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지나친 '보호', 혹은 지독한 '간섭'
‘너는 꼭 부잣집에 시집가라’
엄마의 엄마, 즉 내 외할머니는 부잣집에서 태어나셨다고 들었어.
하지만 내가 아는 할머니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어.
빠른 걸음으로 늘 재촉하듯 움직 이셨고, 버스가 느려터져, 걷는 게 빠르다고, 어디든 걸어 다니셨어.
세상에 쫓기듯 사시는 분이셨거든..
“세상엔 도둑놈들밖에 없어”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세상과 욕설로 맞서는 뼈만 앙상한 노인.
내가 바른말을 하거나, “할머니, 제발 좀 그러지 마”라고 다그치면, 씩 웃으며 보이던 모습에서는 어린아이처럼 맑고 엣된 모습에, 따뜻한 눈빛을 하곤 하셨는데.. ‘댕기머리를 하고, 마차를 타고 동네에 마실을 나가’ 던 그때는 그 모습이었을까?
나라를 혼란에 빠트린 전쟁조차도 피해 간 당시의 부유함은, 너무나 어이없게 사라졌어. 할머니의 아버지는 아들이 없었고, 딸만 많았던 집안에서 혼기가 찬 딸들은 뒷전, 결국 한 친척을 양자로 들여 집안을 이었지만, 그 친척이 증조할아버지의 가진 재산을 혼자 날름 했다더라고.. 딸들은 어찌 됐건 알바 아니었던 거지.
할머니는 부모복도, 남편복도 지독히 없었대.
떠밀리다시피 사랑 없는 결혼을 했고, 남편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폭력을 견디며 살다가, 결국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 후 다섯 명의 자식들을 홀로 키우다시피 하셨어.
우리 엄마는 둘째이자 장녀였는데, 할머니가 식당이며 길거리노상 같은 일을 하며 돈 벌러 나가시면, 집안의 책임이 자연스레 엄마에게도 주어졌지. 우리 엄마 너무 똑똑한데, 학교는커녕 어린 시절부터 동생들을 업어 키워야 해서, 아직도 한이 많으셔.
그렇게 힘겹게 살아가던 할머니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면, 딸에게 되뇌듯 말했다고 해.
“넌 꼭 부잣집에 시집가서 편하게 살아라.”
엄마가 복스럽게 생겼다고, 동네에서 며느리 삼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더라고.
하지만 우리 엄마는 할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고, 정반대의 길을 걸었지.
엄마는 할머니를 연민하기보다, 자기 자신이 너무도 힘들게 자랐다는 생각에 반항만 가득했을지도 몰라. 할머니의 간섭이 싫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서였을까? 엄마는 결국, 자신 보다 더 심한 흙수저에 노동력밖에 없는 아빠를 만났고, 결국 혼전임신으로 그 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어떤 고난이 있어도 자식들을 버릴 수는 없다고,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아빠를 설득해서 함께 40대에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이민을 강행했어. 그리고 둘이 정말 말 그대로 ‘뼈 빠지게’ 일하며 살아냈지.
그런 엄마는 힘들 때마다 나에게 말했어.
“할머니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그때 맞선 봤던 부잣집 아들한테 시집갔어야 했어. 너는 꼭 부자한테 시집가라.”
엄마의 삶이 어찌 됐건, 엄마의 딸을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지독한 간섭처럼 느껴지고, 결국엔 반대로 하게 되는 것은 딸의 숙명인 걸까?
퓨즈선이 짧아서 앞뒤생각하지 않고 화부터 내는 거 빼고는, 가정적이고, 성실하던 아빠의 든든함은 생각 안 하고, 그렇게 부잣집 아들 타령하는 게 못 마땅했을 수도.
‘엄마는 내가 행복한 삶을 살길 원하기는 하는 거야? 왜 어떤 남자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맨날 부잣집 타령만 하는 건데?”
30대 중반에 이미 혼기를 놓쳐버린 나에게, ‘부잣집아들 만나서 결혼해라’라고 귀 아프게 말하던 엄마.
37세에 정말 자상하고 한결같은 남편과 결혼할 거라고, 늦게나마 이런 남자를 만날 수 있었던 건 기적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던 나에게, 가진 거 없는 외국인과 결혼한다고 기겁하던 엄마.
엄마는 잔인한 인생으로부터 딸을 ‘보호’하는 거라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이제 엄마의 간섭 없이 엄마보다는 잘 살 거라고 고집을 피 울 나이가 되었으니, 나도 엄마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던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