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포르투갈 포르투: 부활절에 맞은 일상의 부활

by 수경

퇴사 여행을 떠난 포르투갈의 마지막 날이었다. 총 12일 동안 이어진 여정이 마무리되는 아침,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유난히 맑고 또렷했다. 여행 내내 흐리고 비 오던 날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떠나는 순간에 맞춰 이렇게 날씨가 개어버리니 괜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도시가 마지막으로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려는걸까 싶었다.


진작에 너의 맑음을 누릴 수 있게 해줬어야지! 하는 원망도 자연스럽게 올라왔지만,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그저 묵묵히 캐리어의 지퍼를 잠그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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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와 도우루강을 따라 걸어가자, 도시는 처음 도착했을 때와는 정말 다른 모습이었다. 늘 비가 퍼붓고 어둡던 도로는 온데간데 없고, 밝고 활기가 넘쳤다. 골목마다 울려 퍼지던 음악, 유난히 열이 오른 사람들의 목소리, 강물에 박힌 햇빛의 움직임까지.


떠나는 날이 되면 별다른 이유 없이도 이렇게 사소한 것들이 더 오래 남는다. 여행이 끝나간다는 사실이, 오히려 감각을 더 예민하게 만드는 듯했다.




공항에서 나란히 앉아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말은 많이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가 비슷한 착잡함을 안고 있다는 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때 멀리서 토끼 옷을 입은 직원들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처음엔 어린아이들에게만 초콜릿을 나누어주는 행사인가 보다 싶어 살짝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들이 우리 쪽으로 방향을 틀고는 외쳤다. 포르투갈식 부활절 인사인 “Feliz Pásco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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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을 앞두고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은, 그렇게 손에 올라온 초콜릿보다 더 가볍게 풀렸다. 무엇보다 뜻밖의 부활절 축하 인사를 건네받고 나니, 이번 여행의 끝에 돌아가서 다시 시작될 일상의 ‘부활’을 조용히 축복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15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을 때. 창밖으로는 인천의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순간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이라는 포르투갈 '호카곶'에서 보았던 일몰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나는 대륙의 서쪽 끝 바다에 있었는데, 지금은 한국의 서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네' 하는 흐름이었다.


그렇게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다 보니,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장면이 하나의 흐름으로 맞물리는 느낌이 들었다. 대륙의 서쪽 끝에서 보았던 빛과 한국의 저녁하늘이 이어지듯, 여행의 끝도 어느새 조용하게 다음 시간을 향해 연결되고 있었다.


tempImage5FMavD.heic 인천에서 만난 일몰


이번 여행은 ‘퇴사 후’ 떠난 여정이었다. 첫 직장에서 마케터로 일하던 삶이 끝나면서 사실 커리어에 공백이 생기게 되었는데, 돌아오는 길에서는 묘하게도 그 빈자리가 더 이상 불안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여백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끝은 또 다른 시작을 불렀고, 시작은 다시 다른 끝을 향해 나를 데려갔다. 퇴사로 삶의 한 장이 닫히고, 낯선 나라에서의 시간이 새로이 열렸고, 그 시간마저도 이제 마무리되며 또 다른 여정의 문이 생겨났다. 끝과 시작은 이렇게 서로를 반복하며 이어지고 있었다. 그 순환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고.


버스 창에 비친 내 표정에는 여전히 아쉬움과 설렘이 함께 묻어 있었다. 하지만 조용한 버스에서 내가 웃음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끝은 '소멸'이 아니라, 언제나 '탄생'을 데리고 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