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무모한 희망, 사라져가는 동물들과 나누는 사순절 이야기>
야생말로 인정받는 말은 몽골 초원에서 사는 말 뿐인데, 이 몽골 야생말의 이름은 2가지입니다. 타키는 초원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온 몽골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입니다. 몽골어로 ‘정령’이라는 의미인데, 타키를 초원의 정령으로 귀하게 여기는 몽골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이름입니다. 반면 타키의 다른 이름은 ‘프셰발스키의 말’입니다. 러시아 군인 니콜라이 프세발스키가 1879년에 몽골 야생말을 처음 발견해 서구 학계에 보고해서, 이 야생말의 이름이 프셰발스키의 말이 되었습니다. 타키라는 아름다운 이름에 비해 단순하고 볼품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가지고 온 결과는 훨씬 더 비참합니다. 프셰발스키의 말이 서구사회에 길들여지지 않은 유일한 말의 등장을 알렸고, 이에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은 포획을 위한 원정대를 몽골 초원으로 보냈습니다. 다행히 야생말 타키는 초원에서 쉽게 포획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원정대의 사냥꾼들은 잡을 수 없는 종마와 암말을 무자비하게 죽였고, 새끼들을 포획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잔인한 포획에 전염병, 추운 기후와 같은 열악한 초원의 환경이 더해져서, 타키는 야생에서 멸종했습니다. 몽골 초원의 정령이 사라진 것이죠.
다행이라고 혹은 덕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원정대에 포획된 타키 중에는 동물원에 팔린 타키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타키는 야생말로 몽골 초원에서 살지는 못했지만, 멸종되는 일은 간신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정대의 포획 과정에서 종마들이 많이 죽은 탓에 타키의 번식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거기에 제2차 세계대전까지 일어나서 동물원에도 고작 12마리만 살아남았습니다. 거의 멸종한 상태와 다름없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누군가 타키가 다시 몽골초원에서 야생말로서 자유롭게 달리는 장면을 상상하고 희망한다면, 그 사람에게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라고 충고할 것입니다. 그런데 1950년대에 무모하고 어리석은 몇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소수의 환경보호활동가들이 뮌헨과 프라하 동물원에서 살아남은 12마리 타키들이 다시 몽골 초원에서 달리는 무모한 희망을 꿈꿨습니다. 시작은 12마리 타키를 철저한 사육 프로그램으로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반에는 33개국 동물원과 공원에서 1,500마리의 타키가 살게 되었습니다. 이 자체도 놀라운 열매인데, 무모한 희망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993년 재도입 프로젝트를 통해서 타키를 드디어 몽골 초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사라졌던 몽골 초원의 정령 타키가 부활한 것이죠.
어리석은 자들의 무모한 희망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은 타키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황금사자콧수염원숭이, 갈색펠리컨, 흰머리수리, 매, 붉은늑대, 회색늑대, 플로리다퓨마, 벤쿠버섬마멋, 하와이기러기, 남아프리카산 영양, 나사뿔영양, 아메리칸 송장벌레, 아메리칸 악어, 황색매드톰, 피리물떼새도 한때 지구상에서 멸종한 것처럼 여겨졌으나, 다시 부활하여 돌아왔습니다. 그들과 함께 무모한 희망을 꾼 어리석은 몇 사람이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당하는 생명들이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울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당장 바꿀 수 있는 일도 적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무모한 희망을 꿈꾼다면, 어리석어 보여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무모한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개인의 인생도 동일합니다.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럼에도 나 자신을 향한 무모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도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무모한 희망을 꿈꾸는 어리석은 자들이 됩시다.
: 이번 사순절을 보내면서 무모한 희망을 갖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잘 돌봐서 아이들이 기후위기 없는 건강한 세상에서 살 수 있게 하겠다는 무모한 희망!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무모한 희망! 사순절이 지나고 부활절이 오면, 나의 불안이, 너의 슬픔이, 우리의 고통이 기쁨과 평화로 변화된다는 무모한 희망! 이 모든 희망이 부활절에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