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 : 사랑을 잃어버린 시대라서

by 루서
로맨스
저예산영화




잔잔한 영화지만 볼만하다고 했다. 아바타의 기록을 넘어선다는 한국 영화. 원작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문가영 배우는 익숙하지 않지만, 구교환의 연기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로맨스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끔 봐주는 것도 괜찮지.




참 괜찮았다.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영화 #건축학개론 의 다른 버전. 이제 30대 후반에서 40 초반에 이른 세대들이 공감하기 좋은 세대 영화였다. 남녀 간의 사랑에만 포커스를 두면 공감의 폭이 좁을 텐데 그 시대를 상징하는 다양한 사회상들이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등장해서 스며들기 좋았다.




가끔 지극히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남녀 간의 사랑에도 그 당시 문화와 정치와 예술, 그러니까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모두 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모르는 타인의 사랑이라서 낯설어야 하는데 나의 이야기 같다.


둘만의 사적인 영역이 내 인생 같다. 오히려 주인공은 서로의 마음을 모르고 오해하지만, 중간 지대에서 바라보는 관객은 모든 것이 이해된다.




은호와 정원도 그랬다.


정원을 아낌없이 사랑하지만, 왜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는지


기댈 곳 없는 정원에게 집이 되어준 은호라서 많이 참고 견뎠지만 결국 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다 알 것 같았다.




사랑을 시작한 건 은호와 정원이었지만, 사랑을 끝낸 건 그들이 아닌 시대의 이유였으니까.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무기력함 때문이었으니까. 사랑이 비극인 이유는 시대 탓, 사회 탓이어야 정통 멜로물로서 완성된다.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정통 로맨스 영화다.




이 영화가 유독 좋았던 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함의 정서'도 있겠으나, 어쩌면 현실을 살아가며 계산이 필수가 된 우리들과 달리 '사랑의 순수함'과 '관계의 따듯함' 때문인 것도 같다.




우린 로맨스를 좋아한다. 사랑에 감동받기를 좋아한다. 타인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면 행복해한다. 그래서 드라마를 좋아하고, 남녀 사이의 애정을 다른 예능에 열중한다. 유난히 로맨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한 둘 이던가.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사랑 앞에서 재고 계산한다. 살아가기 힘든 세상을 조금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조건'을 고려한다. 먹고살아야 하는 세상, 한 눈 팔면 남들보다 훨씬 뒤처지는 세상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좋은 동아줄을 잡는 게 유리하다. 내 상대는 썩은 동아줄이면 안된다. 단단하고 탄탄해서 나를 업그레이드시켜줄 수 있거나, 최소한 나의 비슷해서 짐이 되면 안 된다. 남녀 사이의 결합에 사랑의 순도는 낮아지고 현실 조건의 비중이 부쩍 올라왔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누구나 살아가고 있으니 타인의 이기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대적 변화'라며 슬며시 젖어들고 있다. 나 또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여긴다.




잃어버리기 싫지만 떠나보내야 하는 각박한 현실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정원을 사랑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은호, 정원을 성장을 위해 희생하고 싶어 하는 은호의 마음은 요즘 같은 세상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은호의 사랑을 우정이라 여기며 당연한 백그라운드로 쓰는 순간에도 은호는 정원을 사랑한다. '요즘 이런 사랑이 어딨어..' 저절로 속말을 하게 된다. 한 때는 평범했을지도 모를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은호가 관객은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쩌면 관객도 한 때 은호 같은 사랑을 품었던 때도 있을 것이다. 은호처럼 순수했던 과거가 어렴풋 오버랩되기도 할 테다.




기댈 곳이라고 없는 정원은 은호마저 잃을까 두렵다. 그래서 은호의 마음을 처음엔 거부하지만 받아들인 이후로는 한결같이 따듯하다. 은호를 위해 많이 애썼다. 은호가 은호를 잃어버린 순간에도 정원은 은호를 부여잡았다. 요즘 정원 같은 여성이 있을까 싶다. '너라면 반지하도 괜찮아!' 라며 용기 내는 사랑이.




은호와 정원의 다리가 되어준 은호의 아버지도 요즘 찾아보기 어려운 캐릭터이다. 가족 간의 정을 느끼게 해주는 은호의 아버지 덕분에 은호와 정원의 사랑이 더욱 빛났고, 그래서 관객은 더 많이 아팠다. 마지막 장면이 눈물바다가 된 건 아버지 때문이었으리라.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은호와 정원보다는 아버지의 지분이 더 컸다.




차분한 영화의 색채감도 한 몫한다. 현재가 흑백이고 과거에 컬러를 입힌 화면 구성이 독특했는데 거기에도 아름다운 이유가 있어서 처음과 끝의 연결이 자연스러워지며 영화의 완성도가 올라간 느낌이다. 자극적인 장면 없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영화가 매끄러워서 한 순간 딴생각이 들지 않는다.




은호와 정원의 마음을 살피며 유난히 따듯한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관객의 경험과 일치하는 아픈 장면에서 옛 생각이 떠올라 울어버리게 되는 영화다. '나도 참 예쁘게 사랑하던 때가 있었구나.' 라며 갑자기 스스로가 애틋해져서 더 아련해질지도 모른다.






사소함의 디테일을 잘 살린 영화이기도 하다. 선풍기를 잊을 수 없는 이유다.




세대 불문, 남녀 불문 누구에게나 추천하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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