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달동 이야기
아직도 자꾸 마음이 학교에 갈 때가 있다. 돌부리에 넘어져 주머니에 들어있던 조약돌이 툭 튕겨 나오듯이 문득문득 일상생활에서 학교의 일들이 하나씩 살아나온다. 특히, 초등 대안 벼리학교가 앞집으로 이사를 오면서부터는 더 자주 교실을 떠올리게 된다. 텃밭 일을 하다가, 꽃밭에 잡초를 뽑다가도,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면 그리운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마당은 하나의 교실 같다.
텃밭을 일구는 일, 꽃밭을 가꾸는 일이 교실에서 가르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 년 동안 맡은 아이들을 돌보고 공들이는 일이나, 한 해의 수확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텃밭 농사가 별반 다르지 않다.
꽃들을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서로 어우러져 옆에 있는 꽃들에게 배경이 되고 조화롭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도록 돌보는 일은 무엇보다 즐겁고 보람되다. 가꾸는데 들인 공보다 훨씬 많은 기쁨과 행복을 얻는다. 그러나 예쁜 꽃들을 키워내는 일이라고 항상 콧노래만 나오진 않는다. 지치고 힘이 부칠 때도 있다. 매한가지로, 가르치는 일이 천직이고 행복하다고 해서 힘들고 어려움이 없던 건 아니었다.
정성이 많이 드는 꽃이 있는가 하면, 때 되면 오고 때 되면 피어나는 거져 키우는 꽃들도 있다. 공을 들여도 신통찮은 것들은 더 사랑과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써야 한다. 반면 너무 세력이 커져 주변 자리를 넘보는 꽃들도 있다. 그래도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아이들도 그랬다.
막 깎아낸 잔디 마당은 초록 주단을 펼쳐놓은 듯 단아하고 정갈하다. 이럴 땐 하던 일을 멈추고 마당을 거닌다. 아직 오월의 싱그러움이 전해지는 마당에서 사랑스런 꽃들을 보며 아이들을 떠올려 본다.
멀리서 꽃을 보면 색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모습이 또렷해지며, 앞에 서서 눈을 맞추면 향기가 나고 바람에 살랑이면서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꽃들은 어찌 그렇게 서로 다른 빛깔과 자신만의 향기를 만들어 가는지.
학기 초에 새로운 아이들과의 만남도 꽃과 같았다. 처음엔 얼굴만 보이고, 이름이 보이다가, 성격을 알고,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까지 알아 갔다.
모양뿐만 아니라 색과 향까지 다 다른 꽃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얼굴이 그려진다.
함박웃음을 터트린 작약에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 성격까지 둥글었던 미선이가 들어있다. 보라색 붓꽃은 올곧게 뻗어 올라간 잎새와 함초롬히 입 다문 붓 모양의 꽃봉오리가 지호를 닮았다. 언제나 반듯했던 아이였다. 너무 작아 자세히 보아야만 보이는 풀꽃들도 수줍게 웃는 아이들 같다.
꽃 속에 많은 아이들의 얼굴이 보인다. 앙증맞고 나비 같은 핫립쎄이지, 노란 꽃창포, 고운 한련화, 신비의 푸른색 수레국화, 하늘거리는 샤스타데이지, 땅에 붙어 자라는 작은 풍로초. 하나씩 눈 맞추며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려 본다.
이제 교실에서 함께했던 추억속의 꽃들도 단단한 씨앗으로 영글어 학교를 떠난 어딘가에서 나처럼 가끔씩 교실을 떠올려 볼까?
반백년을 학교 울타리 안에서 살았으니 학교는 한 사람의 인생 깊은 곳에 이렇게 오래오래 자리하는가 보다. 앞으로도 마당을 서성이며 한때 삶의 중심이었던 지나간 교실로 종종 놀러 갈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