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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수레 Aug 30. 2022

비 오는 날 저녁 반찬

비가 잊을만하면 내리고 , 또 잊을만하면 내린다. 비를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다. 집안에서 내리는 비를 보면 한없이 한가하고 그 느긋한 마음이 좋아 비를 좋아하지만 밖에 나가서 해야 할 일이 많기에 비는 좋으면서도 좋지 않다. 


 비 오는 날은 저녁 반찬을 신중히 고른다. 열심히 환풍기를 돌리고 창을 활짝 열고 요리를 해도 집안 구석구석 끈적이는 공기 속에 남아있는 음식 냄새는 다음날까지 코를 찌르곤 하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친정부모님은 당신들 기준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반찬 중 단연 생선을 즐겨 내주셨다. 소고기가 이제는 못 먹을 귀한 음식도 아니고 돼지고기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생선은 그리 귀하지 않아도 내 손으로 해 먹지 않을 번거로운 음식임을 알기에 친정집에만 들리면 삼시세끼 그렇게 생선 반찬이 밥상에 올라왔다. 


아이를 임신하고 8개월에 접어들 때, 남편은 하던 일을 마무리하러 인도로 2주간의 출장을 떠났다. 혼자만의 생활을 누구보다 아무렇지 않아 하던 특이한 임산부였지만 보름 가까이 되는 시간을 혼자 지내는 데 탐탁지 않아하던 친정엄마는 며칠간만이라도 지내다 갔으면 하는 내색을 보였다. 그땐 효도해야지 또는 엄마가 원하는데 가서 지 내다와야 지 같은 기특한 생각은 없었고 그냥 이 무거운 몸으로 삼시세끼 해 먹느니 며칠만이라도 누가 해주는 밥을 먹고 와야지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나섰다. 


친정집에 머무는 일주일 중 꼬박 닷새간 비가 내렸다. 가랑비, 구슬비, 장대비.. 그치다 다시 내리고 멈췄다 싶으면 또다시 바닥을 때리는 빗소리가 시작되었다. 항상 그렇듯 엄마와 함께 지낸 생활은 시기를 불문하고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단편적인 날씨, 그날 코끝에 남아있던 향기처럼 쓸모없는 것들만 기억날 뿐.. 불과 6,7년 전의 일인데 엄마와의 일은 누가 슬쩍슬쩍 지우개로 문질러버린 듯 얼기설기 엉성하고 조잡한 부분 부분만 남아있다. 


 각자 따로 살고 있던 부모님은 내가 다니러 간 덕분에 한 집에서 오랜만에 머리를 맞대고 식사를 여러 번 했다. 엄마는 궂은 날씨에도 뒤뚱거리며 나물반찬, 고기반찬, 쌀밥 넣어 담근 식혜까지 바리바리 싸와서 아빠의 주방에 풀어놓았다. 그 음식들이 귀하고 구하기 힘든 비싼 것들이 아닌 것은 나도 엄마도 알았다. 그냥 우리 함께 살던 때 먹던, 함께 살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지만 먹어볼 수 없었던 것들을 준비해온 것임을 나도 엄마도 알았다. 


일주일의 시간이 엄마의 걸음처럼 느릿느릿, 아니 친정아빠의 잰걸음처럼 급하게 지나가는 듯하더니 나도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위해 집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왔다. 이른 점심밥을 먹고 가겠노라 일러두었더니 엄마는 아침부터 두툼한 갈치 토막이 든 검정 봉지를 들고는 집으로 들어섰다. 그날도 여전히 비가 내렸다. 비가 오는 날 생선을 굽다 내내 냄새 때문에 어쩌려고, 대충 먹겠다 말해도 엄마는 갈치를 구웠다. 갈치가 비싼 음식이어서 가 아니라, 내가 갈치를 못 먹고살겠지 라서가 아니라 그냥 엄마는 이 귀찮고 냄새나지만 해주면 내가 잘 먹을 생선을 마지막 끼니로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비 오는 날 엄마가 윗집 아랫집 모두에게 냄새를 풍기며 구워 온 갈치는 너무도 맛있었다. 엄마가 혼자 살다 보니 양을 가늠하지 못했는지 많이도 사온 갈치를 너무 딱 맞게 구워서 나는 두툼한 토막을, 부모님은 얄팍한 토막을 앞에 두고 식사를 시작했다. 제일 큰 토막을 먹으면서도 연신 너무 잘 발라내 먹으니 엄마, 아빠는 그 얄팍한 토막에서도 살을 발라 나에게 건네주고 뼈를 대충 발라먹었다. 갈치를 넉넉히 살 돈이 없어 그랬다면 정말 슬플 뻔했는데 손이 작은 엄마의 귀여운 실수라고 해두곤 그럭저럭 맛있게 먹었다.


그날 날씨가 딱 오늘 같았다. 비가 주룩주룩 오면서 반팔을 입자니 소름이 오도도 돋고, 겉옷을 챙겨 입자니 부른 배에 숨이 차서 콧등에 땀이 송송 맺히곤 했다. 내 머릿속 누더기 같은 엄마의 기억에 빗물이 덧입혀져 엄마 생각이 떠오르고 또 떠오른다. 만삭이 다된 나의 배 부른 모습을 지그시 보면서 또 식탁에 앉아 반찬거리를 다듬고, 태동이 신기해 너무도 조심스레 배를 쓰다듬던 엄마의 거친 손등.. 지나고 보면 모든 게 추억이고 모든 게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이다. 


비 오는 날 생선 구운 냄새가 가득하던 친정집 거실에서 머리 맞대고 앉아 과일 먹던 그날이 너무 그립고 소중하다..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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