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현고호사(弦高犒師)
3월 30일의 고사성어(90)
현고호사(弦高犒師)
* 현고가 진나라 군대에게 음식을 대접하다.
* 《좌전》
눈으로 읽으며 낭독하기
기원전 7세기 들어 중국의 형세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서방의 후진국이었던 진(秦) 나라가 목공(穆公, ?~기원전 621)이라는 걸출한 리더를 맞이하여 민족, 국적, 신분, 나이를 따지지 않는 인재정책으로 국력을 크게 키워 끊임없이 동방으로의 진출을 꾀했기 때문이다. 진나라의 동진은 무엇보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한 약소국 정(鄭) 나라에 큰 위협이 되었다. 그러던 중 기원전 627년 진나라가 정예병을 거느리고 정나라를 기습하는 작전을 개시했다.
진나라 군대가 정나라의 서쪽에 있는 주(周)와 활(滑)을 지날 때까지도 정나라는 그 낌새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정나라 상인 현고가 낙양(洛陽)으로 장사를 하러 가다가 진나라 군대와 마주쳤다. 위기를 직감한 현고는 정나라 도성으로 급히 사람을 보내 이런 상황을 알리는 한편, 자신이 소 열두 마리를 이끌고 용감하고 진나라 군대를 찾았다.
진나라 장수는 현고의 느닷없는 출현에 깜짝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현고는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정나라 국군께서 진나라 군대가 이곳을 지난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특별히 저를 보내 위문하게 하셨습니다. 잠시 쉬어 가겠다면 먹을 것을 준비하여 초대하겠고, 쉬지 않겠다면 우리가 하룻밤 보초를 맡아 길을 안내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한편 현고의 기별을 받은 정나라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진나라 장수들은 정나라가 이미 자신들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고, 자칫하면 앞뒤로 포위당할 위험성까지 있으니 서둘러 돌아가는 쪽이 낫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상이 현고의 용기와 민첩한 대응이 정나라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낸 유명한 사건으로 훗날 ‘현고호사’라는 고사성어로 정착하여 지금까지 상인이 나라를 구한 미담으로 전해오고 있다.
예로부터 상인은 임명장 없는 외교관이었다. 상인 현고의 순간적인 판단과 기지로 나라의 위기를 넘겼다. 현고가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상인을 보호했던 정나라의 선진적인 정책이 있었다.
손으로 써보며 생각하기
* 현고호사(弦高犒師)
* 유튜브 ‘김영수의 좀 알자 중국’: 하루 명언공부 3월 30일
- 산불염고(山不厭高), 해불염심(海不厭深)
- 산은 아무리 높아도 만족할 줄 모르고, 바다는 아무리 깊어도 만족할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