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by 유월

그대가 또 그리 말해도, 꽃은 아름답더라. 오뉴월의 꽃은 만개하여 세상을 뒤덮으오. 고통 가득한 세상은 자연을 만끽하고는 자연스럽게 치유되오. 그대가 맘 아파 이 글을 덮더라도- 나는 신경 안 쓸렵니다. 하늘처럼 푸른 우리의 시절을 남겨놔야 하지 않겠소? 그제는 저버리고 내일에 속주해야 하지 않겠소? 수려한 꽃 위에 이 방랑록을 올려 보내드리오리다. 그대의 깊은 상처에 소금 뿌려 올리오리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까지- 그리 멋진 사람이 아니었소. 사실, 미카엘이 내 인생의 전부를 만들었습니다. 방에 드리운 커텐의 그림자는 나와 세상을 나누는 철벽이었지. 깊고도 어둔 커피의 풍미를 느끼며, 소-팽의 음악을 음미했으리. 그런데 아뿔싸. 빵이 없어. 낸들 알겠나. 낸들 알았나. 이미 굳어버린 다리가 떨어짐이 아니오, 뭐- 죽는 것보다는 날것이외다.

떨어진 다리는 제 것이 아니듯 질주하였소.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무슨 느낌인지도 모르고. 내 머리에는 빵집 밖에 또 없었으니까. 감상에 젖어 허둥댈 시간이 없읍니다. 근데, 저건 뭘까? 길가에 쓰러진 검은 형체의 무언가 말이오. 아-그렇군. 세계대전 끝나고 쏟아져 나온 부랑자였소. 허무를 음미하면서 살기를 포기한 부류이거나, 아님 진짜 집이 없어 방랑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나는 전자중 하나입디다. 딱히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방랑이 실치마는 않아- 옆에 착석했지. 이게 방랑의 시작이외다.


만일히 어느 님이 내게 물으신다면-'후회는 없었느냐' 물으신다면, 제 눈물 훔치며 그렇다 외치리. 들끓는 피가 목에 골골대는 와중에도 후회 없다 외치리. 가족 잃은 슬픔에-살 수나 있겠나. 감히 내가 두 딸 잃은 슬픔에 목 붙일 수 있겠소. 그때는 지옥이었지. 난간을 붙잡고 곰곰이 생각했어. 그대여 내 이 말은 한 적 없던가? 지금이에야 털어놓겠소. 나를 원망하시오.

'내가' 버렸소.

그래 내가 버렸으리이다. 어떻게든 살릴 수 있었는데, 진짜 살릴 수 있었는데. 망할 동맹국 놈들이 총질할 때. 내가 몸으로라도 막았어야 했는데. 패배자 겁쟁이었던 나의 목숨줄은 끔찍하게도 오래 붙어있지. 그때가 아마-1917년이었던가. 아직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끔찍한 순간.

찢어지는 목소리에서는 마지막 숨결까지 따라 나오더군. '아빠! 아빠!', 달려오는 동맹군 2명이 두 딸을 보고 눈이 뒤집어진 겁니다. 그때 잠시 멈칫해 버린 게, 정신병이 도져버린 것이외다. 함께 싸우다 전사한 전우들, 내가 지휘하다가 죽어버린 병력. 진흙 가득한 얼굴에서 뿜어지는 핏내. 내가 달려갔어야 했는데, 그 나쁜 놈들의 몸을 발로 차버렸어야 했는데. 이 이상은 서술하기도 힘드오. 이야기를 어디까지 했더라. 아! 그렇군. 내가 방랑하게 된 이야기.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