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친절한 마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요
남녀공학 중학교 진로 수업 시간이다. 1교시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한 남학생이 다가오며 말했다.
“선생님! 저는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호구가 돼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했다.
1교시 내내 사회복지사란 사회가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강조하였는데 남학생에는 그게 호구 짓처럼 보였던 것이다.
“친구야,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궁금하네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친구들은 제가 평소 도와주다 어쩌다 한 번 안 도와주면 서운하게 생각해요. 때로는 도와주지 못할 상황이 있잖아요. 왜 항상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까요? 오히려 더 뻔뻔하게 화를 내는 게 제가 호구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아 기분 나빠요”
아이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이들이 ‘도움’을 당연하게 여길 때 그것이 얼마나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지 어쩌면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예전의 나도 그랬다. 중학교 때 멀리 있는 학교까지 매일 걸어 다니던 나를 미안하고 안쓰럽게 생각한 아버지가 새 자전거를 사주셨다. 깨끗하고 번쩍번쩍 윤기가 흐르는 자전거를 보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새 자전거가 혹시라도 다치거나 고장 날까 봐 조심조심 다루며 열심히 연습한 끝에, 마침내 자전거를 타고 학교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 진아가 자전거를 배우고 싶다며 내게 부탁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여서 망설임 없이 내 자전거로 가르쳐 주기로 했다. 내가 뒤에서 캐리어를 잡고 진아는 안장에 앉아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며 연습했다. 하지만 진아는 자주 넘어졌고 그때마다 새 자전거가 더러운 흙에 묻고 상처가 났다. 넘어져 혼자 돌아가는 자전거 바퀴를 보며, 내 마음도 덩달아 어지러웠다.
‘가르쳐주지 말까...’ 고민했지만, 진아는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매일 자전거를 배우러 우리 집에 찾아왔다. 나는 결국 거절하지 못하고 진아가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때까지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얼마 뒤, 진아는 새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나타났다. 그 순간, 내가 그동안 흘린 시간과 노력은 어느새 낡은 자전거처럼 되어버린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도 그런 일은 비슷하게 일어났다. 좋아하는 사람과 식사하고 나서 찰나의 어색한 시간이 싫어 내가 먼저 계산해야 마음 편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나의 호의가 오해를 만든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안 해도 본인이 하려고 했었다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이불킥을 날리지 않았던가. 자기가 계산할 마음이었으면 진작 좀 하던가.
그런 일이 되풀이되니 진심을 보이며 사람을 만나는 일이 두려웠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천성은 감출 수 없나 보다. 따뜻한 감정이 스며들면 내 안에 있던 벽은 서서히 무너지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 욕구가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이가 들면서 비로소 내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사회성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함께 모여 수다를 나누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리고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뿌듯함과 행복감을 느꼈다. 그럴때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더욱 커졌다.
호구란 사전적인 의미는 어리숙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면 호구와 반대되는 사람들은? 체리 피커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기회 포착의 달인. 유래는 ‘나무에 열린 체리 가운데 가장 소담한 열매만 따서 먹는 행위’ 또는 ‘케이크 위에 얹어져 있는 체리만 집어 먹는 행위’라는 뜻에서 비유한 것으로 자신이 정확하게 원하는 부분만 취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 사람이 자신의 실속만을 챙기려 한다면 상대방은 분명 호구가 되어주어야 한다. 호구를 만들지 않고 서로 도움이 될 수는 없는 걸까.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적당한 타협점을 찾고 손해나 후회를 최소화할 수 없을까. 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실속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을 추구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하고 생각하면 작은 한숨이 쉬어진다.
넬슨 만델라는 “친절함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영향력은 끝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보여주는 자비와 이해가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마더 테레사, 달라이라마, 알베르트 슈바이처, 철학자, 인도주의자들이 말하는 공통점은 배려와 친절이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사회복지라는 직업은 배려와 친절에 더불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사명감이란 주어진 임무를 책임 있게 수행하려는 의지나 마음가짐이다.
또한, 사회복지사는 사회의 제도나 시스템을 활용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사회의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공평하게 약자에게 돌아가도록 세심하게 돌봐야 할 것이고 사회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부분을 지자체나 정부에 요구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배려와 친절을 바탕으로 자신이 정한 기준과 가치관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임한다면 그 어떤 상황에 휘둘려서 호구 짓 했다며 이불킥을 날리는 일도 없을 것이며 등가교환의 법칙을 적용하여 준 만큼 못 받았다고 억울해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남학생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친구를 돕는다는 건 사실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예요. 물론 자신이 불편한 상황에서는 정중하게 거절할 수도 있어야 되요. 자신의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해요.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도울 때는 그로 인해 자신이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적당한 타협과 배려를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호구가 된다면 모두가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
남학생은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중요한 건 배려와 친절을 베푸는 게 결코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는 것을 그가 조금이라도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개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하나의 사회가 되듯이, 하나하나의 배려와 친절한 마음들이 모여 더욱 살기 좋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하며 아이들과의 수업을 마쳤다. 그래도 나는 친절하고 멋진 자발적 호구다. 호구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