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프랑스 파리: 모든 낭만이 현실이 되는 곳

by 수경

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 다음에 이어지는 가사는 도통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던 2018년의 여름.


낭만의 도시 파리에 도착한 나는 밤마다 에펠탑이 비친 센강의 야경에 취해 걷다가도, 자정이 가까워지면 슬쩍 뒤를 돌아보곤 했다. 혹시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나를 과거 황금시대의 세계로 데려다줄 마차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기대를 품으면서.


하지만 그 화려한 도시 파리에서 내가 가장 간절히 문을 두드리고 싶었던 세계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디즈니랜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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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은 주말 아침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디즈니 만화동산’의 오프닝 곡을 기다리던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모두가 행복한 저 화면 속 동네는 어떤 향기가 날까, 이야기의 프레임 바깥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을까. 나는 늘 닫힌 화면 너머를 상상하며 그 안으로 들어가 보는 꿈을 꾸곤 했다.


그렇게 정말 파리 디즈니랜드로 향하는 날, 미키마우스 그림이 그려진 열차에 올라탄 순간부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주한 디즈니랜드는 왜 이곳이 ‘파크(Park)’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세계인 ‘랜드(Land)’라 불리는지 온몸으로 실감케 했다. 발을 들이는 순간 내 머릿속에만 있던 무형의 환상들이 하나의 세계로 실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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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ImageMSwzKo.heic 출처: Paris Disneyland


어린 시절, 피터팬의 세계를 너무나 동경한 나머지 나의 영어 이름조차 망설임 없이 ‘Wendy’라 지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름 뒤에 숨겨두었던 오랜 설렘을 안고 무작정 <피터팬> 놀이기구로 향했다. 그렇게 피터팬의 배에 올라타 웬디의 집 창문을 넘어가는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웬디와 아이들이 비행하며 마셨을 런던의 밤공기, 저멀리 가까워지는 3차원의 네버랜드를 보면서.


tempImage0IerKb.heic ,출처: Paris Disneyland


이어지는 <라따뚜이> 놀이기구에서는 쥐 모양의 카트에 몸을 실었다. 이후 거대한 주방의 식기들 사이를 잽싸게 가로지르는 동안 코끝을 스치는 음식의 향기, 조리대 아래의 뜨거운 열기, 그리고 급박하게 꺾이는 카트의 덜컹거림 속에서 나는 더 이상 화면 밖의 관찰자가 아니라는 게 생생히 느껴졌다.




그 황홀한 몰입의 끝에 어느덧 밤이 찾아왔다. 사람들의 시선은 약속이라도 한 듯 디즈니성으로 향했고, 웅장한 음악과 함께 첫 불꽃이 어둠을 갈랐다. 밤하늘에 수놓아지는 형형색색의 빛들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홧홧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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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화려한 불꽃놀이의 섬광 속에서, 뜻밖의 얼굴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앞에 조그맣게 웅크리고 앉아 화면 속 마법의 세계를 동경하던, 아주 오래전의 꼬마 아이였다. 세상을 향한 두려움 대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모험을 꿈꾸던 그 아이가, 지금 불꽃 아래 서 있는 나에게 다가와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거봐, 역시 네버랜드는 존재하는 거였어!
피터팬과 함께 하늘을 날아본 기분이 어때?"


디즈니랜드의 불꽃놀이는 현실에 치여 잊고 지냈던 순수함을 향한 예우이자, 이제는 스스로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어른이 된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오래전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두었던 나만의 세계를 조용히 다시 꺼내 보았다. 그리고 확신했다. 내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열쇠는, 언제나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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