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 피는 그 꽃이 좋으나 싫다

낙화를 바라보는 것

by 동글


늘 그렇듯 미래에게 현재를 전해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돌아보는 이 순간 생각보다 서둘러 흘러온 시간에 놀라고 있다. 단추를 굳게 여미던 모습은 이제 다시 생각 속에 담아두고 거리엔 가벼운 옷차림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4월의 문턱 앞에 있는 나는 지금 무언가 멈춰있으면 싶은 마음이 들고 그것이 좋으나 싫다.


쌀쌀한 날씨에 잠시 구석 자리를 지켜주던 자전거를 일으켜 바람을 온몸으로 가르고 왔다. 길가에 점차 피어나는 개나리와 어느 햇살 따듯한 언덕 위의 벚꽃 나무도 이미 개화를 시작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형용한다는 것은 아름다움이 만져진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저 아름다웠고 마치 소중한 물건이라도 선물 받은 것처럼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일렁였다. 하지만 그만은 아니었다. 마음 한편엔 가지가 굳게 잡고 있던 잎들을 바람과 함께 떠나보낼 다음 달의 문턱이 떠올랐다. 꽃은 언제나 피고 진다.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도 쌀쌀한 겨울 앞에서는 푸르름을 조금은 놓아준다.


사람은 어떠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을 어느 정도의 척도로 표현한다면 원하던 것을 실제로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그것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한 순간에 더 큰 행복감을 오래 그리고 크게 유지한다고 한다. 아마 내가 꽃을 보고 그것을 아름답다고만 생각하기보다 그것이 점차 지고 다시 앙상해질 나무가 쓸쓸하게 느껴진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꽃이 곧 필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한 나의 3월이 앞으로 꽃이 만개할 4월보다 더 큰 행복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는 꽃을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시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눈


시에 쓰인 단어들이 평이하지만, 꽃이 지는 순간을 차분하고 아련하게 표현한 담담한 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의 첫 단에 보면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는 단이 있는데 이 구절을 보고 있자면 한순간에서도 상반된 입장에 서 있을 모습이 떠오른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남겨진 이의 마음은 누가 알아줄 수

있을까, 어쩌면 떠나는 이보다 남겨질 이가 더 마음 아픈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개한 꽃의 아름다움은 내게 행복을 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갈 시간 속에서 꽃은 하얀 비가 되어 흩날릴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나는 또 그 순간을 기억할 것이고 무언가를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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