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코미디

by 말랑괴물

2020.08.30.

늘어지는 토요일 저녁, 나는 현수와 소파에 사이좋게 퍼질러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다. 티비엔 '장르만 코미디'가 틀어져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장르만 코미디지, 그다지 웃기지는 않은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그래도 보다 보면 피식피식 웃음이 터지곤 했다. 별로 집중을 하지 않고 머리를 비운 채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이었기에, 현수와 나는 요즘 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자주 틀어 놓았다.


눈은 티비를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엔 다른 재밌는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요즘 애들 말야, 올해 새로 대학 입학한 새내기들. 작년 이맘때 '대학 갈 수 있을까?' 걱정하고 올해도 똑같이 '대학 갈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대. 너무 웃기지."

현수는 흥, 하고 짧게 웃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요즘 애기들은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마스크 벗으면 무서워서 막 운대. 모르는 사람 얼굴이어서."

현수는 또 흐흐, 하고 간단히 웃는 소리를 냈다.

"또 다른 애기들은 그림 그릴 때 눈이랑 마스크만 그려놓고 얘는 내 친구 누구고, 얘는 누구예요, 이런대. 웃기지?"

현수는 이번엔 웃는 소리를 내는 대신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아까부터 계속 별다른 대꾸 없이 대충 웃기만 하며 티비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장르만 코미디인 그 프로그램에서는 300년 뒤 미래에서 왔다는 아이돌이 괴상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뼈 is bone'이라는 노래를 매주 다른 버전으로 편곡해서 선보이는 중이었는데, 오늘은 헤비메탈 버전이었다.


"어제 세진이랑 통화했는데, 걔네 커플도 요즘 엄청 싸우나 봐. 밖에서 데이트하면 사람 많은 곳 피해서 다니느라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게다가 어제는 날씨도 덥고 비도 오고 해서 괜히 더 짜증나고, 그래서 막 엄청 싸웠대. 아 너무 웃겨. 만나서 이렇게 싸울 바엔 그냥 집에서 나오지 말자고 소리 지르고 각자 집에 갔대."

코미디 프로그램을 앞에 두고 계속 다른 얘기를 꺼내며 혼자 낄낄거리는 내가 이상했는지, 현수는 그제서야 티비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수진아."

"응?"

"우리 결혼.. 언제쯤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다른 재미난 코미디를 떠올리며 덮어두고 싶었던 우리의 진짜 코미디가 다시 떠올랐다. 이미 3월에 했어야 하는 결혼식을 8월로 미루고, 최근에 친구들에게 청첩장을 나눠줄 날짜까지 잡았는데, 이번에 또 우리 결혼식은 무기한 연기를 해야 했다. 크게 상심하여 세상 탓도 해보고, 실망한 마음에 울어도 보고, 설레었던 마음이 허탈함으로 바뀌어 요 며칠 동안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우리 결혼, 내년쯤에야 할 수 있을까. 모든 계획이 한순간에 다시 무너지고, 또 다른 계획을 세우기를 반복하는 지금 우리 상황이, 대학을 갔는데 가지 못하는 새내기들의 상황이, 인간의 모습을 떠올릴 때 마스크를 먼저 떠올리는 요즘 아이들의 상황이, 지금 이 세상이 코미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비에서 괴상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미래에서 왔다는 저 아이돌에게 물어보고 싶다. 웃기고도 슬픈 이 기막힌 시대는 대체 언제쯤 끝이 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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