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으로 산다

by 지현옥


주민센터에 갔다가 디지털 배움터 스마트폰 교육 안내문을 보고 문의를 했다.

-아직 젊으시군요.

-네? 젊다구요?

-일흔 안되셨지요? 그러니까 젊으신 거죠. 기초반과 활용반 중 활용반으로 신청하시는 게 좋을듯합니다.

이렇게 해서 젊은(?ㅎ) 나는 '스마트폰 활용 교육'을 받게 되었다.


스마트폰의 스마트한 기능들은 나에겐 무용지물로 전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2G폰으로도 충분한 사람이다. 원래부터 기계치에다 관심도 없다 보니 스마트폰은 그저 통화용으로 쓰일 뿐이다.

스마트폰 활용반에 들었다고 하자 남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앱 하나 깔면서도 몇 번씩 물어보고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회원가입도 의심된다고 망설이는 나다. 자기가 먼저 가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되었다며 잘했다고 좋아했다. 남편도 그런 생각을 했구나. 사실, AI가 생활 전반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시대에 나만 점점 세상과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불편한 진실이었다.


오래전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사랑하는 이를 남한에 두고 북으로 떠나야 하는 주인공 현빈이 문자 예약으로 메시지를 남기는 장면이 있었다. 안타까운 이별 후, 예기치 않은 문자를 받아본 여주인공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눈물을 흘리는 애틋한 사랑이었다.

저런 기능도 있구나 의아해하며 보았다. 그걸 오늘 배웠다.


교육이 끝나고 청계천을 걸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여름꽃 능소화가 곳곳에 피어있었다. 벌써 떨어져 누운 꽃잎도 보였다.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작별을 해야 할 시기가 오면 사랑하는 가족들 생일이나 기념일에 미리 예약으로 깜짝 문자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울컥했다.

산책길에 떨어져 누운 꽃잎들마저 마음을 툭 건드리고,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마음 한편이 시큰해지는 시기가 되고 서야 삶의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절감한다.


요즘은 지인들의 부모님 상이 아닌 당사자들의 부음 소식을 접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엔 쿵 했던 마음이 내게도 언제든 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며 인생에 그다지 무서울 것이 없는 나이가 되어간다. 오직 시간만이 무섭도록 빨리 흐른다.

남편도 나도 말은 안 해도 언젠가의 헤어짐을 염두에 두고 살고 있구나.


남편은 오늘 무엇을 배웠냐고 물어보았지만 나는 그냥 웃음으로 답했다. 대신 아파트 앞에 홍게와 오징어순대, 소라를 파는 푸드 트럭이 보인다고 저녁에 한잔하겠냐고 물어보았다. 날씨는 덥고 무료해 보이던 남편의 얼굴에 다시 능소화 같은 화색이 돌았다.


험난하고 긴 여정을 지나 하류에 다다른 강물처럼 우리의 생은 이렇게 작은 것들에 반응하며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스마트폰 활용 교육은 기기 사용법만 알려준 게 아니었다. 나이 들어가며 생겨나는 서로를 향한 연민의 마음도 알게 했다. 결혼이란 긴 동행엔 사랑보다도 연민이 더 소중한 동력이 된다는 것을. 뜨거운 사랑이 떠난 자리에 연민이 우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