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거도사벽립
《사마천사기성어대사전(司馬遷史記成語大辭典)》(2,816쪽)
세계 최초로 司馬遷과 史記의 말씀(언어)을 오늘에 되살린 획기적인 사전
가거도사벽립(家居徒四壁立)
- 네 벽만 있는 집에서 살다.
- 권117 <사마상여열전>
- ‘가거도사벽립’은 한나라 무제 때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 기원전 179~기원전 118)의 젊은 날 일화에서 나온 성어이다. 사마상여는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기원전 약 90)과 함께 ‘양사마(兩司馬)’로 불리는 한나라 최고의 문장가이다.
사마상여는 양(梁)나라 효왕(孝王, ?~기원전 144)의 문객으로 있다가 그가 죽자 고향인 사천성 성도(成都)로 돌아와 하는 일 없이 날을 보내고 있었다. 성도 부근 임공(臨邛)의 현령 왕길(王吉)이 사마상여를 잘 보아 그를 공경했다. 상여는 그런 왕길을 귀찮아했지만 그럴수록 왕길은 사마상여를 더 깍듯이 대했다.
한번은 임공의 최고 부자인 탁왕손(卓王孫)과 정정(程鄭) 두 사람이 큰 연회를 베풀어 왕길을 초대했다. 왕길이 사마상여에게 사람을 보내 초대했으나 상여는 사양했다. 왕길은 연회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직접 상여를 찾아갔고, 상여는 마지못해 연회에 참석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왕길은 상여에게 거문고 연주를 청했다. 상여는 극구 사양했지만 강권에 못 이겨 두 곡 정도를 연주했다.
사마상여의 언행은 차분하고 의젓했으며, 아름답고 품위가 있었다. 탁왕손에게는 젊어서 과부가 된 탁문군(卓文君)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가 이런 상여를 몰래 지켜보다가 그만 마음을 빼앗겼다. 상여 역시 현령과의 관계를 짐짓 과시하며 거문고 연주로 탁문군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고, 이렇게 공교롭게 두 사람의 마음이 통했다.
눈이 맞은 두 사람은 그날 밤으로 야반도주(夜半逃走)했다. 두 사람은 상여의 집으로 도망쳤는데, 문군이 보니 상여의 집은 ‘네 벽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할 정도로 궁색했다. 문군은 자신의 수레 따위를 팔아 돈을 장만한 다음 임공으로 가서 술집 한 채를 사서 우물을 파고 술장사를 시작했다. <사마상여열전>의 해당 대목은 다음과 같다. 참고로 원문도 함께 인용해둔다.
“문군은 밤에 사마상여에게로 도망쳐 나왔다. 상여는 바로 함께 성도로 달려 돌아왔다. ‘사는 집을 보니 네 벽만이 있을 뿐’이었다.”
“문군야망분상여(文君夜亡奔相如),상여내여치귀성도(相如乃與馳歸成都). 가거도사벽립(家居徒四壁立).”
‘가거도사벽립(家居徒四壁立)’은 ‘가도사벽(家徒四壁)’ 네 글자로 줄여서 많이 쓴다. 매우 빈궁하여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인데, ‘가도입벽(家徒立壁)’이라고도 쓴다. ‘집이라곤 벽밖에 서 있지 않다’는 뜻이다. 청나라 때 문학가 심복(沈復, 1763~1832)의 소설 《부생육기(浮生六記)》 ‘규방기락(閨房記樂)’에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김씨와 동생 극창(克昌)이 ‘집이라곤 벽밖에 없는’ 곳에서 살았다”는 대목에 이 표현이 보인다. 이 성어는 후대의 문학 작품 등에 큰 영감을 주어 아주 다양한 파생어들이 나타났다.
비슷한 뜻을 가진 성어로는 ‘일빈여세(一貧如洗)’, ‘불명일전(不名一錢)’ 등이 있다. ‘일빈여세’는 ‘씻은 듯이 가난하다’는 뜻이고, ‘불명일전’ ‘한 푼이랄 것도 없다’, 즉 땡전 한 닢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는 듯이다. 전자는 관한경(關漢卿)의 희곡 《두아원(竇娥寃)》이 그 출전이고, 후자는 《사기》 권125 <영행열전(佞幸列傳)>이 그 출전이다.(본문 4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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