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미술 시간이다. 모두 크레용 꺼내”
그때는 크레파스를 크레용이라고 불렀다.
개다리소반 위에 크레파스들이 자리다툼 하면서 올라앉았다.
수색대원들이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교실 복도를 걸어갔다.
교실 앞에 멈춰 섰다.
창 너머로 선생님의 대머리가 보였다. 순간 무서운 눈초리가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손짓으로 후퇴하기를 명했다.
대원들과 함께 무사히 교문 밖으로 탈출했다.
부모가 모두 일터에 나가시는 대원의 집을 교실로 정했다.
내가 선생님이 되었다. 그날의 시간표대로 공부를 모두 마치고 평상시처럼 집으로 갔다.
그때 학교 가는 길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철둑길 근처에 널브러진 자갈 속에서 돌 하나 집어 들고, 사방치기에 가장 알맞은 것을 하나 골라내기도 하고, 보리밭을 지날 때면 깜부기 하나 찾아 입에 넣고 모두 입술이 까맣게 되면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그때가 봄날이었고 오후반이었을 때였다. 길가 풀숲에서 제비꽃 다발이 빛나고 있었다.
“제비꽃이다”
내 말에 동무들은 모두 나를 따라 제비꽃 다발을 둘러싸고 앉았다. 풀밭은 포근했다.
꽃다발 속에서 봉곳봉곳한 열매를 보았다. 하나를 따서 만지는데 톡 하고 터졌다.
하얀 것이 나오면 “이건 쌀이다” 했고, 까만 것이 나오면 좁쌀이라고 하면서 소꿉놀이 하느라고 학교 가는 것을 잊었다.
그날이 내 16년 학교 생활에서 단 한 번 있는 결석날이었다.
1941년 일제강점기 시대 때, 초등학교 일학년생의 이야기다.
그날 하루의 대장이며 선생님이, 세월이 한 참 지난 뒤, 사십년 동안 선생님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