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은 기분이 든다는 건, 좋은 신호다.
글을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안 쓰면 죽을 것 같아서 쓰던 때가 있었다. 미칠 것 같은 기분. 어디에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숨이 턱끝까지 차서 막혀버릴 것 같을 때 어디라도 배출구를 찾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상태로 자꾸만 글을 쓰다 보면 곧 그마저도 그만두게 되고 만다. 글 쓰는 자에게 자가복제 또한 신물 나는 일이었기에. 반복되는 감정들이 배출 만으로 해소되지 않을 때, 그래서 쓰고 또 써봐도 더 이상 무엇 하나 새로이 긁어낼 것도 해결되는 것도 없을 때. 갈길 잃은 자아는 또다시 막다른 골목을 만나곤 했다.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은 다르다. 마음이 무언가로 채워졌을 때일 확률이 높다. 옛날에 내가 수업을 들었던 한 시인은 그런 상태를 '마음이 몽글몽글 한 상태'라고 했다. 글을 쓰려면 일단 심장이 딱딱한 상태는 안된다고. 내 안의 감수성이라는 것이 깨어나고, 마음이 단단하지 않은 상태에서야 글이 나온다 하셨다.
그럴 때 나오는 글은 '배출'이랑은 다르다. 물론 배출 또한 나름의 가치를 가지는 글이겠으나 글을 꾸준히 쓰려면 아무래도 배출, 혹은 배설의 영역만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지금은 서두가 길었던,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이 드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 상태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감사해서 주절주절 그 특별함을 논해본다. 부산에 내려왔고, 20여 년이 넘게 이어지는 인연의 친구들을 만났다. 적당한 의무들도 해내었고 한 번 갔을 뿐인데 자꾸만 생각나던 낙동강 하구둑 주변의 카페에도 다녀왔다. 가장 좋았던 순간들은 역시 카페에서의 순간들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풍경, 가감 없이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자리. 마음에 드는 커피, 에스프레소, 디저트. 아 어제 서점에서 발견한 책도 있다. 짐을 늘리지 말자는 기조에서 그렇게 책을 안 사고 이북에 정을 붙이려 노력했건만, 그 결심 무색하게 벽돌책을 사버렸다. 하지만 그만큼의 가치는 충분히 하고 있는 책. 머릿속에 자꾸만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책, 커피, 바다가 있는 풍경,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지인들과의 만남. 행복의 공식이 이렇게나 명확하다. 그 명확함이 오랜만에 모두모두 채워진 연휴.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이 저절로 드는 이 연휴의 행복은 찰나여도 좋다. 이렇게 기록해 두고 두고두고 꺼내볼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쓰는 글이 행복의 기록이라 마음 한가득 좋다.