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이유로 실패하다.
“지구를 위한 행동 52주”의 첫째 주간(1.1~8) 행동은 “겨울 숲길을 걸어봅시다”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지구를 위한 행동 52주”에 동참하자고 권유도 많이 했고, 그에 대한 글도 써서 올렸기 때문에, 스스로 열심히 겨울 숲길을 걸으리라 다짐했습니다. 다행히 집 바로 앞에 구룡산 등산로와 양재천이 있기에 실천하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일단 주일은 바쁘니까 넘어갔고, 쉬는 날인 월요일에 구룡산과 양재천을 몰아서 잔뜩 걸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월요일 아침이 되었는데, 몸 상태가 안 좋았습니다. 열은 없었지만 초기 감기처럼 몸이 찌뿌둥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 그것도 목사가 아프면 큰일 나기 때문에 월요일은 집에서 푹 쉬기로 했습니다. 대신 화요일에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양평의 용문산이나 남한산성에 가서 겨울 숲길을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화요일 아침에도 여전히 몸이 좋지 않았기에,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짜장면을 시켜먹으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행히 수요일 아침에는 몸이 조금 괜찮아졌는데, 함께 몸이 좋지 않았던 아내가 밥을 먹다가, “음식이 아무 맛도 안 나는데?”라고 말했습니다. 말 한 아내도, 들은 저도 놀라서 몇 초간 가만히 서로를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근처 코로나19 검사소를 찾아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목요일 아침에 음성이 나왔습니다. 그제야 안심하고 교회로 걸어서 출근을 하려고 했는데, 그 주일에 교회에서 사용할 물건이 집에 많이 있어서 차로 출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벌써 금요일 아침이 되었고, 저는 단 한 번도 겨울 숲길을 걷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지요. 그러나 그때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행복한 가정에도 문제와 어려움이 있습니다. 다만 그 문제들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가정의 행복에 집중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것이죠. 반면에 불행한 가정들은 그 문제들에 시선을 빼앗겨 버립니다. 그래서 그 문제들을 불행의 이유로 삼고, 그 이유로 불행해지는 것이죠. 실천과 약속을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의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천에 성공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피해 오직 행동에 집중하기 때문에 성공하겠지만, 저마다의 이유를 들먹이는 사람은 그 이유들로 실패하겠지요. 제가 금요일 아침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겨울 숲길을 걷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죠.
어렸을 적에 집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면 늘 엄마한테 물어봤습니다. “엄마, 손톱깎이 어디 있어?” “거실 서랍장 안에 있어.” “서랍장에 없는데?” “어이구!”하시면서 엄마가 직접 와서 서랍장에서 찾아주시는데, 신기하게도 방금 제가 찾아서 나오지 않았던 곳에서 손톱깎이가 짠하고 나옵니다. 그러면 엄마는 제가 찾던 물건을 주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나나였으면 네가 찾았겠지!” 엄마에게 귀한 과일이었던 바나나처럼, 제가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었으면 굳이 엄마를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잘 찾았을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겨울 숲길 걷기도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만약 바나나 먹는 일이었다면, 제가 겨울 숲길 걷기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면, 일이 많아도, 몸이 불편해도 어떻게 해서든 조금은 걸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제가 그만큼 겨울 숲길을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반성하고,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집 앞 등산로와 양재천 겨울 숲길을 마구 걸었습니다. 바나나 먹는 일처럼 열심히 말이죠. 그랬더니 길에서 고양이들도 만나고(위의 사진), 사람도 만나고, 나무와 돌도 만나고, 그리고 저 자신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월 16일부터 시작하는 3주간 행동은 “환경 독서를 계획합시다.”입니다. 독서할 시간이 없어서, 책이 없어서, 환경 독서가 무엇인지 몰라서, 재미없어서, 그 외에도 독서하기 힘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바나나를 찾아서 먹는 것처럼, 집중해서 해 환경 독서를 읽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