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잠이 오지 않는 날이 있다. 몸이 힘든 날은 초저녁에 끄떡이다 막상 자리 잡고 누우면 그새 잠이 달아나 있다. 달아난 잠이 다시 찾아 들길 기다리며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
지나간 날들에 대한 생각이다. 먼 기억 속의 고향집엘 가보고, 떠오르는 여행지의 추억도 꺼내보고, 열심히 살았던 직장의 현장 속으로도 들어간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생각이 머무는 것은 사람이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스치며 지나갔다.
사람들 속에서 크며 자랐고, 사람들 속에서 즐거웠고, 또 사람 때문에 힘들었다. 바람결에 스치기만 해도 인연이라 했는데 지나온 그 많은 사람들이 나의 인생이 되었다. 가슴 깊이 고마운 사람,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사람, 함께 즐거웠던 사람, 힘들게 했던 사람조차도 하나하나 의미가 있다.
누군가의 격려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고,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에너지를 얻었으며, 또 누군가의 관심이 나를 반짝이게도 만들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 속에서는 오히려 내면의 힘이 생기기도 했다. 나를 있게 한 모든 만남이 우연은 아닌 것이다.
최인호 작가는 <인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밤하늘에 떠있는 별이다. 이 별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소멸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이 신의 섭리를 우리는 인연이라 부른다. 이 인연이 소중한 것은 반짝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의 빛을 받고, 너는 나의 빛을 받아서 되쏠 수 있을 때 별들은 비로소 반짝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는 누구에게 빛이 되어 준 적이 있던가? 나로 인해 누군가가 반짝이는 별이 되도록 해준 적이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누군가의 머릿속에 기억될까?
이제 남에게 적으나마 빛이 되는 등대이고 싶다. 젊어서는 의도적으로 애쓴 적이 많았다. 그건 애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밝게 빛날 때 주변은 자연히 밝아지는 것이다. 지는 해가 아름다운 건 주변을 붉게 물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있을 새로운 인연보다는 이미 이어진 인연 속에서 주로 살아가게 될 것 같다. 인연도 노력 여하에 따라 관계가 발전하기도 하고 깨지기도 한다. 한번 만나고 못 만나며 그리워하는 경우도 있고, 일생을 가슴에 얹고서도 아니 만나고 사는 안타까운 관계도 있다.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 나의 주변에 가까이 머물며 이어지는 관계는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 가족일 수도, 친구일 수도, 이웃일 수도 있는 이 영겁의 인연 속 사람들을 후회 없이 사랑할 것이다. 내 영혼을 따뜻하게 했던 모든 인연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