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는 믿지 않지만 병오년을 기대해

by 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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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사주가 의심스러워졌다. 사주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하나의 의견을 정해야 한다면 51%의 확률로 안 믿는다고 대답할 것 같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아무'나 사주를 봐주겠다고 덤볐는데, 지금은 수시로 사주를 봐줘서 여덟 글자가 자연스럽게 기억나는 진짜 지인들만 봐준다.




공부를 놓으며 실력도 미천해졌는데 사주 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학을 못하는 학생이 머리와 노력 탓을 하는 게 아니라 수학 탓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 사주가 너무나도 알고 싶었던 십여 년 전의 나와 지금의 인생이 많이 달라진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공부와 취미 중 하나인 사주가 희미해졌다고 해서, 폐기처분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 때 몰입했던 그 때나 지금이나 실력은 부족하지만 사주를 품고 살아온 시간이 길고, 공부하겠다고 애쓴 노력도 적지 않다. 그 시간과 정성을 부정하고 싶진 않다. 시간과 노력, 투자금이 아까우니 본전 생각을 하겠다는 의미도 아니다. 배우면서도 '과연 맞나? 인생을 사주로 해부해도 되는 건가? 아니라면, 굳이 이걸 공부해야 할까?' 끊임없이 반문하던 질문들에 조용히 결론을 내렸다는 게 정확하겠다. 한 때 빠져들었던 책을 책장에 꽂아두고 더는 꺼내지 않는다고 표현하면 맞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하루에 한 번은 '사주'를 떠올린다. 을사년에서 병오년으로 넘어가는 동짓달이 되자 마자 '병오'의 의미가 뭔지 알겠다는 듯 갑자기 달라진 나의 변화를 사주에 대입시킨다. '아무래도 내가 운동인이 되어 가는 건 이른 병오 기운 때문인가 보구나.'라면서 말이다. 친구와 송년회 하자며 내년을 계획하면서도 사주 이야기다.


"너, 올해까지는 괜찮은데 내년에는 시험운이 그다지 좋진 않아. 2년 묵혔다가 3년 뒤에 하는 게 어때?" 라며 조언을 해 준다. 조심스러워 대부분 둘러 말했던 표현도 솔직해졌다. 안 그래도 한 달 전부터 전혀 공부할 상황이 안된다고 한다. 친구 딸의 진로와 직장 문제도 상담해 주면서 "2년 안에 취직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서슴없는 결론을 던지기도 한다.




새해가 다가오니 아들들 사주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한 녀석은 공부하기 좋은 시기가 왔으나 삼재도 있으니 늘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지내야 하겠고, 한 녀석은 과도하게 무리해서 건강이 나빠질까 봐 걱정이다. 중요한 시기인데, 잡생각이 많고 공사다망해서 오히려 집중하기 어려워 시간만 보내는 병오년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시간을 엄마는 알 수 없다. 걱정되는 부분을 알려주고,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지만 일어날 수 있는 ' 안 좋은 일'에 대해 조언해 주며 마음 준비를 수시로 시킨다. 아들보다는 엄마 마음을 단속하는 게 맞을 것이다.




친정 엄마를 떠올리니 살짝 걱정이 되는데, 노인들은 불안함을 많이 느끼니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괜스레 울컥함이 치솟을 수 있으니 마음을 잘 다스리시라는 이야기 정도는 해도 될까. 절친과 싸워서 사이가 벌어져도 상심 말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읽으면서 어이없을까?
이래놓고 사주를 믿지 않는다니 말이다.






한 때 스치듯 생각했던 욕망이 떠올라 웃음도 난다. 덕질을 시작하며 덕주들의 공연 소식이나 콘서트 리뷰, 정보를 올리는 팬 블로그의 성격이 강하지만, 온갖 취미활동을 남겼기에 잡탕이 된 내 블로그엔 사주 이야기도 많다. 연예인들 사주를 가볍게 올리면 조회수가 급증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큰돈 들여가며 열심히 사주 공부 할 때는 '사주 블로그로 바꿀까?' 도 생각했다. 블로그가 성장하려면 사주가 필요해 보였다. 굳이 블로그를 키울 생각이 없어서 잠깐 고민해 보고 말았지만.




사주를 믿지 않으니 사주 이야기를 주기적으로 쓸 일이 없어, 블로그가 더 쪼그라들 일만 남아서 웃음이 나는가 보다.







사주란 절기학이다.






변화무쌍한 인간의 삶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서 자연에 '비유'한 사주는 계절 변화와 시간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처럼 예측할 수 있다고 여긴다. 가볍지만 조금이나마 공부해 온 나의 판단이다. 목, 화, 토, 금, 수 다섯 가지 성질을 지닌 십간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가 같은 오행(목화토금수)의 성격인 지지, 12 띠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를 만나 60개의 주인공이 되는데 자연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나란 존재는 나무, 불, 땅, 금, 물 중 하나다.




자연은 다양하다. 촉촉하고 비옥한 땅도 있고, 사막의 모래처럼 건조한 흙도 있다. 한 여름의 햇살처럼 강렬한 불도 있고, 밤하늘 조용히 빛나는 달 같은 빛도 있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있고, 질기게 살아남는 잡초도 있다. 여름 덩굴도 있고 겨울 인동초도 있다. 산자락에 우뚝 솟은 단단한 바위도 있고, 땅 속 깊이 박힌 보석도 있다. 큰 파도가 치는 대양의 바다도 있고 인적이 닿지 않는 깊은 산속에 맑은 옹달샘 같은 물도 있다.




자연은 변화한다. 촉촉한 땅이 얼기도 하고 언 땅이 녹기도 하며, 강렬한 햇살은 겨울이 되면 보드랍고 따스해진다. 무성한 잎을 피워냈던 커다란 나무는 날이 추워지며 낙엽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겨울을 지내기도 하고, 언 땅이 녹을 무렵에는 새싹을 피워내기도 한다. 바위도 세월이 흐르면 마모되고, 금속은 불은 만나 제련되어 보석이 된다. 한 여름의 무서웠던 바다는 어느 가을날 아름다워지고, 산속에서 꽁꽁 얼었던 샘물은 한 여름 나그네에게 달고 차디찬 식수가 되어 준다.




자연은 패턴이 있다. '변화'는 있지만 비슷하게 반복된다. 예측 불가능한 재해도 있었으나 예상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대부분이었으리라. 농사를 짓던 그 시절, 자연의 변화와 반복되는 절기는 절대법칙이었을 거것이다. 인간의 삶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살아남았을 것이다. 사주는 그런 교훈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변화무쌍해서 무서운 세상, 조심스럽게 예측해서 살아남아 보자고.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사주가 발달했던 과거에, 인간 삶은 단조로웠다. 권력을 잡아야 하는 계급은 10-20% 정도였고, 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인재로 발탁되어 좋은 가문과 연을 맺으면 되었다.


정치는 살벌했지만, 처신을 잘하면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나머지 백성들은 농사를 지었으며 농사짓는 삶, 혹은 바다에서 고기 잡는 삶은 특별할 게 없었다. 하루하루가 비슷했으리라.




지금 우리의 삶은 우리보다 백만 배는 똑똑할 AI조차 어떻게 달라질지,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어떤 직업이 새로 생길지 확신할 수 없는 세상이다. 불과 100년-200년 전 인류의 삶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큰 변화 없이 비슷했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화가 이루어지며 달라진 삶의 변화는 오랜 시간 인류가 겪은 변화와는 질적 양적 차이가 엄청나다. 에너지 사용량만 해도 어마하지 않은가. 수천 년 사용해 온 에너지보다 불과 수십 년간 사용량이 더 많으니까.




그런데 80%가 농사짓던 시대에 만들어진 학문이, 자연에 빗대어 인간의 삶을 분석하는 학문이 과연 요즘 시대에 맞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해석학'의 관점에서는 괜찮다. 사회 변화는 롤러코스터지만,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사는 건 과거나 지금이나 비슷하니 잘만 해석하면 예측하고 대비하는 일이 틀리지는 않을 수 있다. 문제는 계절의 변화와 절기의 흐름처럼 '다가올 일'에 인생을 대입해서 풀어내고 예상하는 일이 100% 맞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나를 잘 모르는 누군가의 말, 전문가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타인의 말에 인생이 흔들리는 것이 문제다.




알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책을 읽고 참고하는 것처럼, 궁금한 문제를 다양한 검색을 통해 알아보는 것처럼, 가볍게 참고하는 수준이 적당하지 않을까. 좋은 책이 도움은 되지만 내 문제를 풀어주진 못한다. 내가 풀어야 한다. 사주도 마찬가지다. 사주의 해석대로 인생은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요즘 유행하는 연애운이나 진로, 진학운이 맞으면 얼마나 맞을까. (나는 진학운 공부해서 아들 대학 보내긴 했지만) 남녀관계는 커플마다 생김새와 온도가 다를 정도로 다양성이 있고, 직업이나 진로 또한 전문조차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시대이다. 꽃나무에 꽃이 피는 시즌처럼 곱게 피어나는 인생 시즌은 예측할 수 있으니, 이때에 연애를 하면 괜찮겠구나 정도? 언 땅이 녹아서 촉촉해졌으니 누군가 다가오면 일이 성사되겠구나 정도?




공부해서 축적을 해야 하는 인생 시즌이 있고,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성취하고 돈 버는 시기가 있으니 올해가 공부를 하는 게 좋은지 취직을 하는 게 좋은지 판단하는 정도? 마음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사람이 꼬이는 시기라 집중이 안되니 내 탓하지 말고 위로하는 정도? 이제는 능력 발휘를 하고 싶은데 부모님의 건강이 안 좋아서 돌봐드려야 하는 시기라 좀 더 인내해야 하는 것을 알고 마음 준비를 하는 정도?




다들 사주를 믿지 않는데 나만 괜스레 고민하는지도 모르겠다.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면 사주는 가십이 되었는데 말이다. 맞다. 사주는 가십거리가 되었다. 연예인들의 연애나 망신, 결혼과 이혼을 예측하고 당사자도 밝히지 않은 원인을 판단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그나마 학문으로 위상을 갖추고 있었는데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위상이 추락한 것도 같다.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내년의 운세가 궁금해서, 몇 년 후 내 인생이 알고 싶어서, 앞으로 펼쳐질 흐름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기대를 품으며 사주를 생각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에 대하여 헤아려 볼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주의 해석이 주인공은 아니라는 명확한 생각도 변함없다. 사주는 인생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건 주인공뿐이다. 인생의 책임도 주인공이 져야 한다. 팔자소관이나 사주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아니다. 운이 좋은 이유도 주인공 덕분이고 실수나 잘못도 주인공 때문이다.




인생은 관계라서 내 뜻대로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심지어 한 번도 내 뜻대로 내 의지로 된 적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이 오가는 일에 내 의지가 얼마나 있었던가. 운명 탓을 하고 팔자 탓을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인생은 이름으로 주어져 이름으로 남는다. 사주의 여덟 글자는 부록도 되지 못한다.




내년은 병오년이다. 병오는 강력한 불기운이다. 병화와 오화가 간여지동으로 들어온다. 강렬한 불기운이라서 꽤나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화란 녀석은 미토와도 합이 되고 술토와도 합이 된다. 인오술 삼합도 있고 사오미 방합도 있다. 자오충도 있고 오 축 원진도 있다.




미토와 술토와 축토를 모두 가진 나는 각오를 해야 할 것도 같다. 거기에 신금까지 깔고 있으니 또 무슨 변화가 있으려나. 몸과 의식주, 끼와 표현능력, 관성을 치는 상관의 치기가 어떤 사건을 만들어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12월부터 시작한 운동이 인생에 훅 들어와 '운동중독'을 의심할 정도니 벌써부터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나에게 식상인 병오의 불기운이 누군가에겐 겁재와 비겁인 사람이 될 수 있고, 공부나 문서와 관련한 인성이 될 수도 있으며 직장이나 남편, 자녀와 연관된 관성이기도 하며 재테크와 월급, 혹은 아내 즉 재성이 될 수도 있다. 사주 조합에 따라 합과 충을 오가며 부족한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과한 사람에게는 태과의 기운이 넘칠 수도 있다.




다음 해의 기운이 동짓달에 느껴지니 12월 들어 어떤 변화가 있는지 생각해 보라. 내년의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질지도 모른다. 단순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추운 사주에게는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이고 더운 사주에게는 고난의 해가 될 것이다.




어떤 사건이 펼쳐지든 정답은 마음 자세다. 겸손하게, 감사하게, 특히 덤덤하게 보낸다면 병오의 간여지동도 꼭 필요한 불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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