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을 알고 나니 극복이 가능했다.
메모지에 자신만의 인사매뉴얼을 만든 혜순씨는
처음에는 떠듬거리다 퇴근할 때쯤 완전한 자신감을 되찾았다.
"안녕하세요! 회원님
기존 매니저님께서 건강상의 이유로 병가 중이시라
오늘부터 제가 회원님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회원님에 관한 것은 잘 전달받았고
빠른 시일 내에 프로필 준비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20명을 다 인사 돌리고 나니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원들에게 2주마다 새 프로필을 발송할 매칭대상을 찾는 것.
링고결혼정보회사 프로그램이 1차로 걸러주긴 하지만 세심한 건 매칭매니저 몫이었다.
혜순보다 하루 일찍 근무를 시작한 이세경씨도
이 일을 제일 어려워하는 게 보였다.
혜순씨와 이세경씨 사이에는 박인아씨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한우아팀장과 함께 신입교육을 맡고 있었다.
38세의 박인아씨는 입사한 지 두 달밖에 안되었지만 2년 된 매칭매니저들보다 실적이 뛰어나서 나냉정상무로부터
톡톡한 신임을 받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책상에는 빈틈없이 온갖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이를테면 큰 거울, 빗, 향수, 초콜릿, 과자등의 간식과
텀블러, 화장품파우치, 두툼한 담요, 명품가방 등이었다
그녀는 성형중독이 있는지 눈이 트임이란 트임을 다해서 부담스러울 만큼 커다랗고
코는 실리콘을 넣어서 서양인보다 높고 날카로웠다.
특히 본인이 예쁘다고 생각하는지 혜순이 뭐 물을 때마다
그 큰 눈을 더 크게 치켜뜨고
"아니 방금 알려줬는데 모르면 어떡해요?"
하면서 짜증을 냈다.
혜순씨는 25년 만의 회사생활이라 모든 게 서툴렀다.
특히 컴퓨터 다루는 게 어려웠다.
요즘은 디지털상담이라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저장해두어야 했는데 처음 해보는 업무라 배워도 자꾸만 잊어버렸다.
"메모 안 하세요?
메모하세욧 !!!"
급기야 박인아씨가 소리쳤다.
혜순은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나이도 어린것한테 일 배운다고 잔소리를 듣고 있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이제 이틀차인데 어떻게 일을 다 배우나?
그것도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냅다 소리 지르고......
아휴 사회생활 힘드네'
까칠한 박인아씨한테 묻는 건 포기하고
한우아팀장한테 가서 물어보려고 눈치 보던 혜순은 이리저리 바쁘게 오가며 통화하는 팀장을
보고서는 그냥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일을 다 배울 때까지는 서럽고 힘들어도 참을 거야.
불편해도 내가 굽혀야겠다.
이기고 나서 싸우는 거야!'
혜순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박인아씨한테 웃으면서 모르는 것을 물어보았다.
'묻기 전에 친절하게 가르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나중에 내 후배가 들어오더라도
이런 식으로 일을 가르치지는 않을 거야!'
이번에는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게 혜순은
도식표를 그려가며 꼼꼼하게 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