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2화밖에 없지만, 독창적인 서술기법과 개연성, 복선, 철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연재할 계획은 없죠. 이 책의 복선이 무엇인지는 여러분들이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제가 이걸 왜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관이 아깝네요.
나는 내용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철렁 내려앉는 가슴을 쥐고는 동요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이비로만 믿어왔던 내용은 나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감상 속 자신의 신학자로서의 낭만성이 나를 잡아당기고 있었기에 말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다시 바라본 묵시록. 로마에 배포되어 모두가 읽어왔던 그 묵시록에 쓰여있는 그 단 한 단어가.
휴거는 이미 선언되었고, 사람들은 자신을 믿어 바라본다. 손에 묻은 땀은 모두의 삶을 대변하고만 있었다. 왜 그의 말이 그리 미더운 건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저 눈이 부시게도 밝은 하늘은 푸른빛 돌지 않고 반짝이며 모두를 기다리기만 했을 뿐.
"나는 저기로 갈 수 있겠지."
"난 착한 사람이잖아."
사람들은 예배당에 가 미친 듯이 찬송하고 예배드렸다. 길거리에 나앉은 거지들은 돈을 벌여들였고, 이 때문에 일부러 거지로 개직한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시간은 1345년 2월을 지난다.
나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신학자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예배당에 들어가 성경을 하나하나씩 곱씹어 보면서 그의 말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였고, 곧 그의 말이 성경 내에서 완전히 부합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별로 시간이 그리 지나지 않을 때였다. 나는 신학자로서 번듯한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했고, 사실 휴거로 천국에 간다는 것만이 나의 진정한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완벽하게 알고 있었기에 천천히 산책을 하면서 고민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 무엇일까?' 하면서.
그러다 나는 다시 묵시록을 바라본다. '성물'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성물'을 가진 자와 선한 자가 휴거 되어 올라간다. 그럼 성물은?
일단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지금은 판본으로 읽고 있긴 하지만, 이 묵시록의 진본이 성물이다. 그럼 성물은 누가 가지고 있어야 마땅한 것일까? 아니, 성물을 가져야만 휴거 될 수 있는 인물은 악인이 아닐까? 아니, 그걸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다면 그 자체만으로 악인이 아닌가?
수많은 생각이 나를 고민시킨다. 그리고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 빼앗은 자 이외에 이 성물을 가지려는 자들은 모두 휴거 되지 못한다는 결론이.
저 언덕에 널어 누운 새들을 보라. 하아. 하아. 하아.
그래. 나는 휴거 되지 않는다.
그래. 나는 어떻게든 정의를 지킬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든 묵시록을 찢어버릴 것이다.
휴거. 그 책엔 그렇게 똑똑히 적혀있었다. 책 속 요한이 내게 손을 흔들어주는 듯 눈에서 눈물이 똑-똑 흐른다. 그럼 사라진 사람은 누가 있는 것일까? 중세 정부는 왜 이것을 역사로써 남겨놓지 않았을까? 귀족들이 휴거 되지 않아서?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날까 봐?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영으로 써져 있는 이 글이 요한의 것이라는 그 믿음조차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누가 보아도 이상하긴 하다. 비유와 영으로 말하는 예수의 수제자가 쓴 표현.
'인간은 예수님 탄생 후로 계절을 꼽아 기다리는데, 겨울이 천 삼백 사십 네 번 지난 후의 가을에 성물을 가진 자와 선한 자가 휴거 되어 하늘에 올라갈 것이다.'
지나치게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나, 뭐 책에 따라 표현 방식은 크게 바뀌니까.
시간은 2030년 5월을 지난다.
추가기재.
원래는 이대로 끝내려 하였으나, 제가 구상해 놓은 세계관이 너무나도 아까워서 두 가지만 더 기재하려 합니다.
1. 이 소설은 중세시대의 시점 속에 '그리고 휴거 된 자는 아무도 없었다.'라는 말로 끝나게 됩니다.
2. 1345년의 다음 연도는 1346년으로, 흑사병이 시작된 년도입니다. 휴거 되지 못한 벌이 흑사병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