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 코리아 에서 EBS 다큐까지

서울살이 추억하기

by 티티카카
다 용서되던 서울의 풍경


가끔 상상을 한다. 미혼 또는 비혼이었을 나의 삶을.


아직 서울에 살고 있을까? 여전히 그때와 비슷한 또는 조금은 더 나은 회사를 다니고 있을까? 여전히 술을 잘 마셨을까? 여전히 친구가 많았을까? 또는.. 작더라도 나만의 집을 마련했을까. 아니면 여전히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에서 셰어하우스를 구해서 방 한 칸에서 지냈을까. 만약에..라는 조미료를 뿌리며 맛있거나 맛없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한다.


서울에서 지냈던 8년 남짓 생활은 참 다채롭고 재미있었다. 때로는 외롭기도 하고 지독히 처절하기도 했지만 이제 와서야 그 나이라 할 수 있었지 하고 남의 이야기처럼 던져놓을 수 있다.


적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았다. 남들이 말하는 개봉영화는 모두 봐야 했고 종종 미술관에도 들러 지적허영심을 채워야 했다. 그리고 라이브공연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연극과 뮤지컬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를 참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연극과 뮤지컬의 경험은 그때가 전부이지 않을까 싶다.


젊은 직원들이 많았던 직장에 다니면서 매일 뭘 입을지, 어떤 가방을 메고 나갈지도 대단한 고민 중 하나였다. 상경할 때 이렇다 할 보증금이 없던 나는 매달 적지 않은 월세를 내고 있었으니 마음처럼 갖고 싶던 명품가방을 살 여력까지 없었다. 10만 원에서 조금 무리하면 30만 원 내외까지 살 땐 막상 그럴듯해서 샀지만 두고 보면 딱히 돈이 되지 않을 어중간한 브랜드의 가방만 사모으며 만족하곤 했다.


지난 계절 입었던 옷은 왠지 모르게 후줄근해 보여 이미 침대와 책상 하나로 꽉 차는 방에 2단 행거를 차 넣으며 옷에 파묻혀 지냈다. 그 옷이 그 옷이고 그 색이 그 색 같지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자존감이 가득 찼던 젊은 나에게 아무렇게나 옷을 입혀 나갈 순 없었다.


신경 써서 옷을 입고, 조금 무리해 한 달 월세만큼 주고 산 가방을 메고, 손톱 물어뜯는 버릇을 고치지 못해 주기적으로 4,5만 원씩을 써가며 손톱을 연장하기도 했다. 유난히 짙은 눈썹이 왠지 촌스러워 보여 이대 앞 눈썹왁싱샵에 회원권을 끊어 눈썹정리까지 잊지 않고 챙겼다.


지금 생판 모르는 남과 북아현동 낡은 주택의 방 한 칸씩을 30만 원씩 내며 나눠 쓰는 입장이지만 후에 내가 어떤 모습일지 조금의 걱정도 염려도 되지 않던 시기였다. 재미있었다. 버는 족족 쓰며 원하는 것을 모두는 아니지만 어설픈 소비로 해소하던 시기가.


버는 것보다 더 쓴다는 것을 알면서도, 직장에 다니게 되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 수 있을 때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열심히 쓰고, 남의 돈까지 빌려가며 살았다. 서울살이를 하는 모두가 그리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타지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나를 위해 이 정도는 하며 살아야지 라는 합리화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결혼이라는 중대사 앞에서 적잖이 고민할 때 나는 우선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서울살이에 대한 대가인 마이너스 통장 상환하기. 지금 와서 보면 단돈 300만 원이지만 250만 원 월급을 받아 40만 원의 월세를 내고 200만 원을 다 쓰던 나에게는 작은 일이 아니었다.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서울은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직장에서 북아현동 집으로 걸어가며 보던 수많은 아파트 거실들의 조명, 여유로이 앉아 커피를 마시던 테라스 카페의 사람들, 잘 정돈된 거리와 손 뻗으면 닿을 듯하던 편의시설들..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는 서울살이의 대가로 빚을 갚아야 벗어날 수 있는 채무자일 뿐.


그 후로 두 달간 손톱연장도, 눈썹정리도, 가방도 옷도 사지 않았다. 매일 사 먹던 커피도, 샌드위치도 사 먹지 않고 3개월 간 마이너스 통장의 빚을 상환했다. 결혼을 하기 위해 애썼다기보단 이만하면 됐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언젠가는 끝마쳐야 했을 나의 브레이크 없던 서울살이에 결혼이라는 계기가 전환점이 되어줬을 뿐.


빚을 모두 갚고 남편과 함께 지방으로 내려와 결혼 10년 차에 접어든 나는 더 이상 '피터팬의 좋은 방 구하기'도 네일숍도 가지 않는다. 매 계절마다 가방을 사거나 옷을 사는 대신 내년에 어떤 일이 있을지, 내 후년에 준비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계획한다. 작지만 귀한 푼돈들을 모아 비행기표를 끊기도 하고 배우고 싶던 교육을 등록하기도 한다. 혼자 살던 삶이 SNL 코리아 같았다면 지금은 EBS 다큐처럼 살아보려 노력 중이다. 추억하고 상상할만한 기억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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