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생겼어요!>(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논장) 독후

by 여산희

작은 문제들, 과연 문제일까?


책 읽기가 심드렁하거나 시원찮을 때가 있다. 책상 위의 책들은 어서 오라고 유혹하고 내 머릿속은 바로 책장을 넘기라고 명령한다. 그렇지만 내 손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몸은 소파에 단단히 포박되어 있다. 그럴 때 지원군을 부르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림책을 펼치는 것이다. 첫 장을 넘기면 곧 마음이 가벼워지고 금세 그림 속으로, 흥미로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면서 책 읽은 재미가 솔솔 피어난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책 <문제가 생겼어요!>(논장)를 만났다. 그는 폴란드 작가이고 한국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 사색의 깊이 등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첫 장을 넘기니 식탁보가 등장한다. 가장자리에 꽃이 줄지은 것을 제외하면 소박하다. 알고 보니 할머니가 꽃을 수놓아 만든 것이고,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식탁보다. 그런데 다음 쪽을 넘기자마자 큰 문제가 생긴다. 다림질하던 아이가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식탁보에 얼룩이 생긴 것.


작은 실수 하나가 딴 세상을 부른다. 아이의 머리가 갑자기 팽팽 돌아간다. 상상은 로켓을 타고 여러 행성을 오간다.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아무리 비싼 세제로도 지울 수 없고, 인터넷에서 좋은 방법을 총동원해도 소용없다. 기도마저 결코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 웃음이 절로 터졌다. 식탁보의 얼룩 하나를 없애려고 기도까지 하다니! 그림책의 세계는 역시 상상 이상이다.


그러다 비겁한 생각이 살짝 스친다. 자신의 실수를 말 못하는 어린 동생에게 덮어씌울까, 아니면 할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다 그랬다고 둘러댈까. 웃음이 또 터졌다. 누군가의 실수 곁에는 얄팍한 유혹이 어른거리는 법이다.


그러다 아이는 심각해진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을 것인가, 세상 끝으로 도망갈 것인가.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갈 곳이 없다. 그렇게 오만가지 고민과 생각에 빠져 있는데, 그 순간 엄마가 나타나고 만다.


이 그림책은 얼룩 하나로 아이의 모든 상상을 담았다. 얼룩을 중심에 두고 쓱쓱 선을 이어서 다양한 장면을 펼쳐 보인다. 세밀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간결하고 가벼운 그림이 더 매력적이다. 특히 마지막 반전이 빙그레 웃음을 짓게 한다. 모든 걱정과 긴장이 한순간에 녹는다. 아이의 상상을 뛰어넘는 엄마의 대응은 각별한 추억 하나를 만든다. 할머니, 엄마, 아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면서 말이다.


이렇듯 작은 문제가 때로는 각별한 선물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그러니 작은 문제에 돋보기를 갖다 대는 것은 어리석다. 작은 문제에 끙끙대거나 휘청댈 필요는 없다. 일상의 작은 문제들은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나무는 태풍만 아니라면 그 어떤 바람에도 신나게 춤을 추지 않는가.


2023년 11월 21일 씀.

매거진의 이전글<그릿>(앤절라 더크워스/비즈니스북스)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