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마당 있는 집에 사는 게 꿈이었다.
아파트의 편리함을 좇아 산지 몇십 년. 바쁜 일상에 잘 맞추어진 구조와 문 열고 들어서면 주변과 단절된 폐쇄 공간이 안락하고 편했다. 그 편리한 환경이 언제부턴가 답답하게 느껴지고 오히려 불편함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무렵까지 마당 넓은 집에서 살았다. 마당 가운데 펌프 우물이 있고, 그 옆에 장독대가 자리하고, 담장 밑으로 꽃밭이 드리워져 있는 시골집이었다. 마당은 안채와 사랑채를 오가는 단순한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온갖 일상이 펼쳐지고 사랑이 피어나는 아파트의 거실 같은 주 생활공간이었다.
세수하고, 등목도 하고, 평상에서 밥을 먹고, 빨래를 널어 말리고, 멍석을 깔아 곡식을 널고, 여름날 저녁이면 모깃불 피우고 누워서 별을 보기도 했던 추억이 자라는 공간이었다. 비질을 끝낸 흙 마당은 얼마나 정갈했던지, 비 온 후 올라오던 흙냄새는 또 생각만으로도 진한 향수를 불러왔다.
은퇴 후, 집 근처 멀지 않은 곳 속달동에 작은 터를 마련하였다. 그리움을 밑그림으로 꽃밭을 만들고, 텃밭도 일구고, 닭장을 짓고, 장독대를 놓는 등 매일 오가며 땀을 흘렸다. 사계절을 온전히 누리며 몇 번의 해가 바뀌어 이젠 제법 철마다 꽃이 피고 색이 변하는 공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갖고 싶던 마당을 넓게 들여 소망을 이룬 셈이다. 흙 마당 대신 잔디를 심었다. 생각보다 관리가 쉽지 않고, 봄부터 여름까지는 잡초 뽑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호미 들고 앉으면 한나절이 후딱 간다. 기꺼이 감내하는 무념무상의 행복이랄까.
마음껏 하늘을 담은 이 마당에서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것들을 하나씩 하고 있다. 좋아하는 나무를 심고, 원하는 꽃씨를 뿌리고, 쌈채소를 기른다. 빨랫줄에 염색 천을 널어 말리고, 양지바른 장독대에 된장을 담아 맛 들이고, 넓은 마당에서 편하게 김장을 하고, 닭을 키워 알을 얻는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뤘다. 햇살에 앉아 차를 마시고,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수리산빛을 보며 사색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며 부러워도 한다.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넣듯, 마당은 하고 싶은 것들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한의 공간이 되었다.
부모님이 마지막까지 살았던 집도 마당 있는 집이었다. 자식들이 모두 떠나고 좀 더 편한 집을 지었다. 꽃밭과 텃밭을 들이고, 마당은 작게 보도블록을 깔았다. 아이들이 좋아해 주말에 자주 놀러 가곤 했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에게 마당 있는 시골집은 즐거운 놀이터였다.
추억이 서려 있는 그 집이 그리워 찾아간 적이 있다. 어느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엄마가 좋아했던 영산홍도, 아버지가 가꾸었던 소나무도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문패만 바뀌어 있었다. 그분들도 마당에서 편안한 생을 보내고 있는 듯 한가로워 보였다.
부모님의 마당과 내가 가꾼 마당은 좀 다르다. 혹시 우리 아이들이 선택할지도 모르는 마당도 다를 것이다. 각자의 마당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삶에 다가갈 수 있는 창작의 공간이다. 마음을 비울 수 있는 휴식의 장소이고, 살아 있는 감성을 자극하는 따뜻한 뜰이기도 하다. 마음의 안식처인 나의 마당에서 이제 또 다른 꿈을 키워간다.
마당 있는 집 / 지현옥
마당 있는 집에선
여행이 그리 고프지 않습니다.
하늘을 마음껏 들이고
매일 새로운 풍경이 찾아들고
예기치 않은 뜻밖의 기쁨을 만납니다.
마당 있는 집에선
외롭지 않습니다.
온갖 새들과 풀벌레와 함께하고
밤이면 달님도 별님도 놀러 옵니다.
마당 있는 집에선
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철별로 나오는 나물을 뜯고
들꽃을 따다 염색을 하고
하얀 이불 홑청에 햇살 냄새가 배고 사각거리게 말립니다.
마당 있는 집에선
그리움이 많습니다.
꽃잎으로 압화를 만들고
곱게 물든 단풍잎을 붙여서
누군가에게 예쁜 편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것이 내가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