄 테니 앞장서서 길이나 비춰."
퉁명스러운 말에 벨라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등불을 받아 들어 올린 뒤, 몇 번 두드려서 불씨를 되살렸다. 불빛이 바위벽에 드리워지면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겹이 늘어나며 기묘하게 흔들렸고, 아로스는 목발을 한쪽 벽에 세워 둔 채 허리를 숙이고 바위를 짚으며 천천히 벨라미를 따라 동굴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허공에서 번진 등불의 기척은 어둠을 겨우 걷어냈지만 갈라진 바위틈은 끝이 보이지 않는 듯 길게 이어졌다. 바람은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오는지 퀴퀴한 냄새를 실어 왔고, 축축한 기운이 돌벽에 스며 있었다. 앞서 가던 벨라미의 그림자는 언제부턴가 불빛 사이로 흔들리며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걷는 거 보니까 생각보다 멀쩡한 것 같은데? 빨리 좀 따라오라고, 형씨."
허공을 두드리듯 가볍게 튕기는 그 울림은 묘하게 머나먼 굴 속에서 메아리친 듯했고, 아로스는 대답 대신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숨을 고르며 발을 옮겼다. 좁은 바위틈이 끝도 없이 이어지더니 어느덧 어깨가 닿을 만큼 벽이 좁아지는 구간이 나타났다. 허리와 무릎은 저려 왔고, 숨결은 점점 거칠어졌다.
잠시 뒤, 발끝에 힘을 주고 몸을 밀던 아로스는 불현듯 벨라미의 그림자를 놓쳤다. 등불의 기척도, 발소리도 사라져 있었다.
"...벨라미?"
낮게 부른 목소리는 곧 굴의 벽에 부딪혀 퍼졌다. 하지만 되돌아온 것은 텅 빈 메아리뿐이었다. 다만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아직도 그의 농처럼 가벼운 음성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분명 들리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방향은 잡히지 않았고, 불안이 몰려오기 시작하던 순간 앞이 불쑥 트였다. 굽이치던 바위틈 끝에 조금 넓은 공간이 드러나더니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기묘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형체를 가늠할 수 없는 작은 광채들이 허공에 떠다니며 흐르고 있었다. 마치 깨진 별의 파편들이 모였다 흩어지듯, 어둠 속을 천천히 맴도는 모습이었다. 숨결도, 기척도 없이 그저 빛으로만 존재하는 그 광경에 아로스는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뭐지, 이건."
아로스의 시선이 닿자, 은은하게 떨리던 빛들이 다가와 어깨와 팔을 스치듯 흘러갔다. 그 순간, 가쁘던 호흡이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한동안 굳어 있던 다리에 힘이 돌면서 무겁게 짓눌리던 몸이 마치 족쇄에서 풀린 듯 가벼워졌다.
"이게... 어떻게......?"
놀라움과 함께 작은 탄성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으나 말은 끝내 맺히지 못했다. 빛은 대답 대신, 마치 꼬리를 흔드는 짐승처럼 앞쪽으로 길게 이어졌다. 따라오라는 듯한 잔영이 좁은 바위틈 속으로 스며들자 아로스는 잠시 숨을 골랐다가 이끌리듯 발걸음을 옮겼다.
나를 알아보는 것인가. 이 낯선 땅, 깊은 어둠 속에서도 엘나의 흔적이 존재한단 말인가. 육신은 부서지고 지쳤음에도... 이 작은 빛들은 아직 멈출 때가 아니라고 내게 속삭이고 있는 걸까.
빛의 흐름을 따라 바위벽을 헤치자, 위쪽에서 새어드는 희미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 좁은 틈 사이로 구부정히 몸을 숙인 채 손을 흔드는 벨라미의 모습이 보였다.
"거 참, 느려 터졌네! 빨리 좀 올라오라니까?"
그 특유의 투덜거림이 귀를 때렸다. 아로스는 벨라미를 향해 눈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방금... 못 본 건가?"
"뭘 말이야?"
"동굴 안에서 빛들이 날아다녔잖아. 못 봤어?"
한동안 멀뚱히 바라보던 벨라미는 허공을 두어 번 휘적이더니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형씨, 천장에 머리라도 박았어? 헛소리하지 말고 얼른 따라오라구."
영문을 모른 채 우두커니 서있던 아로스는 이내 벽을 짚고 몸을 끌어올리며 다시 좁은 틈으로 들어섰다. 뒷덜미엔 아직도 아까의 빛이 남긴 온기가 잔잔히 스며 있었고, 벨라미의 성가신 듯한 목소리와 달리 그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가볍게 빛나고 있었다.
두 사림이 좁은 틈을 따라 들어선 순간, 코를 찌르는 악취가 매섭게 몰려왔다. 썩은 음식물과 오물, 오래 묵은 곰팡이 냄새가 한데 엉겨 폐를 뜨겁게 짓눌렀다.
"우웩......"
앞장서던 벨라미가 구역질과 함께 얼굴을 찡그리며 뒤돌았다.
"저번보다 훨씬 고약하잖아. 감옥에 똥이라도 들이부었나?"
투덜거리는 소리가 가득 메아리쳤지만, 아로스는 대답 대신 눈살을 찌푸린 채 벽에 손을 짚고 안으로 더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뒤이어 마주한 풍경에 할 말을 잃은 채 시선을 멈췄다.
쇠창살 안 사람들의 모습은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참혹했다. 불에 지져져 살갗이 새까맣게 타오른 손과 발 위의 살점이 문드러져 뼈까지 드러난 자도 있었다. 단순히 사지가 아닌, 가슴과 옆구리까지 화상 자국이 타고 들어가 마치 온몸이 불길에 휘감겼던 듯했다.
바닥에는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진액이 섞인 토사물이 엉겨 붙어 있었고, 끊임없이 스며든 오물이 썩은 냄새를 더해 주었다. 죄수들은 그저 숨만 붙어 있는 껍데기 같았다. 고개를 푹 떨어뜨린 채 미동도 없는 자, 바닥에 쓰러져 얕은 숨만 겨우 몰아쉬는 자. 간혹 손끝이 떨려도 그것은 생명력이라기보다 반사적인 경련 같았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벨라미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일그러졌다. 옅은 웃음으로 애써 가리려는 듯 보였지만, 일그러지면서 생겨난 눈가의 주름은 숨길 수 없었다.
"...내가 갇혀 있을 땐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씁쓸한 중얼거림을 뒤로 걸음을 옮기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감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그들 또한 팔과 다리는 이미 화상으로 문드러져 검붉게 일그러졌고, 뼛가죽이 드러난 몸은 기괴하게 구부러져 있었다.
그 광경 앞에서 아로스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하반신이 축 늘어진 듯 앉아 있던 여인이 고개를 흔들더니 허옇게 흐려진 두 눈을 허공에 내밀었다. 간신히 허리를 가린 해진 넝마 아래의 허벅지 안쪽에는 시든 꽃잎 같은 멍 자국이 음습하게 번져 있었다. 눈동자는 빛을 잃어 있었지만, 얼굴은 냄새를 더듬듯 바싹 일그러졌다.
"...간수가... 아니시군요."
떨리는 목소리가 쇠창살 사이로 스며 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마치 손끝으로 바닥을 더듬듯 움직이다가, 이내 허리를 움츠리며 애원했다.
"제발...... 제발, 제 딸 좀 살려주세요...! 아무것도 모른 채 이곳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햇빛을 본 적이 없어요. 이대로 죽게 할 수는 없어요......!"
여인은 떨리는 손을 뻗어 자신의 곁에 웅크린 작은 인기척을 더듬어 찾았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아이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 그녀의 뼈만 남은 손이 아이의 어깨를 간절하게 감싸 안았다. 허옇게 먼 눈에서 끝도 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여인의 흐느낌은 쇠창살을 넘어 길게 울려 퍼졌고, 아로스의 시선은 여인의 손길이 머문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피골이 상접한 소녀가 웅크리고 있었다. 다른 죄수들에 비해 눈에 띄게 사지가 멀쩡한 그 모습반 봐도 여인이 얼마나 온몸으로 막아내며 지켜왔는지, 그 끈질긴 사투를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무언가를 더 묻기도 전에, 뒤편에서 무겁게 바위를 긁는 듯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쉿, 간수야!"
다급히 속삭인 벨라미가 아로스의 팔을 붙잡은 채, 가까이 있던 커다란 오크통 뒤로 몸을 끌고 가 숨었다. 코끝을 파고드는 썩은 오물이 찌든 통은 상상이상으로 역겨웠지만, 벨라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소리가 들리는 곳을 응시하며 낮게 말했다.
"간수들은 눈과 귀를 멀어서 여기 숨어 있으면 눈치 못 챌 거야. 냄새가 워낙 지독하니까."
벨라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둠 저편에서 간수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깨는 천장을 스칠 듯 넓었고, 한쪽 팔은 몸집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비대했다. 부풀어 오른 손끝은 돌바닥을 스치며 질질 끌렸다. 간수의 얼굴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검게 혼탁해진 쭈글쭈글한 피부, 찢어져 양옆으로 늘어진 입술, 누렇게 불어 터진 커다란 눈은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안구가 바깥으로 돌출된 듯 보였다. 인간도, 수인도 아닌 그 흉물은 짐승 같은 괴이한 숨소리를 뿜으며 다가왔다.
감옥 앞에 멈춰 선 간수는 코를 벌름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열쇠를 쥔 손으로 자물쇠를 더듬었다. 그 순간까지 감옥 안은 죽은 듯 고요했다. 죄수들은 기절한 듯 고개를 떨군 채 잠들어 있었고, 몇몇은 얕은 숨을 몰아쉬며 축 늘어진 몸을 바닥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자물쇠가 따이면서 녹슨 쇠의 날카로운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잠들어 있던 이들이 놀라 눈을 뜨며 몸을 움찔거렸다. 쇠창살이 삐걱이며 열리는 순간 죄수들의 얼굴엔 순식간에 공포가 번졌다. 허옇게 굳은 눈동자들이 공포에 사로잡혀 떨렸고, 몇몇은 본능적으로 벽 쪽으로 몸을 웅크리며 신음 같은 소리를 흘렸다.
요란한 금속음에 맞춰 쇠창살이 활짝 열리자, 간수의 그림자가 어둠을 짓누르며 뒤틀린 손이 감옥 안으로 뻗어 들었다. 퉁퉁 부은 손가락이 살점을 움켜쥐듯 죄수들의 어깨와 팔을 더듬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들이 격렬히 몸을 떨며 뒤엉켰고, 곧이어 절규가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악——!"
"살려줘! 살려달라고! 제발! 안 돼——!"
"으아아아, 팔이... 내 팔이!!"
비명은 서로 다른 음색으로 겹쳐 울려 퍼졌다. 쇠창살이 요란하게 흔들리며 삐걱대는 소리와 함께 일곱 명의 몸이 거대한 손아귀에 휘말려 한꺼번에 질질 끌려 나갔다.
그때, 간수의 발끝이 하반신이 굳은 채 바닥에 웅크린 여인을 밟았다. 미처 피하지 못한 그녀의 몸을 걸고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한 괴물은 곧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찢어진 입을 활짝 벌렸다.
"크르아아아아아악———!"
짐승처럼 터져 나온 괴성은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감옥 천장을 울렸다. 침 섞인 바람이 퍼져 나오며 주변 공기를 뒤흔들었고, 감옥 내부에 남아 있던 이들은 하나같이 몸을 웅크리며 떨었다. 흉포하게 으르렁거리던 간수가 반대쪽 손으로 여인의 다리를 덥석 붙잡아 끌고 나가자, 그녀는 바닥을 발톱처럼 긁으며 울부짖었다.
"안돼...! 안돼......! 아아아아악!"
허옇게 먼 눈에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고, 그 시선은 두 사람이 몸을 숨긴 곳을 향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제발... 제발 제 딸 좀 살려주세요! 제발 좀 살려주세요! 제발! 제바아알——!!"
목이 터져라 외치는 소리는 절규라기보다 기도와 같았고, 몸부림이라기보다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낸 필사의 몸짓이었다. 핏자국을 남기며 끌려간 여인이 자신의 딸을 살려달라는 찢어진 비명은 어둠 저편으로 삼켜질 때까지 이어졌다.
잠시 감옥 안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죄수들은 고개를 떨군 채 숨조차 죽였고, 그 사이 아로스는 여인이 마지막까지 살려달라고 울부짖던 그녀의 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녀의 모습은 난리통 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간수가 죄수들을 질질 끌고 가버린 바닥은 오물과 피로 흥건했고, 그곳에 있던 작은 그림자는 어디론가 숨어버린 듯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거야... 분명 저기 있었는데."
벨라미가 낮게 중얼거리며 감옥 안으로 성큼 들어서자, 아로스 역시 주위를 살피며 그 뒤를 따랐다. 구석마다 처참한 몰골로 엎어져 있는 죄수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지만 둘은 포기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희미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감옥의 가장 어두운 구석, 바위와 벽 사이의 틈에 어린 소녀가 웅크리고 있었다. 마른 팔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바위틈에 스스로를 파묻으려는 듯 몸을 떨고 있었고, 벨라미가 먼저 나서더니 조심스레 손을 내밀며 낮게 말했다.
"꼬마 아가씨...? 아저씨들 나쁜 사람 아니야."
그러나 소녀는 얼굴을 홱 돌려버리고는 더 깊숙이 몸을 움츠렸다. 작은 어깨가 파르르 떨리며 눈길조차 주려 하지 않았다.
"아니,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
벨라미가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투덜거리자, 아로스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서더니 무릎을 굽혀 몸을 낮추었다.
"겁낼 것 없어."
낮고 차분한 목소리에 소녀의 떨림이 잠시 멎었다. 한참 머뭇거리던 아이는 바위를 짚고 일어서더니,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아로스는 소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서 손을 내밀고 기다려 주었다. 어둠 속에서 보았던 빛들이 그의 어깨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듯, 소녀의 눈동자가 아로스에게 고정되었다.
"걱정하지 마렴. 여기서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