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열흘쯤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겨인]을 몰아 보다 보니, 책을 뒤로 미뤄 두었습니다. [진격의 거인]은 완결된 작품으로 91편입니다. 회당 약 20여분 분량이라 그리 길지 않지만, 워낙 많다 보니 보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책을 읽지 않은 건 오랜만인 것 같네요.
[나는 왜 산티아고로 도망 갔을까] 이해솔 에세이, 이타북스, 2023년 7월, 볼륨 238쪽.
이해솔 님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2014년과 2019년 여름, 두 번을 다녀오신 분입니다. 나이는 30대 후반쯤. 대학원에 진학해 유학을 꿈꾸던 본인과, 대기업에 취업해 경제적 독립을 이루라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대학 졸업반 때 휴학을 하고 첫 번째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본인의 바람대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던 중 아버님께서 쓰러지셨고, 3년간의 긴 투병 시간을 거쳐 돌아가신 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19년 6월에 두 번째 순례길에 오릅니다. 책은 이 두 번째 여행 기록입니다.
2019년 6월 9일부터 7월 10일까지,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킬로의 길을 31日 동안, 일자별로 걸은 거리, 만난 사람들, 고민하고 사색했던 흔적들이 오롯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순례 첫날부터 피레네 산맥을 오르다 폭풍우를 만나고, 오버페이스를 해 생고생을 한 사연부터, 무릎이 아파 중도에 걷기를 포기할뻔한 사연, 배낭을 배송업체에 위탁했다 두 번이나 제대로 도착하지 않아 갈아입을 옷이 없어 고생한 이야기, 그럼에도 ‘인생 새옹지마’라고 위기상황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주는 선한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물론 인종차별을 경험하기도 하고요.
“순례자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사람”이라 작가님은 정의하는데요. “순례자는 어떠한 자격도 요구하지 않는다. 실행력만 있다면 누구나 산티아고 순례자가 될 수 있다. 길 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며 스스로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 낼 힘이 있다고 믿는다”(10쪽 프롤로그) 하시네요.
한 달 전쯤인 작년 성탄절에 방멘님의 [산티아고 순례길의 모든 순간](2023.06)이라는 포토 에세이를 읽었었는데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누군가에겐 인생 동안 한 번쯤은 꼭 걸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에 올라 있는 듯합니다. 저 역시 관련 책을 읽고 나서 내후년쯤엔 정년퇴직하는 선배님과 함께 걸어보기로 약속한 상태거든요. “용기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매일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123쪽).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사실은 욕심이었다”(134쪽)는 깨달음을 작가분께선 순례길을 통해 얻어 오신 듯합니다.
책의 뒷부분엔 순례길을 다녀온 분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암 투병 중임에도 순례길에서 느낀 가치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카페를 제주에서 운영하시는 분, 부부순례자로 서촌에서 ‘카페 알베르게’라는 콘셉트 카페를 운영하시는 분, 결혼 전 신혼여행 겸해 부부가 다녀오신 분의 이야기가 부록처럼(아님 덤처럼) 실려 있습니다. 이 분들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주저하면 절대 못 가는 곳이다.” “가볍게 가라. 짐의 무게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두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800킬로의 길을, 30여 일이 넘게 두 다리만으로 걷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먼 길을 떠날 때는 짐을 줄여야 한다는 말에 적극 동감합니다.
작가님은 두 번째 길을 걷고 돌아오신 후, 공인노무사 시험 준비를 하다 자신이 뜻했던 바는 아니지만 작가로서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작가로서의 산출물이 바로 이 책이고요. 프로스트의 詩 <가지 않는 길>처럼, ‘오프 로드’가 아닌 ‘온 로드(작가로의 길)’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이 펼쳐지는 게 인생이니까요.
사족입니다만 書名에 적힌 ‘도망’이라는 단어는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저에게도 그렇지만, 작가님 의도대로 가보길 희망하는 많은 분들에게 산티아고 순례길로 부르는 초대장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