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를 캐며 떠오르는 얼굴

속달동 이야기

by 지현옥

날씨만으로도 배부른 날이다. 가을은 몸과 마음을 자꾸만 밖으로 불러낸다. 노란 산국 한 가지를 화병에 꽂고 마당 정자에 앉았다. 가을 삼매경에 빠져있을 때,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 지나갔다. 개울 건너 논두렁길을 따라 아이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벼 베기 전 종자용 낟알을 거두러 왔다며 재잘대는 산울학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논두렁 위로 퍼져났다. 황금들판을 지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련한 기억 속의 장면이 떠올랐다.

요맘때쯤 아이들을 데리고 여주로 체험학습을 갔었다. 그날도 햇살 가득 눈부신 날이었다. 고구마 캐기, 인절미 떡메 치기, 경운기 타기 등 농촌체험활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을 한다기보다, 네모난 칠판만 바라보던 아이들은 노랗게 물든 탁 트인 들판에서 콧바람을 쐰다는 것만으로도 한껏 부풀어 있었다.


먼저, 논길을 지나 고구마 밭으로 갔다. 고구마 덤불은 이미 걷어져 있고 준비된 검정 비닐봉지에 각자 캐서 담아 가는 것이었다. 처음 잡아 보는 호미 자루를 쥐고 신기해하며 땅속에서 막 캐낸 고구마는 흙 속의 습기를 머금은 선명한 붉은색의 밤고구마였다. 고구마도 아이들도 날씨만큼이나 빛나고 예뻤다.


시작할 때의 마음과는 달리 지렁이, 굼벵이, 개미 등 흙 속 벌레들에 놀라 몇 개 캐고 마는 아이들도 있고, 옷에 흙이 묻을까 신경을 쓰며 이내 그만두는 아이들도 보였다. 사실 고구마 캐기는 감자 캐는 것만큼 만만하지는 않다. 감자는 뿌리 주변에 올망졸망 모여 있지만 고구마 줄기는 땅속에 길게 뻗어 있기도 하고 흙이 다져져 있어 호미질에 더 힘이 들어간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 시간까지 열심히 캐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K였다. 자기 봉지는 이미 다 채웠는데 반 친구들 봉지를 채우고 있다고 하였다. 친구들이 반도 안 채우고 그냥 가는 게 아까워 자기가 채워주고 있는 거라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훔쳐내면서 호미질을 계속하고 있었다.


의외였다. K는 수업 시간에 참 힘든 아이였다. 본인이 집중을 안 하는 건 물론이고 수업 분위기를 망가트리는 주범이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그 반에 들어가는 걸 꺼릴 정도로 매시간 힘들게 하는 아이였다. 어느 분은 그 반 수업이 있는 날은 학교 오기가 싫다고 할 정도로 학년에서 유명세를 탔다. 주당 시수가 많은 주요 교과라 1주일에 하루 빼고 다 들어가야 하는 나로서도 그 반 수업이 없는 날은 마음이 가벼웠다.

평소와는 너무 다른 K의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 눈이 마주치며 서로 웃었다. 결국 그 반 아이들 비닐봉지는 배가 불룩하도록 다 채워졌다. 교실 밖에서 본 K는 누구보다 예뻤고, 땀 흘린 후 받아 든 시골밥상 앞에서 여느 때보다 수북이 올라간 밥숟가락도 보기 좋았다.

그날만큼 하늘도 높고 푸른 날이다. 마당 한 켠 텃밭에 몇 줄기 심었던 고구마를 캐며 내내 K의 얼굴이 떠올랐다. 땅속줄기에 줄줄이 달려 나오는 고구마를 보며 맑게 웃던 얼굴. 누구보다 열심히 호미질을 하며 즐거워하던 모습. 친구들 봉지까지 채워주느라 흘리던 땀방울. 교실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고 기대조차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동안 K도 힘들었겠구나. 맞지 않는 공부와 전혀 관심도 없는 수업 내용을 가만히 앉아 듣고 있어야 하는 매시간이 얼마나 지루하고 긴 시간이었을까. 체험학습이 있은 후에도 K는 여전히 수업에 무관심하고 딴짓을 했지만 그래도 반 전체 분위기를 흔들 정도로 나대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그날 나의 눈빛에 어린 따뜻한 시선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면 다가와 말을 붙이기도 했다.

"쌤! 쌤은 왜 손톱에 매니큐어 안 바르세요? 칠해 드릴까요? 저한테 색색이 세트로 다 있는데. 저 나중에 네일 숍 하려고 배우러 다녀요."

" 그래? 나한테 연습해 보려고? 그런 거지?"

"아니에요. 연습은 모조 손톱으로도 충분해요. 선생님처럼 납작한 손톱도 자꾸 관리하면 예뻐지는데..."

"그렇구나. 나중에 네일 숍 내면 거기로 관리받으러 갈게. 지금은 분필 만지고, 밥하고, 물마를 새가 없어서. 열심히 배워서 전문가 되면 좋겠다. 그때 모른 척 말고 꼭 해주라."


한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날 K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간다고 하였다. 상담할 일이 있는데 연로하신 K 부모님 두 분 다 일용직으로 시간 내기가 어려워 퇴근 후 집으로 직접 찾아간다고 했다. 당시 학년을 총괄하고 있던 나도 동행하기로 했다.


동네에 들어서고 골목을 돌고 돌아 주소지가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서로 말이 없어졌다. 낮은 동네 골목길 끝에 K의 집이 있었다. 부모님은 아직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K는 우리를 보자 굳은 표정으로 서 있다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왜 허락도 없이 왔냐며 서러운 울음을 쏟아냈다. 아마도 누추한 집을 보여주는 것이 냉기 도는 방에 찢어진 벽지보다도 더 큰 상처가 되었나 보다.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꼭 안아주고 돌아서서 나왔다.


그날, 나는 일방적인 호의는 상대를 아프게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원치 않는 배려는 오히려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후로 늘 마음이 쓰였는데 국어 시간에 K가 썼다는 글을 읽고는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엄마 아빠 노후는 내가 책임진다'는 글에서 제법 단단한 K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은퇴를 하여 학교를 떠나고 벌써 몇 번의 가을이 지나갔다. 손에 물마를 날은커녕 흙까지 묻히고 사느라 여전히 손톱 가꿀 일은 없지만 네일 숍은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멈춰서 네일 아티스트로 눈을 반짝이고 있을지도 모르는 K의 얼굴을 그려보게 된다. 반 친구들의 헐렁한 봉지를 채우기 위해 끝까지 고구마를 캐던 뚝심으로 부모님의 노후를 책임지겠다던 바람을 네일 숍 어딘가에서 이루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