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체코 체스키: 엄마의 수채화 그림 속으로

by 수경

동유럽 여행을 간다고 하면 꼭 빠지지 않는 나라, 체코. 언젠가 이곳에 가게 된다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중세의 아름다운 마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에 가는 것.


붉은 지붕들이 빽빽하게 이어진 마을과 그 사이를 유연하게 휘어 흐르는 강, 그리고 언덕 위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동화 같은 풍경. 이런 마을이 정말 세상에 존재한다니! 엄마가 건네준 책 속에서 이 마을의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언젠가 꼭 저곳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체스키 크룸로프가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해진 데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 엄마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오래전에 바로 이 도시의 풍경을 그린 적이 있었기 때문.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런 버킷리스트가 생겨 있었다. 엄마가 그린 그 장면을, 실제로 똑같은 구도로 바라보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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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2018년의 여름, 한달 유럽여행의 끝무렵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무작정 높은 곳을 향해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림 속 강이 휘어 흐르는 방향은 어디였더라, 지붕들이 겹쳐 보이던 각도는 어느 쪽이었더라. 그렇게 몇 번이나 자리를 옮겨 다니다가 어느 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 익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강은 초승달처럼 크게 휘어 흐르고 있었고, 그 위로 작은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붉은 지붕의 집들이 층층이 이어진 섬 같은 마을과, 이를 둘러 싸고 있는 푸른 나무들까지.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아, 바로 여기였구나.’


나는 괜히 들뜬 마음으로 그 자리를 몇 번이나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어 같은 구도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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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진을 받은 엄마는 무척 좋아했다. 화면 속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정말 내가 그렸던 곳이네~”라고 말하는데, 메시지 사이로 전해지는 목소리가 어쩐지 들뜬 듯해 나도 괜히 웃음이 났다.


그 반응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은근히 뿌듯해지다가도 금세 뭉클해졌다. 어린 시절 여행책 속 사진으로만 바라보던 풍경과, 엄마의 그림 속에 담겨 있던 장면과, 지금 이곳에 서 있는 내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순간이라니.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있던 장면들이 한곳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그 느낌이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을 흔들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여행이 새로운 장소를 보는 경험 이상으로 느껴지는 건. 때로는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있던 기억과 꿈이 한 장면 안에서 조용히 이어지는 일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여행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가장 특별한 풍경은 어쩌면 눈앞의 도시가 아니라, 그 도시를 통해 이어지는 시간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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