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이 구역의 미친년
학교가 난리다. 28년째 학교에 있었지만 이런 구역은 처음이다. 나와 1도 상관이 없는 문제이면서, 조직이란 작고 사소한 문제라 해도 돌고 돌아 결과가 원인이 되기도 하기에 전혀 상관없는 문제는 아니다. 행여 나중에 내 문제가 될까 봐 이야기에 집중을 해보지만, 그동안 보아온 동료들과 결이 달라서 듣고 싶지 않다.
직장 내 복잡한 갈등이 발생하면 걱정이 되어 귀 기울이기도 하고, 가십거리로 생각해서 흥미를 가지기도 한다. 착하고 순한 사람들은 진지한 인류애를 발동하여 도와주기 위해 끼어들기도 하고, 친한 사람의 불이익을 차마 볼 수 없어 편을 들어주기도 한다. 나는 공익이나 정의와 닿지 않는 사람 사이의 갈등은 차단하는 편이다. 좋지 못한 이야기, 몰아가는 이야기를 내 영역으로 끌어들여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 타인의 스트레스까지 안아 줄 도량은 못된다.
큰 학교는 소문이 늦기도 하고 아는 사람만 알아서 촉이 무디면 굳이 알지 않아도 될 텐데, 작은 학교는 눈감고 귀 닫고 있어도 저절로 알게 된다. 가족 같은 분위기가 부정적일 때의 모습이 이런 거구나, 피부로 체감 중이다. 심지어 어제는 내부 민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회의 참석자를 대상으로 한, 일대일 질의에 참여해야 했다. 목격자 내지 증인의 입장이 되어 교육청 장학사와 일대일 면담을 한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오늘은 언니들과 톡을 하다가 그랬다.
이 구역의 미친년이 다 모인 것 같아!
거친 표현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도무지 이 말 외에는 생각나는 표현이 없다.
복이 많은 사람
올해 나는 참 행복하다. 아이들이 현재의 우리 반처럼 순하고 이쁘다면, 혁신학교의 장점을 살려 초빙이나 유임으로 남아 교직생활을 마무리해도 되겠다는 마음도 먹었다. 조용한 동네, 노인 인구가 월등하게 높은 서울 변두리의 작은 학교는 아파트가 밀집해서 민원이 난무한 학교들과는 다르다. 우리 학교도 학년마다, 학급마다 분위기의 차이가 있고 힘든 아이들의 양상은 다른 학교와 비슷하지만, 기본적인 정서가 시골느낌이다. 착하고 정 많고 순한 아이들의 비율이 높다.
다른 학급과 비교를 해보면, 우리 반 아이들이 특별해서 유난히 아이들 복이 많은 것 같긴 하지만 지난 학교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 학교 아이들이 대체로 순한 것은 맞다. 외부강사님이 오셔서 수업을 하시면 아이들이 이쁘다는 칭찬을 빠뜨린 적이 없다. 착하고 순하면서 서로 돕는 모습이 요즘 아이들 같지 않다는 말씀을 꼭 해주고 가신다. "담임 선생님 닮아 가나 봐요."라는 덕담에 어깨가 으쓱하다. 그럴 리 없는 것을 알면서도 유치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예전학교에서는 아이들끼리 사소한 갈등이 일상이라서 학급회의를 자주 했는데, 올해는 긴급 학급 회의를 한 적이 없다. 작은 학교라 서로 잘 알다 보니 익숙해서 그런지 이해도 잘해주고, 가족처럼 도와준다. 선생님 말씀은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따르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전쯤의 과거 교실로 돌아간 기분이다. 보호자의 민원이 하나도 없어서 평화롭다. 작은 학교라 업무가 많아, 스트레스는 있더라도 학급 아이들 스트레스는 제로. 이런 경우는 내 기억에 거의 없다.
교과교사는 착하지만 공부는 못해서 답답한 학년이라고 한다. 담임교사 눈에는 못하더라도 성실하다. 칭찬을 해주고 조금만 우쭈쭈 해주면 서로들 잘하려고 난리다. 담임이 조금만 감동해 주면 그다음 아이들은 더 잘 해오려고 애쓰는 모습이 말 그대로 이뻐 죽겠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1학기에 비해 학습 수준도 나아졌다. 학기 초에는 뭘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만족스럽다. 내가 적응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 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한 거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리 바꾸기, 모둠 활동, 1인 1역 정하기.
보드게임, 체육 시간 경쟁 게임, 학급 이벤트, 부서 활동 등등.
무엇을 하건 갈등 없이 평화롭다. 깊은 배려까지는 아니지만 양보가 습관이 된 아이들은 싫은 친구를 티 내지 않고 사이좋게 지낸다. 순하고 학습 능력이 부족하면 답답해서 재미가 없는데 장난도 잘 치고 농담도 편하게 하는 편이다. 담임선생님 인상이 강해서 무섭다면서도 별별 말을 다 한다. 그래서 나도 깔깔대며 웃을 때가 많다. 찡그리고 화낸 기억이 거의 없다. 미루고 안 하는 아이들에게 해야 한다며 인상 쓰는 정도가 전부랄까.
얄미운 친구도 있다. 고학년이 되면 활개를 치며 미운 말을 할 친구도 감지된다. 현재는 다른 아이들에게 동화가 되어 그 친구조차 순하다. 잘못하면 깊은 상처가 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서 주의 깊게 보고 있는데, 조심하는 모습이 보인다.
교실에만 들어가면 웃게 된다. 화낼 일이 거의 없다. ADHD 아이들이 꽤나 있어서 신경이 곤두서긴 하지만, 딜이 쉬워서 귀엽다. 집중을 못해서 안 하고 있을 때, '남아서 하고 가야 해.', '그럼 보드 게임을 못하지. '라고 하면 대충 하더라도 마무리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귀여워서 배시시 웃음이 난다.
학교에서 잘 지내려면 동료교사와 사이가 좋아야 하고, 학부모 민원이 없는 것이 최고였는데 올해 보니 동교교사보다 예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 이 구역의 미친년이 다 모인 곳. 내 일이 아니라서 감정을 차단하려 해도, 위원회 회의 소집이 불안한 요즘. 회의 후 어딘가에서 모여 나누게 되는 시간이 불편한 요즘, 유일한 힐링은 우리 반 아이들이다.
인생의 성적표만큼 주관적인 영역이 없다. 타인의 시선에서 고단한 삶을 살더라도 스스로가 행복하면 좋은 인생이고, 남들 보기엔 다 가져서 부러울 것이 없겠는데 본인은 우울해서 기운 없이 살면 별로인 인생이다. 대체로는 반반이지 않을까? 다 좋은 것도 없고 다 나쁜 것도 없듯이. 우리의 인생 주기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돌면서 다른 온도를 체감하며 때론 폭발할 것 같고, 때론 얼어 죽을 것 같다가도 온화해지고 따스해지는 순간이 오듯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게 인생일 것이다.
나는 복이 많은가 보다. 누가 보기엔 평탄하지 않은 인생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인생이 좋다. 속이 야물지 못해 상처받기 쉬운 성격인데도 잘 도닥이며 긍정성을 찾아내는 나도 좋다.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고 능력도 없지만, 없음이 좋다. 온전하지 못한 미성숙이 오히려 어린아이 같아서 좋다. 단단하지 않아서 불안할 때도 있지만 시도하고 망설이고 흔들려서 좋다. 단단하지 않고 연약해서 애틋해할 수 있으니, 불완전함과 미성숙이 꼭 나쁜 것은 아닌가 보다.
나르시시스트와는 다르다. 내가 아름답고 완벽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자기 연민이라고 해도 할 수 없지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인정하고 나름 애쓰는 모습을 나라도 좋아해 주고 싶다. 긍정을 통한 자기애라도 가지고 싶다. 그런 나에게 아이들은 좋은 인연으로 찾아와 힘을 빼지 않고 오히려 힘을 주었다.
앞으로 수고로움을 요구하는 일이 일어나 힘이 들지도 모른다. 미래는 단정하는 것이 아니란 걸 잘 안다. 지금까지 좋았다고 해서 계속 좋은 것은 아니다. 잘 알기에 마음의 대비를 해두는 편이다. 그러나 아이들에 대한 믿음은 있다. 크게 괴롭지는 않을 것이다. 담임의 불완전함과 미성숙함을 흔들지 않을 것이다.
올해 아이들이 워낙 예뻐서 내년엔 힘들 수도 있겠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 비교를 하면 우울해진다. 아마 그 와중에도 어린아이처럼 무언가 마음 붙일 비빌 언덕을 찾을 것이고 위로와 위안을 발견할 것이다. 능력도 문제 해결 방식도 믿을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긍정성을 찾고자 애쓰는 나는 믿을 수 있다.
그렇게 살아도 되어서 좋다. 복이 많다며 기분 좋게 출근할 수 있어서 좋다. 미친년의 구역에서 흘러나오는 독이 나에게도 퍼지지 않도록 복의 시즌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가을
숲체험의 시간. 설명 듣고 압화도 만들고 게임도 하고. 단풍나무 씨앗도 날려보고.
다양한 진로 체험도 진지하고 재미있게. 그러고도 즐거운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
미친년의 구역에서 풋풋하게 정화된 공기를 마시며 생활하게 해주는 아이들에게 유난히 고마운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