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말을 삼킨 아이 #소설 / 연재소설 / 성장소설 / 가족 /
언제부터인가 따뜻해야 할 집은 세화에게 한기가 스며드는 낯선 곳이 되어 있었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제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워, 아이는 늘 문쪽 벽 모퉁이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본래 세화는 시골 할머니의 투박하나 넉넉한 품속에서,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보드라운 흙을 밟으며 자라난 아이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알록달록한 사탕 봉지를 손에 들고 시골집 마당으로 쓱 들어섰을 때만 해도, 세화는 그것이 제 생에 당도할 가장 달콤한 예고편인 줄로만 알았다.
이제 부모님과 함께 서울이라는 먼 미지에서 살게 될 거라는 말에, 아이는 앞뒤 잴 것 없이 신이 나서 할머니께 넙죽 큰절을 올리고 해맑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미 말 잘 듣고, 공부도 야무지게 열심히 해야 한다.”
할머니는 절하는 손녀의 기특한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못내 서운하신 듯, 주름진 입가에 인자한 미소를 띠며 당부의 말을 건넸다.
"할머니, 제사 때 큰댁에 오실 거죠?"
"그럼, 그럼. 우리 세화 보러라도 꼭 가야지."
그 약속 하나에 세화는 할머니를 영영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자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할머니의 낡은 치맛자락을 놓아주고 아버지를 따라나서는 길,
세화는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알사탕의 매끄러운 감촉을 만끽했다. 그 사탕알처럼 서울에서의 삶도 마냥 달콤하고 매끄러운 길만 이어질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처음 아버지 손에 이끌려 어머니를 마주했을 때만 해도, 그 표정은 인자하고 부드러웠다.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던 막내딸을 향한 미소에는 분명 반가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그 온기는 한 계절을 넘기지 못했다.
시골 땟국을 빨리 벗지 못한 세화의 모든 몸짓은 어머니의 정갈한 성벽에 균열을 내는 불순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너는 대체 왜 그 모양이니? 그렇게 말했는데 또 , 흙먼지 묻은 손으로 어딜 함부로 만져!”
어머니의 부드러웠던 눈매는 이내 '교정해야 할 대상'을 훑어내리는 숫돌 위의 칼날처럼 서슬 퍼렇게 변해갔다.
설상가상으로 형제들 사이에서도 세화는 불청객이었다. 이미 견고하게 짜인 그들만의 세계에 불쑥 끼어든 세화는 겉도는 기름방울이었다.
"엄마, 얘 또 옷소매로 코를 막 닦아요. 지저분하게 이게 뭐야?”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제 자리를 지키기에 급급했던 언니들과 동생들은, 어머니의 화살이 세화에게 향하는 것을 방패 삼아 아이를 은근히 따돌렸다.
"얘랑 같이 있으면 시골 냄새나는 것 같아. 언니, 우리 방에 가자.”
언니들과 동생들의 차가운 속삭임은 세화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찍었다.
세화는 점점 그 좁은 문 옆 구석만이 자신을 품어주는 유일한 안식처라고 믿는 듯, 그녀는 가족과 동떨어진 그곳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다.
세화가 유일하게 가족과 마주하는 시간은 밥상머리였다. 그러나 그 시간조차 아이에게는 가시방석이나 다름없었다.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자리마저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로웠다.
숟가락 하나를 드는 일조차 섣불리 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기색을 살피느라 마음은 늘 얼어붙었다. 밥상을 마주할 때마다 아이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질문만이 맴돌았다. ‘내가 엄마가 원하는 대로 잘할 수 있을까?’
어머니는 결벽의 화신인 양,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락하지 않는 완벽주의의 성벽을 쌓고 그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에게 깔끔함이란 단순히 먼지를 터는 일이 아니라, 제 삶의 결을 정갈한 빗으로 매일같이 빗어 넘기는 구도(求道)와도 같았다. 그런 이들의 곁에서는 세상의 소란한 풍파도 감히 기를 펴지 못하고 고요한 질서 앞에 무릎을 꿇기 마련이지만, 그 이면은 갓 갈아놓은 숫돌 위의 칼날처럼 서슬이 퍼렜다. 그 서늘한 기운 앞에서 어린 세화는 차츰 제 목소리를 잃어갔다.
아이는 말을 삼키고 마음을 웅크리며, 한 지붕 아래 고립된 작은 섬이 되어갔다.
“시골뜨기처럼 천방지축으로 밥을 먹어서야 쓰겠느냐.”
낮게 깔린 어머니의 목소리는 채찍보다 따가웠다. 놋그릇 부딪치는 소리보다 날카로운 말마디가 밥상에 떨어지면 세화의 손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옥색 사발 안에서 윤기를 내는 밥알은 허기를 달래는 양식이 아니라, 매 끼니 치러야 하는 고단한 시험이었다. 세화는 손끝의 떨림을 감추려 숟가락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혹여 반찬을 집다가 흘릴까 봐 세화는 늘 고추장과 간장에 비빈 밥을 가슴팍에 묻듯 고개를 숙여 숨죽이며 삼켰다.
그것은 곡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어린 생애에 들이닥친 서러움을 잘게 씹어 안으로 눌러 넣는 고통스러운 의례였다.
공포가 허기보다 무서웠기에, 세화는 목구멍이 막히는 답답함을 견디며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었다.
그러나 과한 긴장은 결국 탈을 냈다. 방으로 돌아와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뱃속의 음식물이 꿈틀대며 역류했다. 입술을 깨물며 참아보았지만 한계였다. 비틀거리며 달려간 마당 끝 재래식 화장실, 시큼하고 퀴퀴한 악취가 진동하는 검은 구덩이 위에서 세화는 결국 속을 게워냈다.
“윽…….”
신음과 함께 쏟아져 나온 것들이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벽을 짚고 한참을 떨던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것이 밥 때문인지, 제 생의 서러움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세화는 깨달았다. 이 집에서 허기를 채우는 일은 제 영혼을 조금씩 깎아 바치는 대가 없이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이는 입술을 다물고 가슴속에서 들끓는 말들을 삭히며, 스스로 혀를 말아 올려 말을 삼켜버리는 법을 배워갔다.
서울 집의 일상은 시골 할머니 댁의 아랫목 같은 온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장에서 설탕 가루가 눈꽃처럼 뿌려진 꽈배기를 사 온 날에도, 달콤한 향취에 취해 손을 뻗던 세화는 어머니의 힐난 섞인 눈초리에 얼어붙어야 했다. 짐승처럼 날랜 꾸지람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돗가로 달려가 손을 씻고, 양 손바닥을 정갈히 펴 보이며 검사를 맡아야만 겨우 그 달콤함을 맛볼 수 있었다.
고단한 하루의 끝자락조차 안식은 없었다. 밤이 깊어지면 어머니는 찬 기운이 올라오는 마루에 내복 차림의 아이를 앉혀두고 스웨터의 보풀을 하나하나 죄다 뜯으라 명했다.
손끝이 아리고 눈이 침침해지도록 보풀을 갈무리하고, 어머니의 검사를 통과해 옷을 곱게 접어 머리맡에 누이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스웨터의 올을 고르는 행위는, 어쩌면 매정한 서울 땅에서 갈 곳 몰라 헤매는 제 마음의 생채기를 스스로 뜯어내는 처연한 몸짓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태와 맞지 않은 억압 속에서
세화는 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도 사귀고 동네 길을 익히게 되자,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집을 벗어날 궁리로 가득 찼다.
밖에서 맞는 공기는 숨통을 틔워주는 유일한 자유였기에, 갈 곳 없는 발걸음일지라도 집으로 향하는 것보다는 거리를 떠도는 편이 훨씬 좋았다.
그곳에서 세화는 상상 속으로 시골집에서 먹던 밥상을 떠올려 보고 마음껏 자유롭게 밥을 먹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국민학교 시절, 친구 집에도 갈 수 없는 날이면 세화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길가에 버려진 음식조차 외면하지 못했다.
흙먼지가 묻은 것을 주워 입에 넣으며, 아이는 허기보다 깊은 허전함을 씹어 삼켰다. 길 위에서 주린 배를 채우며 가냘픈 생의 마디를 하나씩 넘겼다. 어린 몸에 불청객 같은 해충이 깃들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나눠 준 구충약으로 겨우 고비를 넘길 뿐이었다.
이런 일들을 가족들은 전혀 알지 못했고, 오직 세화의 가슴속에만 깊은 흉터로 남았다.
그러다 새벽부터 길을 나선 어느 날, 세화는 잊지 못할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맛보았다.
새벽녘 놀이터 너머로 펼쳐진 일출은, 어둠을 걷어내며 황금빛 여명을 쏟아냈다.
어린 소녀에게 그 빛은 순식간에 좁은 시야를 가득 메우며, 세화의 마음을 처음으로 넓게 열었다.
낡은 철봉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작은 얼굴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자, 굳게 닫혀 있던 마음에도 미세한 온기가 번졌다.
차가웠던 공기 사이로 스며든 금빛 광채는, 숨죽이며 견뎌온 시간들을 한순간 씻어내는 위로의 광채였다.
이렇게 집을 나서 정처 없이 떠도는 날들은 늘어났고 집보다 친구집에서 보낸 시간은 입안에서 녹는 꿀처럼 달콤했다.
하지만 돌아갈 시간이 되면 세화의 발걸음은 진흙 속에 빠진 듯 무겁게 가라앉았다.
세화의 기척이 끊긴 골목마다 엄마와 언니의 다급한 발소리가 메아리쳤다.
굽이진 길목을 샅샅이 뒤져 끝내 붙잡혀 돌아온 날이나, 찾지 못하고 포기한 뒤, 세화가 뒤늦게 들어온 날이면 집안의 공기는 금세 퍼렇게 날이 섰다.
세화는 부모의 애달픈 질타와 매서운 꾸중을, 마치 소나기를 맞은 어린잎처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차라리 벼락처럼 쏟아지는 불호령을 잠깐 견디는 것이, 아무 일 없는 적막 속에 오래 머무는 것보다 더 쉬웠다.
이렇게 어긋난 날들은 봉합될 기미 없이 십 년 가냥이 흘렀다.
귀가는 점점 늦어졌고, 닫힌 입술 사이에 고인 침묵은 더 깊어져 방 안에 서늘한 웅덩이처럼 고여 갔다.
제집이라는 울타리는 더 이상 안온한 그늘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화를 옥죄는 창살이 되었고, 발 디딜 틈조차 없는 공간에서 세화는 존재감을 조금씩 지워 갔다.
마침내 벽지에 스민 얼룩처럼, 혹은 마당 구석에 놓인 돌멩이처럼, 집이라는 풍경 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서러운 천덕꾸러기 이방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 이 이야기는 가출한 소녀의 성장과 상처,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