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인형

by 할미꽃

평생을 태엽 감긴 인형처럼 살았다. 24시간을 25시간처럼, 남들보다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어야 직성이 풀리는 생이었다. 내 의지로 걷고 있다고 믿었으나, 아흔을 넘기고 보니 그것은 착각이었다. 나는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걸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등에 꽂힌 태엽이 멈추지 않아, 혹은 배터리를 빼내는 법을 몰라 비틀거리며 앞으로 밀려가는 인형. 그것이 지금의 나다.

날은 저물어 가는데 나는 빽빽한 숲속에 이르렀다. 어디를 둘러봐도 나무뿐인 이곳에서 이제 길은 없다. 내가 평생을 바쳐 찾아 헤매던 '목적지'라는 이정표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새 소리가 들리고, 이름 모를 짐승의 울음소리가 적막을 깬다. 누군가는 그것을 위협이라 하겠지만, 길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나에게는 그 소리마저 생의 지독한 증명처럼 들린다.



왕성하게 일하던 시절, 나의 하루는 꽉 찬 밀도로 숨 가쁘게 흘러갔다. 그러나 지금의 24시간은 10시간만큼의 무게도 채 되지 않는다. 할 일이 없다는 것, 그것은 형벌인가 아니면 비로소 허락된 휴식인가. 나는 숲 한가운데 멈춰 서서 지나온 굽이굽이의 길들을 반추한다.

옛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일은 공허한 시간 낭비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길 잃은 숲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내가 지나온 발자국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뿐이다. 그 무의미해 보이는 반추의 시간이 실은 내 인생이라는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기 전, 문장 사이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가장 고귀한 노동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여전히 고장 난 인형처럼 멈출 줄 모른다.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쓰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회상한다. 멈출 수 없어 계속 움직여야 한다면, 차라리 이 숲의 정취를 기록하는 인형이 되리라.

길이 없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길이 없다는 것은, 이제 내가 머무는 이 빽빽한 숲 전체가 나의 집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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