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은 '그 세상'

드라마 '지옥' 리뷰

by 말랑괴물

으. 나는 이동욱 같은 저승사자가 데리러 오면 좋겠는데...


드라마 '지옥'을 보기 시작하고 처음 떠오른 생각이다. 자고로 사자라면 드라마 도깨비의 저승아저씨처럼 세련된 검은 양복을 빼입은 근사한 청년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웬걸, 이 드라마에서는 킹콩 비슷하게 생긴 괴물 셋이 쿵쿵거리며 등장하여 인간을 잡아 던지고 때리고 찢어서 죽여버리는 것이었다. 사자가 이동욱처럼 생기지 않은 것에 시시껄렁하게 딴지를 걸기엔 이 드라마, 보통 드라마가 아닌 듯했다.


시각적으로 표현된 장면들은 매우 잔인하지만, 그 개념만 보면 그저 단순하고 귀여운 발상이었다. 우리 인간들의 법 체계로는 충분히 벌하지 못하는 나쁜 놈들을 킹콩들(?)이 대신 처참하게 죽인 뒤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발상. 마침 요즘의 드라마 트렌드가 바로 그것이었다. 법의 굴레를 벗어난 방법으로 나쁜 놈들을 통쾌하게 응징하는 이야기. 그러한 이야기를 잘 담아낸 드라마 '모범택시'처럼, 통쾌한 정의 구현 트렌드를 따르는 판타지 드라마가 또 하나 만들어졌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정의 구현'이나 '나쁜 놈 응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포커스는 '광기'로 가득찬 '대중'에 있었다. 과학적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위기'의 상황에, 미친놈 한 명의 광기어린 설계에 따라 대중들이 현혹되어 얼마나 비이성적이어질 수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짧지만 강력했던 여섯 화를 보는 내내 꽉 막힌 듯 답답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극중 내내 흘러넘치는 광기어린 상황들은 화면 속 우리나라가 무법지대 혹은 무정부 상태로 느껴지게끔 커다란 혼란을 주었다. 선악에 대한 판단과 그에 대한 조처가 뒤바뀌는, 광기어린 행동들을 통제하는 법이 남아있기는 한 건지 의심이 되는 세상, 지도자들은 어디에서 뭘 하는지 모습도 보이지 않으며, 이성이나 과학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듯한, 아니 애초에 그런 건 있었던 적도 없는 듯한, 오로지 광기로만 가득찬 세상이었다. 그나마 몇몇 인물들이 이성을 붙들고 버티고 있지만, 이미 '비이성적 광기'에 감염된 압도적 다수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세상이라 '이성'적 접근과 시도는 너무나도 쉽게 무력해진다. 이 드라마의 지옥 같은 광기는 시청자의 기력마저 모두 빼앗아가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드라마 속 '새진리회'라는 종교 단체는 '나쁜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전통적인 명제로 그럴 듯하게 출발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의 역명제인 '지옥에 가는 사람은 나쁜 죄를 지은 죄인이다'라는 개념을 주장한다. 어릴 적 수학 시간에 배웠듯 원명제(죄인→지옥)가 참이라고 해서 역명제(지옥→죄인)가 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새진리회는 이 역명제의 마땅함을 주장하며 '사자의 시연'에 힘입어 '죄인'의 죄를 어떻게든 파헤쳐 명시함으로써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 그에 반하는 사례들은 제거해버린다. 이성을 가지고는 이해하기 힘든 이러한 사이비 종교의 교리와 만행은 나라 전체를 강력하게 '비이성'으로 감염시키고 만다.


이성을 가지고 상황을 바라보면, 괴생명체들이 나타나 랜덤으로 인간을 때려 죽이고 사라지는 초자연적인 '재앙'의 발생을 두고 과학적 분석으로 원인을 파악하거나 대처할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 속 세상은 정상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 '광기'로 지배당하는 세상이다. 랜덤 이벤트, 즉 '운'에 따른 결과를 놓고 그저 당사자의 '잘못'으로 해석하고 손가락질하는 비논리가 공공연하게 통하는 그런 세상. 나는 현대 사회를 사는 이성적인 인간으로서, 실제 우리 세상은 그런 '지옥'같은 세상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지금 우리 세상은, 드라마 속 '그 세상'과 정말 다를까? 불운에 따른 불행한 결과를 두고 원인과 잘못을 어떻게든 본인에게서 찾아내고 손가락질해버리면 속 편한 세상. 바로 지금 우리의 세상 아닌가?


다행히도 이 드라마의 마지막 쯤에서는 대중들이 마치 감염됐던 바이러스에서 벗어나는 듯이, '이성의 세계'로 돌아오는 듯한 모습이 된다. 드라마가 끝난 뒤 나는 한바탕 악몽을 꾼 것 같은 느낌을 진하게 받았다. 마치 한밤중의 악몽처럼, 그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짜임새를 따지자면 굉장히 낮은 점수를 주겠지만, 남겨진 찜찜한 인상과 생각들이 너무 강렬하여 마냥 가볍게 털어버릴 수만은 없는 드라마.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두려움이나 걱정들이 뒤죽박죽의 형태로 꿈에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던 부끄러운 속성들이 끄집어져 표현된 듯이, 드라마 '지옥'은 퀘퀘하고 자욱한 인상을 남기고 떠났다.


어딘가 조금씩 계속해서 말이 안 되는, 과장과 왜곡으로 범벅된 드라마 하나를 단순히 비판하고 넘어가려다가 순간 멈칫하게 된 찜찜함을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외면하고 싶던 우리 사회의 못난 이면을 의도치 않게 발견하여 불편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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