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둘 이 다섯살 꼬마되어 천사를 만납니다.

by 할미꽃


오후 5시. 벽시계를 쳐다보며 뜨개질하던 손을 멈춘다. 아흔두 살의 내가 다시 다섯 살 꼬마가 되는 시간이다. 서둘러 멜빵 가방을 어깨에 메고 현관문을 나선다. 집 근처 어린이 놀이터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은 아이들만큼이나 가볍다.

놀이터에 도착하면 공원 옆 어린이집에서 일과를 마친 네다섯 살 꼬마들이 해방의 기쁨을 누리듯 두 팔을 휘저으며 달려 나온다. 좁다란 실내를 벗어나 싱싱카를 타고 너른 땅을 달리고, 모래성을 쌓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이들. 숨바꼭질하듯 터널 미끄럼틀을 넘나드는 그곳은 아이들에게 가장 큰 낙원이다.

아이들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쉬지 않고 뛰고 오르는 그 활기를 보며, 온종일 혼자 뜨개질을 하던 나도 하루에 한 번쯤은 밖에서 마음껏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누가 나와 놀아줄 것인가?"

나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을 참 좋아했다. 6남매의 막내로 자라며 조카들을 업어주고 놀아주던 버릇 덕분인지, 동네 아낙들이 달래지 못한 아기도 내 품에만 오면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덕분에 내 별명은 늘 '공동 고모'였다.

지금 나의 멜빵 가방 안에는 꼬마 친구들에게 줄 선물이 가득하다. 처음에는 예쁜 꽃핀을 떠서 아가들 머리에 꽂아주며 마음을 텄다. 남자아이들에게는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염원을 담아 코바늘로 뜬 거북이를 나누어 주었다.

어떤 날은 곰돌이와 토끼, 예쁜 꽃이 달린 팔찌를 한 아름 가져간다. 포동포동하고 매끄러운 아이들의 팔이 내 앞에 앞다투어 내밀어질 때, 그 꼬마들 틈에서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처음에는 낯설어 경계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저 멀리서 나를 발견하면 "왕할머니다!" 소리치며 달려와 품에 안긴다. 너도나도 안겨 오는 그 작은 생명들을 하나하나 품에 안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은 감흥에 젖는다.

내가 아가들을 안아주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천사들이 외로운 나를 안아주는 것이다. '어린이는 천사'라는 말을 몸소 느끼는 이 순간, 40년 교직의 세월을 지나온 나의 삶이 참으로 복되다는 생각을 한다.

내일은 또 어떤 선물을 들고 천사들을 만나러 갈까? 가방을 챙기는 오늘 밤도 나는 다섯살 꼬마 처럼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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