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을 찾는지 글감을 없애는지

by Decenter

마지막으로 글을 쓴 지가 3일이 지났는데 열흘은 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보니, 마음에 무언가 쌓인 것이 많나 싶어.


글을 쓰는 나날들에는 습관이 하나 생긴다? 일상에서 어떤 이벤트가 생기면 아, 오늘은 이걸로 글 써야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지. 모든 이벤트의 글감화. 그건 생각보다 더 큰 효과가 있어. 어이없는 일이나 화가 나는 일이 생겼을 때도 글로 써야지 생각하면 조금 객관화가 되거든. 어떻게 이야기로 구성할까, 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치솟은 감정은 좀 진정이 되고, 조금은 남일인 듯이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게 되는 거지. 그렇게 시야가 넓어지면 그렇게 유난스러운 일들도 다 별일 아닌 것들이 된다. 글감 찾기의 순기능이랄까.


그렇지만 역시, 써야 될 때는 그냥 써야 하나 봐. 이것도 새로운 부작용인데, 글감으로 찾은걸 그냥 써버렸으면 글이 되었을 텐데, 머릿속에서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이미 결론이 나버리는 거야. 그리곤 잊는 거지. 그러면 또 쓸게 없다? 생각보다 '쓰고 싶은 이야기'라는 건 쉽게 생기지 않아서. 고민을 너무 많이 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쓸 수가 없어지고야 말거든. 그러니 아무 이야기나 일단 쓰면서 생각을 시작한다. 오늘처럼 말이야.


요즘의 가장 별일이라면 날씨 아닐까. 와, 오늘은 이슬비가 온다더니 창밖에 장대비가 콸콸 쏟아지고 있어. 따스한 봄비라면 나무들도 반가워할 텐데. 나는 어제 정말 식물들이 불쌍했다. 우박이라니. 뭐가 이렇게 춥지? 하고 걷다 보니 글쎄, 이슬비인 줄 알았던 빗방울이 다다다닥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지 뭐야. 왕소금 알갱이 같은 우박에 너무 놀라서 황급히 차에 타면서, 이 따가운 우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봄꽃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 불과 이틀 전 만 해도 25도였는데. 그래서 그동안 못다 핀 아이들이 모두 다 기세 좋게 있는 힘껏 기지개를 다 켜댔는데 말이야. 그 연하고 약한 벚꽃잎에, 노란 봄꽃에 무자비하게 내리는 우박들은 너무 잔인했다. 그냥 둬도 일주일 남짓 갈까 하는 아이들인데. 이러지 말자고. 이러지 말자고.


스산하고, 차가웁다. 순환하는 계절이 자꾸만 어딘가 고장 난 것만 같다. 어느 계절을 논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시기에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말이 점점 더 낯설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렵고 말이야.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아. 그 쉽지 않은 것들 중에는 3 계절 옷이 다 나와있는 혼란한 옷방을 빼놓을 수가 없고.


그리고 소소한 고민들. 지난 주말을 거치면서 우리 집 어항에는 물고기가 네 마리 더 늘었고 - 무려 여덟 마리다. 저 30자 큐브 좁은 어항에 바글바글 -, 벼르고 별러서 찾아간 오랜만의 피아노 콘체르토 공연에 아들내미의 관람 태도가 애매해서 다음 공연 동반자에 이 아이를 빼야하나 넣어야 하나가 더욱 고민스러워졌어. 그래도 최근 가훈으로 선정된 '나는 매일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일상에 감사한다. 아니, 분명 오늘은 다른 말투를 시도해보려 했는데, 결국 쓰다 보니 원래 말투로 돌아와 버렸구만. 역시, 변화는 어려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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