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달동 이야기
나는 가끔 생각한다. 정원에서 텃밭에서 일하며 공정과 공평에 대하여.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하고, '공평'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름'을 뜻한다.
텃밭에는 오이, 가지, 토마토, 고추 등 다양한 열매채소가 한여름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잎을 축 늘어트리고 있다. 해가 지면 다시 생기를 되찾지만 이어지는 가뭄에 유독 목말라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오이다.
사람과 동물은 물론, 식물까지 무더위에 지치지 않는 생명이 있을까만, 오이는 수분이 많은 열매인지라 물이 부족하면 바로 표시가 난다. 잎 끝이 누렇게 타들어가고, 열매는 꼬부라져 볼품없고, 그나마도 힘들게 버텨내느라 쓴맛이 난다.
매일 팔이 빠지게 물을 길어다 주었지만 조루로는 역부족이었다. 수도에 호스를 연결했다. 아무리 물을 뿌려도 바싹 마른 흙에 기름 코팅을 한 것처럼 물이 스며들지 못하고 흘러내리고 말았다.
보다 못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오이에게 특별 처방을 했다. 뿌리 옆에 빈 플라스틱 우유 통을 거꾸로 꽂아 수시로 물을 부어주고 항상 뿌리로 물이 흘러 들어가게 했다. 궁여지책이지만 다행히도 오이는 죽지 않고 버텨냈다.
텃밭 작물을 가꾸다 보면 이렇게 개별적인 차이와 상황에 따라 물을 더 주기도 하고, 고춧대처럼 바람에 취약한 것은 지지대를 세워주기도 한다. 또한, 덩치 큰 맷돌호박을 키워내야 하는 호박덩굴엔 다른 어떤 것보다도 퇴비를 듬뿍 준다.
그럼에도 옆에 있는 작물들은 공평하지 않다고 불만하지 않는다. 가지나무는 호스로 뿌려주는 물만으로도 탱탱한 보랏빛 가지를 열었고, 주렁주렁 열린 토마토도 태양 바라기로 붉어지며 단맛을 들이고 있다. 어느 정도의 환경에서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작물들이다.
나무와 꽃들도 마찬가지다. 부실하거나 나약한 것들은 더 정성을 쏟으며 보살핀다. 그래도 어느 것 하나 불평하지 않고 정원을 아름답게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작은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공평과 공정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텃밭이나 정원에서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공정과 공평은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지만 정책결정이나 사회적 논의에서는 훨씬 중요한 개념이다. 공정이 공평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능력이나 배경에 관계없이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공평'이라면, 옳고 그름에 관한 윤리적이고 인간적인 판단이 개입한 것이 '공정'이라고 생각한다.
최재천 교수는 서울대 졸업식 강연에서 '공정'과 '공평'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별생각 없이 키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눠주고 공정하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그건 그저 공평에 지나지 않습니다. 키가 작은 이들에게는 더 높은 의자를 제공해야 비로소 이 세상이 공정하고 따뜻해집니다. 공평이 양심을 만나면 비로소 공정이 됩니다. 양심이 공평을 공정으로 승화시킵니다."
나도 아이들에게 공정에 대해 좀 더 가르쳤어야 하는 건 아니었나. 교실에서 아이들은 조금의 차이도 용납을 못하고 차별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잦았다. 자리 배정, 청소구역 배정, 급식 등, 매사에 무 자르듯이 정확히 나누고 받기를 원했다.
교실은 환경과 능력이 제각기 다른 아이들이 모여 있는 작은 사회다. 물론 공평한 저울질이 중요하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공정이라는 잣대도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무조건적인 공평에만 길들여진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 공정에 대한 공감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더도 덜도 아니게 똑같이 대우하고 똑같이 배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름을 인정한 유연성이 더해진 공정이 필요하다는 걸 학교에서부터 배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즉, 공평에 따뜻한 마음이 더해져 공정이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웃게 된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받아들이는 마음을 키워나가야지 싶다.
공정과 공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둘 다 필요한 개념이다. 상황에 따라 어떤 가치가 더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 공정과 공평의 저울이 적절하게 쓰이는 정의롭고 따뜻한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제도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가뭄을 해갈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지쳐있던 텃밭 작물들, 꽃과 나무들이 단비를 맞으며 모두 웃고 있다. 더위 속에서 매일 물 주기에 바빴던 나도 숨통이 트이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