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11월의 큰 숙제를 끝냈다

속달동 이야기

by 지현옥


낮이 많이 짧아지고 추워졌다.

가을을 보내고 겨울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김장을 하지 않고는 가을을 보내지 못할 것처럼, 아니 겨울에 살아남지 못할 것처럼 11월이면 김장이라는 큰 숙제를 안고 있다.


마트에서 사는 포장 김치도 제법 맛있다 하고, 절임배추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세상이라 김장풍경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리는 유난을 떨며 온 식구들이 동원되어 김장을 한다.


속달동 텃밭이 떠 안긴 노동이자 즐거운 부산함이다. 스스로 자처한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내하며 김장이라는 대장정을 여름의 끝에서부터 시작한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 쫀쫀하고 햇살이 듬뿍 든 가을배추로 담은 김치는 일 년 내내 마지막 포기까지 아삭하게 먹을 수 있으니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입동이 지난 11월 텃밭을 채우고 있던 마지막 초록들을 거뒀다. 늦여름, 배추 모종을 심고, 무씨를 뿌리면서부터 시작된 김장의 긴 여정이 막을 내리는 날이다. 연례행사를 위해 함지박, 큰 그릇, 채반들이 마당에 총 출동했다.


화단에 쓰러져 있는 국화 한 다발을 항아리에 꽂아 그윽한 가을향을 맡으며 산까마귀 울어대는 마당에서 배추와 무를 다듬고 절였다. 잦은 비로 포기가 허부성하고 작지만 배추를 가를 때마다 드러나는 배춧속은 샛노란 꽃으로 피어났다.


무는 흙에 댄 엉덩이 부분보다 햇빛을 받고 자란 연둣빛 머리 부분이 더 많다. 씨앗 한 톨을 옹골지게 키워낸 흙의 마법은 매번 신기하고 대견하다.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감동, 뿌듯함, 수확의 기쁨을 맛보며 배추와 무를 뽑고, 옮기고, 다듬었다.



다행히도 김장 날은 포근했다. 철쭉이 철 모르고 꽃잎을 열 정도로 온화하고 청명한 날씨에 등에 내리는 늦가을 햇살이 솜옷처럼 따스했다.


음악을 들으며 놀이 삼아 시작했지만 역시 고된 일이다. 특히, 배추에 켜켜이 소금을 뿌리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려 짧은 해가 산등성이에 닿을 때서야 겨우 허리를 폈다.


아직도 어설픈 텃밭지기지만 갓과 쪽파도 김장할 정도로는 키웠다. 크고 뻐시게 자란 것보다 작달막하고 연한 적갓이 내뿜는 알싸한 향이 제법 진했다. 바로 뽑은 쪽파도 다듬고 씻어 가지런히 준비했다.



다음날 아침 다시 속달동으로 달려가 절인 배추를 씻어 물기를 빼고, 무채를 썰었다. 김장 김치엔 한 해의 속달동 수확물들이 다 들어간다. 봄에 나온 양파, 마늘을 비롯해 얼마 전에 캔 생강과 몇 개씩 따서 말려두었던 투명한 고춧가루 한 줌까지 모두가 작은 텃밭에서 길러낸 양념들이다.


찹쌀죽을 넣고 양념을 버무리는 일은 남편이, 속을 넣는 일은 시간을 내서 온 아이들이 했다. 배춧잎 켜켜이 우리들의 가을 이야기와 웃음소리를 넣어가며 배추 30 포기와 섞박지 한 통을 담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고된 숙제를 마무리하고 김장양념에 수육을 곁들여 저녁 식사를 했다. 힘들었지만 통마다 담긴 김장김치를 보며 뿌듯했다. 일 년 동안 밥상을 책임질 김치에 부자가 된 듯도 하다.



편하게 사는 방법도 있지만, 어렵게 얻은 것은 그 만한 가치가 있다. 달큰한 가을배추와 단단한 가을 무로 담근 김장김치의 깊은 맛은 햇 배추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맛이다.


올해도 우리는 속달동 텃밭에서 밥상까지 김장김치를 올리느라 땀 흘리고 힘들었지만 맛있는 김치를 보약처럼 먹으며 겨울을 보낼 것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11월의 숙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