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이름 바꾸고 싶어."
새온이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새온이는 자주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무슨 이름으로?"
"현서?"
엄마는 웃음을 참으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새온이의 눈빛은 진지했다.
"학교에 한 번 가보고 싶다..." 혼자 중얼거렸다.
"네가 이름을 바꾸는 것 말고 우리 집 햄스터 이름을 바꿔주는 건 어때?" 엄마는 새온의 사뭇 진지한 물음에 함께 진지해졌다.
"근데 햄스터들은 오래 살지를 못하니까... 나중에 죽으면 학교도 없어지는 거 아냐?" 새온이는 이름과 함께 또 사라질 햄스터를 상상하기 싫었다.
일주일 동안 같은 엄마를 졸라 양양 가는 날짜를 잡았다. 서울로 전한 간 누리에게 바로 연락했다.
"현서분교 갈 건데, 누리야 너도 같이 갈래?"
전화 너머로 누리의 환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진짜 가요? 저도 너무 가고 싶었어요!"
도담이와 마루에게도 연락이 갔다. 그렇게 2025년 여름, 네 아이는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학교로 향하는 구룡령길은 여름의 푸르름으로 가득했다. 새온이는 차창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길... 원래 이렇게 멋있었나?"
"그때는 몰랐어. 매일 보니까." 누리도 구룡령에 빠져 있었다.
현서분교에 가까워질수록 새온이의 심장이 빨리 뛰었다. 6개월이었다. 고작 6개월인데, 왜 이렇게 오래된 것 같을까.
"우와, 저기 봐! 저 나무들!" 새온이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산불로 타버렸던 자리에 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 있었다.
"작년에는 저렇게 없었는데..."
"우리가 없는 사이에 엄청 자랐네."
학교에 도착하자 새온이와 누리는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멈춰 섰다. 교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마루?"
"도담아!"
누리가 마루와 도담이에게 달려왔다. 뒤를 이어 새온이도 오랜만에 만난 마루와 도담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은 둘씩 짝을 이루며 교문 앞을 뱅뱅 돌었다.
아이들은 학교를 바라봤다. '출입금지' 표지판과 철망이 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 교실, 나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들어가 볼까?" 철망을 건너 가장 먼저 마루가 뛰어갔다.
조심스럽게 철망 사이로 들어간 아이들은 타임캡슐을 묻었던 나무로 달려갔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지만,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여기야, 여기."
누리가 무릎을 꿇고 땅을 만졌다.
"10년 뒤에 파기로 했지?"
"응. 2035년."
"진짜 그날 다시 올 수 있을까?" 아이들은 아직도 먼 그날을 상상하며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1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낸 곳인데 오랜 시간을 머물 수 없었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아이들을 빠르게 내보냈다.
학교를 나온 아이들은 학교 앞 짜장면집으로 향했다. 반년만에 찾은 익숙한 간판이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장님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너희들... 학교 애들 아니니?"
"네! 저희 기억하세요?"
누리가 신나서 소리쳤다.
"그럼! 기억하지. 작년까지 맨날 왔잖아. 선생님이랑."
사장님이 반갑게 웃으며 물수건을 건넸다.
"얼마 만이니? 많이 컸네."
신난 아이들은 자리에 앉으며 바로 말했다. 그리고 메뉴판도 보지 않고 말했다.
"짜장면 네 개요!"
"탕수육도요!" 마루가 덧붙였다.
"선생님이랑 여기 오면 항상 짬뽕 드셨지." 누리가 말했다.
"맞아. 그리고 우리 탕수육 먹을 때 선생님은 간장에 고춧가루 엄청 넣으셨어." 간장에 고춧가루를 넣으며 새온이 말했다.
"선생님은 식사 후에 커피를 드셨어." 도담이 질세라 선생님에 대해 알려줬다.
"선생님도 졸업하고 여기 와보셨을까?" 새온이가 문득 물었다.
"모르지. 연락해 볼까?" 마루기 벌써 선생님의 번호를 검색하며 물었다.
"그래, 해보자!"
마루가 핸드폰을 꺼내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저희 지금 학교 왔어요. 짜장면집에 있어요! 저희 모두 만났어요!]
1분도 안 돼서 답장이 왔다.
"진짜? 나 지금 양양이야. 30분 안에 갈게."
"대박!"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짜장면이 나왔지만, 아이들은 먹는 동안 짜장면을 먹는 방법, 먹는 소스, 어떤 메뉴를 좋아했었는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먹는 동안 이야기도 신이 났다. 그러면서 자꾸 시계를 보게 되었다. 30분 안에 오신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못 오시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선생님!"
네 아이가 동시에 일어섰다. 몽 선생님은 변함없는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야, 얼마 만이야. 많이 컸네?"
"선생님도요!"
"나는 안 컸는데?" 선생님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 여기 자주 오세요?" 도담이가 물었다.
"선생님도 학교 옮기고 멀어져서 여기까지는 한 번도 못 왔어. 너네 다들 왜 이렇게 많이 큰 거야?" 반년만에 선생님만큼 자란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그래? 중학교는 어때? 재미있어?"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음... 그냥 그래요."
"괜찮아요."
"공부를 많이 하게 돼서 힘들어요."
저마다 아이들은 잘 지낸다는 말을 했다.
"선생님 우리 10년 뒤에 다시 만나기로 했잖아요... 타임캡슐." 누리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선생님도 기억하세요?"
"당연하지. 2035년 1월. 우리 약속했잖아!"
선생님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름의 긴 해가 넘어갈 때까지 짜장면집에서 수다는 계속되었다. 지는 해를 뒤로하고 선생님 차를 타고 구룡령을 내려왔다. 구룡령은 더 이상 아이들이 없었다. 학교는 폐교가 되었지만, 네 아이와 선생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현서분교.
이제는 학교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곳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