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애는 최근 SNS에서 은근히 신경 쓰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시우와 나연, 그들의 몹시 현란한 게시물 업로드 때문이었다.
며칠 전 지애는 나연이 갑자기 셀카 여러 장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을 때 즉시 쎄한 기운을 느꼈다. 원래 셀카 같은 건 자주 올리지도 않던 애가 갑자기.. 그것도 게시물이 아니라 스토리에, 여러 TMI까지 시시콜콜 적어서 올리는 것이었다.
'헤어졌네 헤어졌어.'
지애는 거친 의심을 아무렇지 않게 때려박고는 빠르게 시우의 인스타도 확인하러 들어갔다. 그러고는 확신의 미소를 지었다. 시우는 스토리에서 두 명의 여자들과 함께 산뜻해 보이는 레스토랑에 가 있었다.
역시, 이 둘은 지금 이별 직후인 것이다. 최선을 다해 예쁘고 멋있는 모습으로, 뭔가 살짝 과하게 명랑한 느낌으로, 수많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누구보다 재밌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또 굳이 게시물이 아닌 '스토리'의 형태로 올림으로써 상대가 확인을 하는지 안 하는지를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쯧쯧쯧.."
지애는 자칭 타칭 이별 전문가인 자신의 놀랍도록 예민하고 정확한 이별 감지 촉에 감탄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동시에 짠한 감정이 들었다. 그 두 사람은 모두 지애와 친한 동아리 친구들이었다. '시나 커플'로 불리던 시우와 나연은 한때 동아리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랑꾼 커플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사실 이별의 구구절절한 과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만나고 헤어지고, 원래 사는 게 그런 것이었다. 어찌 됐든 이별 후가 중요했다. 쿨하고 멋지게 마무리하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것. 나중에 떠올리며 이불을 찰 만한 추한 시추에이션을 최대한 만들지 않으면서...
그런데 이 둘은 상태가 심각했다. 지애가 처음 알아채고 난 뒤로 약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두 사람은 인스타를 요란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처음엔 '누가 누가 잘 사나' 경쟁을 거세게 벌이더니 이제는 미련 메타가 발동되어 더욱 가관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특히 오늘은 시우가 SG워너비의 Timeless 노래 가사를 캡처해서 올린 것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를 잊을 순 없지만 붙잡고 싶지만'이라는 가사 옆으로 '가사가 참 좋은 곡이었네..'라는 멘트와 함께 아련한 이모티콘까지. 지애는 당사자도 아닌 자신의 얼굴이 다 화끈거리는 듯했다. 차마 나연의 인스타를 이어서 들어가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설마 답가라도 적혀 있으면 어떡하지? 그동안의 행태를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당장 둘 중 한 명에게 연락해서 조치를 취해야 했다. 좋은 친구로서, 나중에 왜 말리지 않았냐고 타박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때 마침 나연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가 사실 시우와 헤어졌는데, 지금 너무 힘들다고. 그리고 시우는 자꾸 내 인스타를 훔쳐보는 것 같다고. 자기한테 미련이 남아서 그런 거 아니냐고, 이거 다시 연락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지애는 정신 못 차리는 이 친구를 얼른 구해줘야겠다는 의무감이 솟아났다. 그래서 자신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이별 처리 행동 강령을 알려주기로 했다. 우선 인스타 업로드를 멈춰라. 사실 너네 인스타 하는 거 보고 이미 헤어진 거 진작에 눈치챘다. 인스타 올리지 말고 걔 인스타도 보지 마라. 카톡도 보지 말고.. 그냥 아무것도 보지 말고 신경 꺼라. 웬만하면 차단하는 것도 좋다. 어차피 아무것에도 별 의미 없으니까 이상한 거에 의미 부여하면서 낭비하지 말고 다른 일에 집중해라... 등등 지애의 엄격하고도 장황한 연설을 들은 나연은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 같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지애는 자신의 쿨하고 멋진 이별 처리법 전파에 뿌듯해하며 한숨을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인스타를 보는데, 갑자기 눈에 매우 익은 한 아이디가 스쳐 지나갔다. @joon_yu.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다시 돌아가서 게시물을 자세히 확인해보니 구남친의 아이디가 맞았다. 지애의 친구가 그놈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중에 태그를 해서 올린 것이었다. 지애는 헤어짐과 동시에 그놈 계정은 물론이고 그놈과 관련된 모든 지인들의 계정까지 모두 끊어내버렸었다. 그놈의 흔적이 발견될 만한 건 단 한구석도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눈앞에서 다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근데 그 이별이 벌써 5년 전... 왜 아직도 조금의 흔적이라도 만나면 심장이 먼저 떨어지는 것인가. 분명 쿨하고 멋지게 마무리를 했는데... 인간이 원래 이렇게 나약하고 질척스러운 존재인 것인가? 지애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생경한 기분에 잠시 숨을 고르며 회복할 시간을 가져야 했다. 지애의 이별 처리는 아직 진행 중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