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정당화시키는 철학적 고찰

by 유월

사람들은 항상 "일찍 일어나라"라고 말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좋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다.

"일찍 일어나는 벌레가 새에게 잡아먹힌다."

이 글은 왜 우리가 철학적으로 늦게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고 있다.


그렇다. 헛소리다. 해학글이니 진지하게는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밤 10시에서 새벽 2시에 성장 호르몬이 분비된다"라고 말한다. 내가 과학을 잘 모르나, 우리 몸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시간을 따르지 않는다. 누구의 시계는 2시간 빠르고, 누구의 시계는 2시간 느리다. 그럼 그 모두 다른 시계 속 인간은 어떻게 정확하게 10시에서 새벽 2시에 정확히 맞추어 성장한다는 말인가.

이건 진짜 그냥 궁금한 거다.


철학은 때때로 진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도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인간의 철학성은 용불용설에 따라 진화하지만, 인간의 몸은 항상 생존에 적합한 방향성으로 진화해 왔다. 따라서 인간의 철학성은 훨씬 더 느리게 발전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보여주려는 욕구가 박혀있기에,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고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30만 년 전부터 더 이상 생물학적으로 진화하지 않는다. 왜일까?

인간은 생태계에 완벽히 적응했기 때문이다. 결국 늦잠을 자는 형태의 인류가 생태계에 완벽하게 적응한 결과라는 말이다. 욕구를 중시하는 니체 중심적 현대 철학 내에서는 인간의 진화를 따르는 늦잠이 부정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잠은 인간의 업데이트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럼 늦잠은? 연장 업데이트 아닌가? 연장 업데이트 없이 프로그램은 돌아가지 않는다.

좀 더 길게 써보려 했는데 더 할 드립이 없다.


늦잠은 행동이 아니라 사상일 뿐이다.

<이방인>을 쓴 알베르 카뮈는 이런 말을 했다.

"시시포스가 돌을 굴리는 순간, 그는 선택의 자유를 갖는다."

"우리는 행복한 시시포스의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

잠을 잔다. 늦잠을 잔다. 우리에게는 주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늦잠을 자는 순간 우리는 "일찍 일어나라"는 현대의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게 반항한다.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잘 수 없다. 하지만 잠을 청하는 순간, 우리는 계속하여 선택의 기로에 선다. 잠은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에게 투쟁하는 행위다.

가장 솔직한 행위. 가장 아름다운 행위. 늦잠은 자는 인간이 정말 인간다운 것 아닐까.

이상으로 헛소리를 마친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네 철학을 네 삶으로 증명하라."

철학은 내 삶을 바꿨다.

예를 들어, 내 기상시간을 말이다.

내가 이러려고 철학 공부한 게 아닌데...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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