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덜너덜한 쇼핑백

레몬딜버터가 쏘아 올린 작은 공

by 전태희

최근 MBC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이지훈씨가 쏘아 올린 '레몬딜버터'의 기운이 내 주변으로까지 스며들었다. 레몬딜버터와 관련된 이 이야기는 나의 친구 S양의 요리에 대한 취미로부터 시작한다. 그에 앞서 우리의 음식에 대한 찐사랑의 시작은 무려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태어나 단 한 번도 광명을 떠나본 적 없는 광명 토박이이다. 등록기준지부터 초본의 상세내역 모두가 광명시를 벗어나지 않는다. 대학교를 제외하고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광명시 소재로 나왔다. 그런데도 나와 같은 광명 토박이 S를 처음 만나게 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던 19살 무렵이었다. 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S와 지금만큼 친하지는 않았다. 2학년 때의 반 아이들이 고스란히 같은 반으로 진급하면서, 3학년 때 우리 무리에 합류했던 소수의 친구들(S를 포함한다.)과는 그리 많이 친해지지 못한 탓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인이 되고 난 후 둘도 없는 동네 친구가 되었다.




우리를 이어준 건 술과 음식의 "마리아쥬"였다. 술을 사랑하는 나와, 음식을 사랑하는 S는 동네의 맛(있는 술)집을 찾아다니며 최고의 먹친구가 되었다.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고 술과 음식을 추천하며 동네의 단골 술집을 만들어간지가 벌써 7년째다. 그런 우리가 최근에 작은 쇼핑백 하나를 두고, 이것저것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처음은 오늘의 주인공 바로 "레몬딜버터"였다.







레몬딜버터


S가 만든 레몬딜버터는 가염버터로 만든 버전이다. 그래서 그냥 빵에 발라먹기에는 조금 짰기 때문에 요리에 활용을 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시도한 건 토스트.

팬에 레몬딜버터를 두르고 빵을 굽는다. 계란과 치즈를 얹고 소스를 발라 간편한 토스트를 만들어 먹는다. 특별한 재료를 넣지 않아도 레몬과 딜의 풍미가 토스트를 훨씬 더 고급스럽게 만들어 준다.



다음으로는 술안주에 도전했다. 새송이버섯 버터구이.

선물 받은 레몬딜버터에 새송이버섯만 추가로 사 오면 된다. 가염버터라 따로 을 하거나, 소스를 첨가하지 않아도 된다. 버터에 새송이버섯만 스윽 구웠는데도 불구하고 한층 고급스러워지는 것은 물론 노랑노랑, 초록초록하게 보는 맛도 생겼다. 술이 참 잘 들어간다 쭉쭉쭉.


이외에 버터가 들어갈 다양한 요리에 레몬딜버터를 넣으면 한층 업그레이드된 음식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레몬딜버터를 담은 작은 쇼핑백에는 다음으로 책이 담겼고, 다음으로는 직접 제조한 수제 향수도 담겼고, 또다시 레몬딜버터가 담겼고, 편지가 담겼고, 숙취해소제도 담겼다. 서로가 서로에게 쇼핑백 떠넘기기 경주라도 하듯이 이것저것 많이도 오갔다. 그런데 우습게도 S와 주고받은 너덜너덜한 쇼핑백은 꼭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동네 친구는 절대 꾸미고 나오는 법이 없으니 너덜너덜한 모양새가 닮았고, 크기가 작은 것도 꼭 키가 작은 우리를 닮았고, 오래된 느낌이 나는 것도 꼭 우리 사이 같다. 우습게도 이 작은 쇼핑백 하나에 많은 의미부여를 한다.



쇼핑백 바통은 현재 내 손에 있다. 다음 약속을 잡을 때 무엇을 채워갈까 머리를 굴려본다. 물 아닌 선물을 준비하며 친구 S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아무것도 아닌 날, 예측하지 못한 날 전화 한 통에, 카톡 하나에도 심지어는 씻지도 않은 날에도 달려와주던 동네 친구는 매 순간 단 한 번도 당연하게 여겨진 적이 없다. 새로운 맛집에 데려가 준 것도 고마웠고, 비밀을 공유해주던 순간도 고마웠고,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려준 것도 고마웠고,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나를 챙겨준 것도 고마웠고, 백수인 친구에게 술을 사주던 것도 고마웠다. 이런 고마운 마음을 담아 답례를 준비한다. 너덜너덜한 쇼핑백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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