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집합과 ABC론
김영수의 ‘지인논세’
교집합(交集合)과 유시민의 ABC 다이어그램
술왕사(述往事), 사래자(思來者)
사마천은 역사(과거)의 중요성과 그것이 현재에 미치는 작용 및 영향에 대한 인식, 즉 역사관이 누구보다 선명하고 확고한 역사가였다. 그는 3천 년 통사 《사기》를 완성한 다음 입사동기인 임안에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편지인 ‘보임안서(報任安書)’를 썼다. 여기서는 사마천은 자신이 역사서를 쓴 목적에 대해 “술왕사(述往事), 사래자(思來者)”라고 했다. “지난 일을 기술하여 다가 올 일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과거, 즉 역사를 통해 지금(현재) 시점에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마천의 역사관은 <진시황본기>에 인용된 통일제국 진나라의 단명을 진단한 가의의 <과진론>에 인용한 《전국책》의 “전사지불망(前事之不忘), 후사지사야(後事之師也)”라는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은 뒷일의 스승이 된다”는 뜻이다. 지난 일, 즉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거나,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은 미래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교집합인 셈이다.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은 물론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거나 청산할 때 미래에 도움이 된다. 이를 다이어그램으로 나타내면 이렇다.
이 다이어그램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와 미래가 겹치는 현재의 교집합(Intersection)이다. 교집합이란 두 개 이상의 집합에서 공통으로 포함하는 원소들만을 모아 만든 집합을 뜻하며 로 표시한다. 예를 들어 집합 A={1,2,3,4} B={3,4,5,6}일 때 AB={3,4}가 된다. 위에 제시한 교집합을 가지고 좀 더 설명을 보태자면, 과거 현재의 발목을 강하게 많이 잡고 있으면 미래 부분이 준다. 즉, 잘못된 과거를 제 때에 제대로 청산하지 않으면 현재가 진통을 겪게 되고, 결국은 밝은 미래가 잠식당한다. 이 때문에 과거청산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유시민 작가의 ABC 밴다이어그램 때문에 말들이 많다. 여기에 긁힌(?) 사람들, 주로 B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일제히 유 작가를 물어뜯었고, 지금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여전하다. 국민들을 제 멋대로 이분법 잣대로 나누었다는 비판이 강했다. 자신이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서로를 비판했다. 어디에 속하는가는 어디까지 자기 판단의 영역으로 차분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구분인데도 엄청나게 과민반응을 보였다. 뭔가 캥기는 것이 있기 때문 아닐까?
유 작가의 ABC 이론은 사실 아주 단순하다. 이는 마치 맹자·순자의 성선설과 성악설 구분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성선설과 성악설을 두고 논쟁은 있을지언정 이번처럼 그렇게 악다구니를 쓰지 않는다. 그리고 필자가 제시한 위 다이어그램처럼 성선과 성악에도 교집합이 존재한다. 이 지점에 한비자의 ‘인간은 이기적(利己的)’이란 성선과 성악의 교차점, 즉 교집합이 있을 수 있다.
다이어그램(모형)의 특징과 정점은 복잡한 이론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제시하는 데 있다. 그리고 적절한 모형은 생화학자 리누스 파울링이 말한 대로 “모형이 지닌 가장 큰 가치는 새로운 생각의 탄생 과정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또 모형은 보는 사람이 즉각 인식할 수 있도록 실물이 축약되고 차원이 달리 표현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이번 유 작가의 밴다이어그램은 확실히 그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고 할 수 있다. 벌어진 소동과 비방은 사실 곁다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해 우리 정치판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보이는 현상과 반응을 비교적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론은 깊은 생각과 끊임없는 공부 및 통찰에서 나온다. 그 이론을 단순명료하게 도식화하고 모형화할 수 있다면 그 이론은 많은 사람의 공인을 얻는다. 이번 소동을 보면서 또 한 번 확인한 사실은 과민반응을 보인 사람들 대부분이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저 자기 욕심과 이해관계에만 밝은 자들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사마천의 다음 말씀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정리되고 있고, 곧 마저 정리될 것이다.
“권세와 이익으로 합쳐진 자들은 그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멀어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