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산맥 한가운데서
예전에, 이 세상에 갑자기 무시무시한 거대 괴물이 나타나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거나, 망측한 비주얼의 좀비 무리가 미친 듯이 쫓아온다거나 하면, 기필코 가장 먼저 잡혀서 죽을 것이라 다짐했던 적이 있다. 무섭고 끔찍한 상황에 맞서 싸우며 목숨을 지키는 것보다, 그냥 일찍 삶을 포기하고 마음 편하게 떠나는 편이 더 나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영화나 게임 같은 상상 속에선 쉽게 던져버릴 수 있었던 내 목숨이, 실제로 죽음에 가까워졌다고 느꼈던 그 진지하고 절박한 순간에서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지난 2월, 나는 아프리카의 어느 고산지대에서 혼자 느닷없이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봉고차로 평화롭게 패키지 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첩첩이 이어진 산맥을 따라 달리던 봉고차가 갑자기 갓길에 멈춰서더니, 현지 가이드가 터프하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 멋진 광경을 만났으니 모두 내려서 사진을 찍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사진은 모르겠고, 일단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약 30분 전부터 계속 휴게소를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저 앞쪽을 가리키며 '투 미닛' 거리에 화장실이 있으니 다녀오라고 했다. 그러나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은 고속도로 커브길 뿐, 2분만에 화장실이 나오는 것이 맞는지 조금 매우 의심스러웠다.
일단 급한 마음에 고속도로 위를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눈 앞에 화장실은커녕 시커먼 도로만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듯했다. 게다가 정면으로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제자리에 멈춰서서 열심히 위아래로 뛰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대로라면 내가 화장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봉고차가 날 기다리다 지쳐 그냥 출발해버릴 것이었다. 혹시 도보가 아니라 차로 2분 거리를 말한 것이 아니었을까?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황량한 아프리카 고속도로 한복판에 홀로 남겨지면 어떻게 될까? 고지대라 인터넷도 불안정해 일행과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더욱 빠르게 속도를 내려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확 답답해지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이 정도 뜀박질로 몸에 이상이 오다니, 과연 운동 부족이구나, 반성을 하는데 몸은 점점 이상해져갔다. 정신이 몽롱했다. 바로 그 자리에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 말대로 2분이 지났을까, 혹은 5분, 아니면 10분... 가늠이 안 되는 시간이 지난 끝에, 겨우 휴게소 화장실에 도착한 나는 마침내 한결 편안해진 몸과 마음을 얻었다. 그리고 나서 여전히 어지러운 정신으로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려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왜소한 현지인이 날 가로막았다. 얼굴에 주름이 많은 그 남자는 가만히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맞다, 화장실, 돈!'
당황한 얼굴로 주머니를 재빨리 뒤져봤지만 동전 하나 없었다. 게다가 이미 다녀온 화장실, 어찌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쏘리.. 아이 해브 노 머니.."
나는 거의 울상이 된 얼굴로 남자를 지나쳐 슬슬 걸어나왔다. 쭈굴한 얼굴의 남자는 섭섭한 얼굴을 했다. 다행히도 그는 무력으로 날 제압하고 위협할 생각 같은 건 없어 보였다.
덕분에 나는 봉고차에 무사히 돌아와 탑승했고,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시간도 많이 지체되지 않았고, 낯선 화장실 지킴이에게 인질로 잡히는 사건 같은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였다. 차에 타서 가만히 앉아있는데 계속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이었다. 뒤이어 목도 바싹바싹 마르고 마른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증상들이었다. 그저 운동 부족자의 한심한 결과로 치부하기엔 증상이 예사롭지 않았다.
호흡곤란과 마른 기침.
하필 그 즈음 뉴스에 많이 나오기 시작한, 바로 그 폐렴 증상이었다. 중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그 전염병은, 걸리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여기가 아프리카라고 안도하기엔, 북적거리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그동안 너무 많이 마주쳤다. 에이 아니겠지, 하며 남몰래 인터넷으로 폐렴 증상과 고산병 증상을 번갈아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냥 높은 곳에서 뛰어서 그럴 거라고, 고산병 증세일 거라고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금 지나고 있는 산맥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었다.
기침은 더욱 심해지며 쇳소리가 났고, 숨을 크게 쉬고자 하면 명치 쪽에 통증이 느껴졌다. 긴장한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피가 안 통해서 시퍼래진 손은 이내 차갑게 변한 뒤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눈을 질끈 감고 잠을 청했다. 황량한 산맥을 달리는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그저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길, 간절히 기도했다. 고산병이든 폐렴이든 뭐든, 당장 병원에 갈 수도, 제대로된 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대 중반, 이뤄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꿈 찾겠다고 선언하며 만들기 시작한 유튜브 영상 몇 개.. 그리고 졸업 직전에 우당탕 만든 단편영화 하나. 그것뿐이었다. 세상을 이롭게 할 멋진 영상 제작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것을 이룰 앞으로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짧은 숨을 가쁘게 내쉬는 와중에 심장은 무섭도록 쿵쾅거렸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몹시 억울했다. 이렇게 낯선 땅에서 처음 겪어보는 증상의 병을 얻어 죽게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볼품없지만 안전했던 내 자리, 내 삶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질끈 감은 눈으로 한바탕 꿈을 꾸고 나니 치명적인 폐렴 같던 증상들은 다행히도 조금씩 사라져 갔고, 두세 시간이 지난 후에 나는 비로소 정상인으로 돌아왔다. 꿈, 미래, 죽을 상상까지 했던 것이 민망할 정도로 금세 아무렇지 않은 몸 상태가 되었다. 그때 그 죽을 것 같던 증상들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아직까지도 확실하지 않아 지금은 억울함만 가득한 채로 그때를 기억하곤 한다. 그래도 어쨌거나 얻은 것이 있다면, 건강한 삶(살아있음)에 대한 강박이다. 그때 이후로 나는 그전보다 훨씬 많은 신경을 곤두세워 몸 상태를 탐지하는 사람이 되었다. 몸이 망가지면 재깍재깍 병원에 가고, 매일 아침 영양제까지 챙겨먹으며 건강을 살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누구나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긴 하겠지만.
한때 불안함으로 눈물까지 나게 했던 그 끔찍한 전염병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요즘 같은 때엔 더욱, 기침이 조금이라도 나면 간담이 서늘해지며 벌써 저승을 향해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나도 모르는 새에 상상하기 시작한다. '혹시 코로나..?'라는 생각 하나만 스쳐도 저승 문앞까지 다녀올 걱정스런 상상력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갑자기 살고자 하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해지는 순간이 된다. 내 나름의 뜻을 펼칠 미래가 존재하려면, 우선 살아있는 몸이 필요했다. 오늘도 무탈히 잘 살아냈음에 감사하며, 내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