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동환 작가입니다.
20년 전 공장에서 일을하다가 전신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11개월을 보내면서 인생을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날의 고통이 여전히 제 전신을 감싸고 있지만, 그 덕분에 "봉사"의 마음을 배우게되었고,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나이 50세가 들어서면서 부터 공부를 하기 위해 노력했고, 수필가로도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저의 삶이 누군가에게 희망이되길 바라며, 제 인생 스토리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담아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기 위한 첫 걸음을 시작하니, 많은 사랑과 관심으로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소설
제목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는 있다』
– 인생살이, 죽고 싶던 그 길 위에서 다시 피어난 나 –
[목차]
1) 성장길, 배움의 문턱에 서다
– 가난과 결핍, 그 속에서 배움이 피어나던 어린 시절 –
2) 어른이 되는 골목길에서
– 흔들리던 청소년기, 나도 누군가의 미래였다 –
3) 현실이라는 쇳덩이 앞에서, 사랑을 지켜낸 날들
-기계보다 단단한 삶, 그 안의 사랑-
4) 아들의 엄마, 아들의 아빠
– 부모가 된다는 것, 책임의 무게를 견디는 날들 –
5) 가장의 이름으로
– 벌어야 했고, 참아야 했고, 지켜야만 했던 하루하루 –
6) 늦게 열린 두 번째 배움의 문
– 주름진 손으로 다시 펼친 교과서, 새로움에 떨리던 심장 –
7) 공부와 글, 그 작은 불씨들
– 시, 수필, 소설… 마음을 구원한 한 줄의 문장들 –
8) 제2의 인생, 20살 어린 박변과의 만남
– 나이어린 스승과의 우연한 만남, 늦은 봄에도 나의 늙은 꽃은 핀다 –
아래는 첫 챕터입니다.
잘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야 비로소 닿는 외딴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윗마을’이라 불렀다. 하지만 실상은 사람의 발길이 뜸한 첩첩산중의 골짜기. 그 깊고 고요한 마을의 끝집에서 대겸은 태어났다. 여섯 남매 중 넷째, 대겸의 어린 시절은 형광등보다 별빛과 달빛이 더 가까운 삶이었다. 전깃불은 자주 나갔고, 아버지는 군복을 입은 채 늘 먼 곳에 계셨다. 어머니는 고단한 얼굴로 아이들을 키웠고, 대겸은 그 얼굴의 주름 하나하나를 어린 시절부터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마을에서 사람처럼 살아가는 건 가축들뿐이었다. 염소, 소, 돼지, 닭, 토끼… 짐승들과 함께 숨 쉬고, 함께 고된 하루를 맞이했다. 대겸은 학교에 다녀오면 소 먹일 짚을 마련하고, 소죽을 끓였다. 벼를 깔고, 돼지우리와 닭장도 청소해야 했다. 나무를 해오지 않으면 겨울밤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물 한 바가지 덜어쓰는 일도 조심스러웠다. 그 고단함이 삶의 일상이었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대겸은 연필 한 자루도 잡아본 적이 없었다. 집엔 책이란 것이 없었고, 아이들은 아궁이 앞에 둘러앉아 감자를 굽다 잠이 들곤 했다. ‘학교’라는 공간은 마을 아래 돌계단을 내려가고, 개울을 건너야 닿을 수 있는 머나먼 세상이었다. 아버지는 긴 군생활 끝에도 집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어머니는 새벽마다 눈을 뜨며
“니들은 공부만 해라이, 꼭 공부해서 이 가난을 끊어야 한다”
며 아이들을 깨우곤 했다.
학교까지는 왕복 3킬로미터 남짓. 대겸은 매일 일찍 일어나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 교실에 도착했다. 가방이 없어 헝겊 보자기에 노트와 연필 하나, 선생님이 나눠주는 종이를 고이 싸서 다녔다. 점심시간이 되면 다른 아이들은 도시락을 꺼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먹었지만, 대겸은 수도가 옆에 쪼그려 앉아 수돗물 한 바가지로 배를 채웠다. 그 물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것만이 배고픔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누나가 삶아둔 옥수수나 고구마를 건네주었다. 그마저도 없는 날이면 장독대 옆 텃밭에서 따온 오이 가지 몇 개로 끼니를 대신해야 했다. 누님들은 하나둘씩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부산으로 떠나야 했다. 돈을 벌어야 했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겨울, 대겸의 아버지는 간경화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병원비는 누님들이 모은 돈으로 간신히 감당했다. 대겸이는 아무도 없는 곳만을 찾아다니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부지.. 내 아부지와의 약속, 꼭 지킬탱께..잘 보이소.. 내 꼭 성공할텡께..”
장례 후 대겸이와 가족은 더 이상 그 산골짜기에서 살아갈 수 없었다. 짐을 꾸려 부산으로 이사했고, 둘째 누님이 살고 있던 단칸 연탄방에서 여섯 식구가 몸을 맞대고 지냈다.
낯선 도시의 공기, 낯가리는 성격, 새로 편입한 중학교. 그 모든 것이 대겸에게는 버거웠지만, 대겸이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제 돌아갈 곳은 없다는 것을. 이 도시에서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 비좁은 방, 늘 모자란 식탁, 거칠어진 손등. 그 모든 결핍이 오히려 대겸에겐 배움의 이유였고, 살아야 할 동력이었다.
교과서가 없어도 밤새 노트를 들여다보았고, 책이 없어 도서관을 전전했다. 때론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먼 도시 외곽의 도서관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누군가에겐 당연하고 소소한 일이, 대겸에겐 절박한 희망이었다.
가난은 대겸이의 꿈을 꺾지 못했다. 오히려 그 결핍이, 오히려 그 고단함이, 삶의 뿌리가 되어주었다. 별빛 아래 감자 굽던 밤들과 소죽을 휘저으며 지새운 아침들이, 그를 자라게 했고 배움은 그렇게, 고된 삶의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가슴속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강동환 #60세 #인생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