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쪽일까?

모과와 동그라미가 되고 싶었던 세모

by 지현옥


며칠 전 집앞에 있는 청계 숲고운도서관에 갔다. 예약 도서를 받아 나오려는데 은은한 향이 코끝에 스치며 발목을 잡았다. 달콤함이 깃든 익숙한 향에 이끌려 간 곳에 모과 3개가 놓여 있었다.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못생긴 모과였다. 잘 익은 모과는 늦가을 오후의 햇살처럼 노랗지만 그다지 색이 곱지도 않았다.


창틀에 놓인 모과는 창밖 붉게 물든 단풍과 비교되어 보잘것없었지만 은은하고 그윽한 향에 매료되어 그 자리에 앉았다. 대출 도서 중 이기주 <언어의 온도>를 다 읽고 나서야 일어섰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취했던 건 모과향일까, <언어의 온도>였을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모과향 못지않게 나누고 싶은 글이 있었으니 둘 다에게 매료된 시간이었지 싶다.




<동그라미가 되고 싶었던 세모>


옛날 옛적에 세모와 동그라미가 살았습니다. 둘은 언덕에서 구르는 시합을 자주 했는데

동그라미가 세모보다 늘 빨리 내려갔습니다.


세모는 동그라미가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달라지기로 했습니다.

동그라미를 이기기 위해

언덕에서 끊임없이 구르고 또 굴렀습니다.


어느새 세모의 모서리는 둥글게 다듬어졌습니다.

이제 동그라미와 비슷한 빠르기로 언덕길을 내려갈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구를 때 잘 보이던 언덕 주변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고, 구르는 일을 쉽게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세모는 열심히 구른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겉모습이 거의 동그라미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세모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중에서-




혹시 우리도 동그라미가 되고 싶은 세모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가진 장점을 보지 못하고 남들과 비교하고 다른 사람을 부러워만 하면서 자신의 본질을 잃어가는 어리석은 삶.


​그런 면에서 모과는 당당하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향기를 택했다. 세파에 찌든 듯 울퉁불퉁한 모양이지만 개념치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향을 낸다.

늦가을에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 모과를 보며 생각한다. 인생의 가을에 와있는 나는 과연 모과와 '동그라미가 되고 싶었던 세모' 중 어느 쪽일까?


물론, '당신에게선 모과향이 납니다.'가 듣고 싶은 말일 것이다. 내일은 속달동에 모과를 따러 가야겠다. 그런다고 모과향이 배일까마는 마중지봉(麻中之蓬)이라는 말도 있다. 구불구불 자라는 쑥도 삼밭에서 자라면 곧고 바르게 자란다니, 모과를 방에 두면 좋은 향이 조금이라도 스미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